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이란 불교의 진리를 직관하는 수행법을 총칭하는 불교 용어이다. 능견(能見), 정견(正見), 관찰이라고도 한다. 무상관(無常觀), 공관(空觀), 부정관(不淨觀), 법신관(法身觀) 등 여러가지가 있다. 원효는 『기신론소』 하권에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의 관을 법상관(法相觀)이라 하였다. 이후에 대비관을 닦고, 서원관(誓願觀), 정진관(精進觀)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시대부터는 선종의 융성하면서 관법의 실천보다는 선(禪)의 실수(實修)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범어는 비파샤나(Vipaśyanā)이며 능견(能見) · 정견(正見) · 관찰 · 관으로 번역된다. 그 방법으로는 가상(假象)으로서의 달이나 해의 모양을 마음으로 관상(觀想)하는 방법과 일체의 현상이 무상하다는 이치를 일념으로 관찰하는 무상관(無常觀), 일체법의 근본이 공이라고 관하는 공관(空觀), 인생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로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추한 것이라고 관하는 부정관(不淨觀), 법신은 본래 나고 죽음이 없다고 관하는 법신관(法身觀)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뒤부터 관법이 널리 행하여졌다. 신라의 원광(圓光)은 소승의 관법과 팔정(八定)을 실수(實修)하였고, 자장(慈藏)은 처음 출가하여 경주 남산의 숲속에서 육체가 하나의 백골이라고 관하는 백골관(白骨觀)을 닦아서 도를 얻었다고 하였다.
원효(元曉)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대승지관법(大乘止觀法)을 자세히 서술하였다. 그는 이 경이 일미관행(一味觀行)을 요지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이 관문을 좇아 여래장(如來藏)에 들어간다고 하였으며, 이를 십문(十門)으로 나누어서 해설하였다.
또, 원효는 『기신론소(起信論疏)』 하권에서 관행법에 대하여 상세하게 밝혔다. 원효는 대비(大悲)의 이타행(利他行)을 위해서 반드시 관을 닦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관법은 이 세상의 만물을 어떻게 관할 것인가를 밝힌 것으로서, 무상(無常) · 고(苦) · 무아(無我) · 부정(不淨)의 관법에 관하여 서술하였다.
무상관은 이 세상의 모든 일들, 인과의 법칙에 따라서 변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영구불변한 것이 없으며, 쉬지 않고 생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이다. 고관은 중생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모두 망상의 발동으로 인하여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또, 무아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중생이 생각해 내는 모든 의식이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자주성을 지닌 것이 아니며, 과거의 것은 꿈과 같고, 현재의 것은 번개와 같고, 미래의 것은 구름과 같이 별안간 나타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이다. 부정관은 인간의 육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육신은 부정한 것이며, 갖가지로 더럽혀져 있어 하나도 진실로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효는 이들 네 가지 관을 법상관(法相觀)이라 하였고, 이 관에 기초하여 중생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대비관을 닦고,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서원관(誓願觀)을 나타내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힘껏 남을 위하여 봉사하고 스스로의 공부에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정진관(精進觀)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의상(義湘)은 『대화엄십문간법관(大華嚴十門看法觀)』을 지어서 화엄종의 관법인 십문간법관을 닦게 하였으나, 현재 이 책은 전하지 않는다. 또,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는 화엄종의 4법계관(四法界觀)을 요약하여 설명한 것이다. 통일신라 중기에 밀교(密敎)가 들어온 뒤로는 밀교의 수행법인 신(身) · 구(口) · 의(意) 삼밀(三密) 중 관법을 중심으로 하는 의밀(意密)이 많이 실행되었고, 정토신앙을 중요시한 인물들은 16관법을 많이 닦았다.
고려시대에는 의천(義天)이 천태종을 열고 난 뒤부터 천태지관법이 널리 성행하였다. 의천은 송나라로 가서 천태교관(天台敎觀)을 전수받았는데, 특히 원융삼관(圓融三觀), 일념 가운데 삼천의 법계(法界)가 모두 들어 있다고 관하는 일념삼천관(一念三千觀), 십승관법(十乘觀法), 원돈지관(圓頓止觀) 등의 관법이 크게 유행하였다.
의천은 원래 화엄종에 속하였으나 천태교관을 받아들여 천태종을 세운 것은 이론적 교학과 아울러 실천관행을 닦아야 한다는 소신에 의한 것이었다. 천태종은 고려 말에 소자종(疏字宗)과 법사종(法事宗)으로 갈라졌는데, 법사종은 관행을 중요시한 종파로서, 전라남도 강진 만덕산 백련사(白蓮社)를 중심으로 보현참법(普賢懺法)을 닦았다.
이 보현참법은 천태종의 근본경전인 『법화경』의 결경(結經)인 『관보현행법경』에 의한 관법이다. 이 관법은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보살이 대승경전을 보면서 진여의 경계인 일실경계(一實境界)를 관찰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보현보살의 색신(色身)과 다보여래(多寶如來)의 탑과 석가모니불의 분신을 보기 위하여, 그리고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무량공덕을 성취하려면 이 관법을 닦으라고 하였다.
『대승경』을 외우며 지성으로 7일 또는 49일을 참회하면서 보현보살 뵈기를 발원하면 보현보살이 육아(六牙)를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는 선종의 융성과 함께 관법의 실천보다는 선(禪)의 실수(實修)로 기울어지게 되어 관법의 실천에 관한 사료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염불왕생신앙의 발달과 함께 염불관은 크게 성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