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과거에서 응시자의 신원, 예비 시험 통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응시 자격을 부여하는 절차.
#절차 조선시대 과거에서는 시험에 앞서 응시 자격을 심사하여 응시를 허가하였다. 과거의 시행 전에 녹명소(錄名所)를 설치하는데, 응시자들은 이곳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응시 자격을 승인받았다. 이 절차를 녹명(錄名)이라고 한다. 녹명은 무자격자나 응시 자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응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였다. 녹명을 거치지 않으면 과거를 볼 수 없었다. 시험 장소가 두 곳 이상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 녹명을 할 때 응시할 시험장을 배정하였다.
녹명소에서 녹명을 담당하는 관원은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서울에서 시행하는 경우 문과와 생원진사시는 사관(四館), 무과는 훈련원(訓鍊院)과 병조가 담당하였다. 지방에서 시행하는 향시는 관찰사나 병마절도사가 임명한 차사원(差使員)이 담당하였다. 잡과는 해당 관서와 예조에서 담당하였다.
녹명에 앞서 조흘강(照訖講)이라는 예비 시험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식년시와 증광시의 경우 복시(覆試) 전에 초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문과는 『경국대전(經國大典)』과 『가례(家禮)』, 생원진사시는 『소학(小學)』과 『가례(家禮)』를 읽고 해석하는 강서(講書) 시험을 보았다. 명종 때에는 문과와 생원진사시 초시에 응시하기 전에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의 강서 시험을 도입한 적도 있었다. 이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인조 때부터는 생원진사시 초시에 응시하기 전에 『소학(小學)』을 읽고 해석하는 예비 시험이 제도화되었다. 조흘강에 불합격하면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으며, 조흘강을 통과하면 조흘첩(照訖帖)이라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응시자는 이 조흘첩을 녹명할 때 함께 제출해야만 녹명 절차를 완료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문과와 생원 · 진사시의 경우 보단자를 폐지하였다. 대신 1654년(효종 5)부터 관학(官學)인 사학(四學)이나 향교(鄕校)의 유생안(儒生案)에 등록된 자들에게만 응시를 허락하고, 과거 때 수령이 작성한 응시자 명단인 부거도목(赴擧都目)을 증빙 자료로 삼았다. 무과와 잡과 응시자는 계속 보증인이 작성한 보거단자(保擧單子)를 제출하였다. 문과와 생원진사시의 경우 답안을 작성할 시지가 계속 고급스러워지자 시지의 규격과 종이질도 검사하여 종이질이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경우는 응시를 불허하였다. 또 현종 때부터는 호적(戶籍)에 입적한 경우만 과거 응시를 허락한다는 법이 제정되어 녹명 과정에서 입적 여부도 조사하였다.심사 요건
변천
참고문헌
원전
-『대전회통(大典會通)』
-『과거등록(科擧謄錄)』
단행본
-박현순, 『조선후기의 과거』(소명, 2014)
-김동석, 『조선시대 선비의 과거와 시권』(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21)
논문
-김경용, 「조선조 과거제도 시행과정의 탐색-식년시 문과와 생진과를 중심으로-」(『교육사학연구』 25-1, 교육사학회, 2015)
-원창애, 「조극선(趙克善) 일기를 통해본 17세기 과거 실태」(『조선시대사학보』 83, 조선시대사학회, 2017)
-차미희, 「『溪巖日錄』을 통해 본 17세기 전반 文科 경상도 鄕試」(『韓國史學報』 53, 고려사학회, 201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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