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나 우리 나라의 불교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선이 교외별전의 것이고 교는 선과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아 대립되어 왔는데, 고려 중기의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그것을 회통하여 선교일치의 원칙을 정립하였다.
선과 교가 서로 다르다는 사상의 유래는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뒤에 여러 가지 불전이 번역되면서 그 교리를 연구하는 학파가 생겨난 이후부터이다. 그들은 불전에 나타난 교리가 경론에 따라서 서로 다르므로 구사(俱舍)·법화(法華)·삼론(三論)·율(律)·천태(天台)·화엄(華嚴) 등의 학파나 종파가 생겨났다. 이들은 이론 중심의 교학파인데, 한편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을 주지로 한 선종이 발전되었다.
선종에서는 선이 부처님의 정법을 바로 전해온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선이 교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고, 선은 부처님이 교리 밖에 따로 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의 종밀(宗密)은 ≪선원제전집 禪源諸銓集≫을 편찬하고 그 <도서 都序>를 지어서 선과 교가 다 한 부처님의 법이며, 이원적인 것이 아니라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논증한 선교일치론을 주창하였다.
그 원리로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 말씀이니, 부처님의 마음과 입은 결코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禪是佛心 敎是佛語 諸佛心口 必不相違).”라고 선언하고, 교에서의 공(空)·성(性)·상(相) 3종(宗)과 선에서의 공·성·상 3종의 내용이 서로 일치된다는 이론을 정리하였다. 중국 화엄종의 청량(淸凉)도 선교일치를 주장하였지만, 종밀처럼 조직적 이론으로 구체화하지는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불교가 전래되면서 먼저 교종이 전래되어 여러 교종이 분립되었는데, 신라 말에 선종이 전래되면서 교외별전을 주장하게 됨에 따라 선종과 교종은 대립과 반목이 매우 심하게 되었다. 고려의 의천(義天)은 교 밖에 선이 따로 있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에 어긋난다고 하였고, 선도 하나의 불교의 수행방편이므로 교외별전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새로 천태종(天台宗)을 개립하여 선교융섭을 기도하였다.
그 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선교의 대립과 반목에 크게 의혹을 일으켜서 대장경을 열람하며 선과 교의 다른 점을 찾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화엄경≫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 “중생의 마음속에 부처님 지혜가 구족하여, 다만 망상만 떠나면 일체지(一切智)·자연지(自然智)가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 대목에서 크게 감명을 받았다.
또 이통현 거사(李通玄居士)의 ≪화엄경≫을 열람하다가 “범부의 일용분별하는 마음이 바로 부동지불(不動智佛)임을 사무쳐서 깨달으면 자기가 곧 부처임을 체득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 크게 감명되어 선교일치에 대한 결론을 얻었다. 그는 “부처님이 입으로 설한 것이 교가 되고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이 선이 되었으니 불조의 마음과 입이 반드시 둘이 아니다.”라는 원리를 발견하고 이에 선교 일원의 원칙에서 새로운 지도체계를 정립하였다.
즉, “학도는 먼저 불조의 여실언교(如實言敎)에 의하여 진정한 지견을 세우고 뒤에 그 언교를 놓아버리고 선지를 참구하면 반드시 출신활로(出身活路, 安心立命處)가 있으리라.”는 지도이념을 세웠다. 지눌(知訥) 이후 이 선교일치론은 우리 나라 불교의 기본 지침이 되어 대부분의 고승들이 교를 배운 다음 선을 공부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선을 통하여 오도(悟道)한 다음에도 ≪화엄경≫ 등의 경전을 통하여 도를 완숙하게 하는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捨敎入禪).’는 지도이념은 오늘에까지 전통불교의 지침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