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원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전기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 낙촌(駱村), 정관재(靜觀齋)
  • 시호문경(文景)
  • 중초(仲初)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581년(선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제학|병조판서
  • 출생 연도1507년(중종 2)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동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4월 29일
박충원의 낙촌집 중 표지 미디어 정보

박충원의 낙촌집 중 표지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대제학,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중초(仲初), 호는 낙촌(駱村) · 정관재(靜觀齋). 박조(朴藻)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로 기찬(奇欑)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28년(중종 2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1년에 승문원에 올라 홍문관에 참예하였다. 다음해 사국(史局)에 돌아가 검열(檢閱)이 되었고, 이어 설서 · 승정원에 전직되었다. 그 뒤 독서하라는 명으로 당후(堂後)에서 대기하다가 장악직장(掌樂直長)이 되었다.

1534년에 예문관봉교가 되었다가 전적(典籍)이 되고, 이어 정언이 되었다. 다음해 이조정랑 · 사간원정언 · 이조좌랑 · 헌납 · 홍문관부교리가 되었다. 1537년에 병조정랑으로 있다가 이조정랑으로 옮기었다.

조부상을 당해 3년 뒤 다시 승문원교검에 보직되었다가 영월군수로 발령되었다. 이때 이 군에 3태수가 죽어나가 요담(妖談)이 흉흉해 모든 사람이 이곳에 부임하기를 꺼렸으나, 박충원이 초연하게 행동해 기괴한 소문이 사라졌다.

1545년 인종이 중국사신 영접사로 부름을 받아 나가기도 하였다. 그 후 직강(直講)이 되었고, 이어 군자감부정(軍資監副正) · 사성 · 성천부사를 거쳐 중시에 발탁되어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올랐고, 통례원우통례 겸 교서관판교가 되었다.

1552년(명종 7) 좨주(祭酒)로 있다가 해서(海西)를 안무(按撫)하였다. 1554년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형조참의가 되었고 1556년 세번째 승정원에 들어갔다. 1558년 한성우윤 · 병조좌랑을 거쳐 밀원군 겸 홍문관제학(密原君兼弘文館提學)에 제수되었다. 이어 예조판서 · 사헌부로서 호남 · 호서를 안무하였다. 1564년 명종이 ‘大提學兵曹判書朴忠元(대제학병조판서박충원)’이란 10자를 친필로 하사하였다.

1567년(선조 1) 대종백(大宗伯)으로 전직되었을 때, 중국에 국사를 검토하는 일로 빈상(儐相)의 명을 받아 기대승(奇大升) · 이후백(李後白) · 이산해(李山海)가 종사관이 되어 중국에 다녀왔다. 그 뒤 여러 중직을 거쳐 정승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며, 저서로 『낙촌유고(駱村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중종실록(中宗實錄)』

주석

  • 주1

    :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 주2

    : 역사나 일기 따위의 기록을 꾸미던 실록청과 일기청을 통틀어 이르던 말. 우리말샘

  • 주3

    : 조선 시대에, 승정원에서 주서(注書)가 거처하던 곳. 우리말샘

  • 주4

    : 우리나라 중서부에 있는 도.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땅이었으며, 조선 태종 때에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쌀, 사과, 조기 등이 나며, 명승지로 배천 온천 등이 있다. 면적은 16,447㎢. 북한에서는 현재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나뉘어 있다. 우리말샘

  • 주5

    : 백성의 사정을 살펴서 어루만져 위로함. 우리말샘

  • 주6

    : 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나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절. 우리말샘

  • 주7

    : ‘예조 판서’를 달리 이르던 말. 중국 주(周)나라 때에, 나라의 제사를 관장하고 예를 맡아보던 벼슬 이름에서 유래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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