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5장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경상남도사천군읍지(慶尙南道泗川郡邑誌)’인데, 이는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상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고 사천군(泗川郡) 지금의 경상남도 [사천시]이 경상남도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사천읍지(泗川邑誌)』는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계(疆界)], 방리(坊里), 호총(戶摠), 결총(結摠),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봉수(烽燧), 누정(樓亭), 제영(題詠), 고적(古蹟), 인물, 효열 등으로 구성하였다.
강계 항목에는 사천 지역이 진주진관(晉州鎭管) 소속으로, 동쪽으로는 고성(固城)과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진주(晉州)와 접해 있다고 기재하였다. 방리 항목에는 사천군 소속 9개 면의 이름과 관문(官門)으로부터의 거리를 기록하였다. 호총 항목에는 원호(元戶)와 인구수를, 결총 항목에는 밭이 959결(結) 72부(負) 5속(束), 논이 1,697결 84부라고 써넣었다. 도로 항목에는 관문을 기점으로 서울 및 동서남북 인근 지역과의 거리를 기재하였다. 건치연혁 항목에는 신라 및 고려를 거쳐 조선조에 이르기까지의 소속 현과 부임 관직명을 적었다.
군명 항목에는 사물(史勿)과 사수(泗水), 사주(泗州), 동성(東城) 등의 이름을 소개해 놓았다. 형승 항목에는 사천 지역이 최남방의 주1로서 비옥한 들판과 빼어난 산봉우리가 많다고 적어 놓았다. 성지 항목에는 읍성(邑城) 석축의 둘레와 높이, 성내 시설 등을 적었고, 관직 항목에는 군수(郡守)와 향장(鄕長)을 기재하였다. 산천 항목에는 두음벌산(豆音伐山)과 와룡산(臥龍山)을 비롯해 심수도(深水島)와 저도(楮島), 조도(鳥島), 늑도(勒島) 등의 섬에 대해 써넣었다. 성씨 항목에서는 이(李) · 황(黃) · 오(吳) · 목(穆)의 성씨를 소개하였고, 단묘 항목에서는 사직단(社稷壇)과 문묘(文廟), 구계서원(龜溪書院) 등에서 배향하는 인물을 소개하였다.
공해 항목에서는 객사(客舍)와 평근당(平近堂), 향사당(鄕射堂) 등을 언급하였다. 제언 항목에는 병풍제(屛風堤)와 건지제(乾池堤) 등 6곳의 위치와 규모를 기재하였으며, 창고 항목에는 군기고(軍器庫)와 관청고(官廳庫)를 기록하였다. 물산 항목에는 감, 대나무 등의 산물과 전복, 조개, 문어, 은어 등의 해산물을 소개해 놓았다. 교량 항목에는 사수교(泗水橋)와 십수교(十水橋)를, 역원 항목에는 동계역(東溪驛)과 관율역(官栗驛)의 위치를 적어 놓았다.
봉수 항목에는 사천 안점산 봉수대(泗川 安岾山 烽燧臺)의 위치와 전후 봉수 간 사이의 거리를 기록하였다. 누정 항목에는 영화루(永和樓)와 대관대(大觀臺)에 대해 써넣었으며, 제영 항목에서는 이황, 이정(李禎) 등 조선 문인들이 사천 지역에 대해 읊은 시를 소개하였다. 고적 항목에서는 와산 능화봉(陵華峰), 어정산 아래 구암(龜巖), 성황산성(城隍山城), 강당지(講堂址), 궐리(闕里), 노예촌(魯禮村), 남양동(南陽洞), 모려(茅廬)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인물 항목에는 사천 출신의 유명 인물들, 예를 들면 고려의 강오(姜祦)와 목인길(睦仁吉), 조선의 목진공(睦進恭)과 최도원(崔道源), 이정 등에 대해 적어 놓았다. 효열 항목에는 사천의 이름난 효자 3인과 열녀 2인의 이름 및 간략한 행적을 기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