고원군읍지 ()

고원군읍지
고원군읍지
인문지리
문헌
1899년, 함경남도 고원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
이칭
이칭
함경남도고원군읍지(咸鏡南道高原郡邑誌)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99년
간행 시기
1899년
편저자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
권책수
2책 13장
권수제
고원군읍지(高原郡邑誌)
판본
필사본
표제
함경남도고원군읍지(咸鏡南道高原郡邑誌)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고원군읍지』는 1899년 함경남도 고원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2책 13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2책에는 채색 지도만 수록하였다. 국방 관련 시설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지 않은 점이 눈에 띈다. 1899년 당시 고원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이자,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정의
1899년, 함경남도 고원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
저자 및 편자

함경남도 고원군(高原郡)에서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서지사항

2책 13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함경남도고원군읍지(咸鏡南道高原郡邑誌)’이고, 권수제는 ‘고원군읍지(高原郡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새롭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고종 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비하고,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 이후 지방행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구성과 내용

1책의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봉수(烽燧), 발참(撥站), 사찰, 고적(古蹟), 인물,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균세(均稅), 전세(田稅), 대동(大同), 봉름(俸廩), 군병(軍兵), 민호(民戶) 등으로 구성하였다. 2책에는 채색 지도 「고원군도형(高原郡圖形)」 1장만 수록하였다.

당시 함경도 지역에는 행정구역으로 ‘이(里)’ 대신 ‘사(社)’가 설치되었는데, 『고원군읍지』에서도 그러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방리 항목에 따르면, 당시 고원군은 신산사(薪山社) · 상발산사(上鉢山社) · 산곡사(山谷社) · 수동사(水洞社) · 군내사(郡內社) · 하발산사(下鉢山社) 등 6개의 ‘사’로 구성되었다. 한편, 북방 지역의 읍지에서 볼 수 있는 진보, 관애 등 국방 관련 시설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의의 및 평가

『고원군읍지』를 통해 1899년 당시 고원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불어 대한제국기 지방행정의 움직임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관북읍지(關北邑誌)』

논문

김태웅, 「근대개혁기 전국지리지의 기조와 특징: 규장각 소장 읍지를 중심으로」(『규장각』 4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3)

인터넷 자료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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