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교의 전통 속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주1을 주장하는 선종은 불교의 경론에 의거하여 전승된 전통적인 교종과 일종의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에 대해 선과 교가 모순되지 않고 일치함을 주장하는 견해가 생겨났는데, 이를 선교일치론이라고 한다. 이를 주장한 가장 대표적인 승려는 당의 종밀(宗密, 780~841)이다. 종밀이 저술한 『선원제전집도서』에서는 선과 교를 각각 3종류로 구분한 뒤, 이들이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교의 3종류는 밀의의성설상교(密意依性說相敎), 밀의파상현성교(密意破相顯性敎), 현시진심즉성교(顯示眞心卽性敎)이고, 선의 3종류는 식망수심종(息妄修心宗), 민절무기종(泯絶無寄宗), 직현심성종(直顯心性宗)이다. 이 3교와 3종은 모두 인간의 본원인 불성(佛性) 혹은 본각진성(本覺眞性)에 의거하고 있으며, 교가 이 근원에 의거하여 전개된 이론이라면, 선은 이에 의거하여 직접 수행하는 것을 뜻하므로, 선과 교는 서로 다르지 않다. 또한 종밀은 “경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니,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말씀은 결코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經是佛語, 禪是佛意. 諸佛心口, 必不相違.]”라고 하여, 선과 교가 일치하는 근거를 부처에게서 찾았다.
종밀의 선교일치론은 이후 고려의 지눌(1158~1210)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지눌은 『화엄론절요』의 서문에서 주3께서 입으로 설한 것이 교이고,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이 선이니, 주2의 마음과 입은 결코 어긋나지 않는다.[世尊說之於口, 卽爲敎. 祖師傳之於心, 卽爲禪. 佛祖心口, 必不相違.]”라고 하면서 종밀의 주장을 계승하여, 고려 이후 우리나라 불교에 있어 선교일치론의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였다. 다만 종밀과 지눌의 관점에는 차이점 역시 존재한다. 종밀이 활동하던 시대는 선과 교가 여러 갈래로 분화되던 상황이었으므로 선과 교에 대한 종밀의 분류 역시 세분화 되었던 반면, 지눌은 선과 교를 세부적으로 분류하지 않고 양자의 일치를 강조하였다. 또한 지눌은 『권수정혜결사문』에서 “말씀을 통해 도를 깨닫고, 교에 의거하여 종지를 밝힌다.(因言悟道, 藉敎明宗)”라고 하여, 선에서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종지를 얻기 위해서 언교(言敎)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동아시아 선종 가운데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전통과 더불어 면면히 전승되던 불리문자(不離文子), 자교오종(藉敎悟宗)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교일치론을 제창한 종밀과 지눌의 주장은 조선 후기에 정착된 승려의 이력과정에 이 두 승려의 저술이 포함됨으로써 조선의 불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다만 조선의 불교는 선교일치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사교입선(捨敎入禪), 곧 교를 배운 다음에는 이를 버리고 선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주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