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철종 9)에 후손 김진하와 김기헌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정홍경(鄭鴻慶), 이종상(李鍾祥), 김진하, 김기헌의 발문이 있다. 권1∼3에 시 345제(題) 443수, 권4에 소(疏) 4편, 계(啓) 5편, 서(書) 8편, 권5에 정문(呈文) 3편, 잡저 3편, 설(說) 6편, 서(序) 1편, 기(記) 3편, 발(跋) 3편, 전(箋) 2편, 제문(祭文) 11편, 묘지(墓誌) 1편, 행장(行狀) 1편, 권6은 부록으로 김성탁(金聖鐸) · 정중기(鄭重器) · 권만(權萬) · 김경온(金景溫) · 권한 · 이징도(李徵道) 등이 지은 만사(輓詞) 6수, 정중기와 정옥(鄭玉)이 지은 제문 2편, 유규(柳⿰氵奎)가 지은 행장 1편, 이휘령(李彙寧)이 지은 묘갈명 1편, 김종휴(金宗烋)가 지은 전(傳)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각지의 외직을 역임하면서 지은 것으로, 연대와 지역별로 모아 「남향록(南鄕錄)」 · 「서유록(西遊錄)」 · 「교거록(僑居錄)」 · 「관동록(關東錄)」 · 「호서록(湖西錄)」 · 「호남록(湖南錄)」 · 「북관록(北關錄)」 등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이중 「서유록」에 실려 있는 「차이희경제석구화운(次李煕卿除夕求和韻)」은 저자의 시 짓는 재주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필원산어(筆苑散語)』에 거론되어 있다.
소 중 「구폐소(救弊疏)」는 1728년(영조 4) 울산부사로 있을 때 올린 것인데, 부내의 시폐를 호적(戶籍) · 군액(軍額) · 전정(田政) · 곡물(穀物) · 전선(戰船) 등 5조목으로 나누어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당시 지방 행정의 실상을 살펴보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계 중 1712년(숙종 38) 경상도검전사(慶尙道檢田使)로 있을 때 올린 「영남재상계(嶺南灾傷啓)」는 당시 영남 지방의 가뭄과 홍수의 피해를 자세히 보고하고 이재민들에게 생활 대책을 세워 줄 것을 호소한 글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차운하여 지은 「차귀거래사(次歸去來辭)」가 잡저(雜著)에 들어 있고, 설에는 「경구설(景區說)」, 「백호설(白毫說)」, 거창 현감 재직 시에 경내의 과유(科儒)들에게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쓴 「유경내과유문(諭境內科儒文)」 등이 있다. 기에는 공주(公州)에 있는 남혈(南穴)과 피향각(披香閣) 및 두릉서당중수(杜陵書堂重修)에 대한 것이 있다. 제문은 기우제문들 및 이성중(李誠中), 조여벽(趙如璧), 장인 금필화(琴必和), 숙부 김이휘(金履輝) 등을 애도한 것이다. 묘지는 둘째 누이인 정석제(鄭碩濟)의 처에 대한 것이고, 행장은 10대조인 삼로(三路) 김이음(金爾音)에 대한 것이다. 이밖에 「동면수재정본수문(東面水災呈本守文)」 · 「정도백문(呈道伯文)」 · 「정제언사문(呈堤堰司文)」 등은 모두 숙종 · 영조 연간 백성들의 궁핍한 민생에 관한 사안들을 담고 있어 당시 지방 행정 및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저자는 향년이 46세에 불과했지만 강원도 · 충청도 · 경상도 · 전라도 · 함경도 등지에서 벼슬살이를 경험하며 각지의 기록을 고르게 남겼는바 이는 지방 행정 제도와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