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미정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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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한성리의 서(書) · 논 · 설 · 기 등을 수록한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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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한성리의 서(書) · 논 · 설 · 기 등을 수록한 문집.
서지적 사항

2책. 필사본. 서·발이 없어 편집 경위와 필사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저자가 생전에 편집해 둔 것인 듯하다. 표지명은 ‘가헌미정고(可軒未定稿)’로 되어 있고, 저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유인석(柳麟錫)에게 올린 글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충청도 지역에 생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내용

상책에 소(疏) 9편, 상언(上言) 1편, 장(狀) 1편, 서(書) 41편, 서(序) 17편, 기(記) 10편, 발(跋) 1편, 하책에 논(論) 18편, 설(說) 17편, 변(辨) 1편, 해(解) 1편, 전(傳)·의(義)·훈(訓)·잠(箴) 각 2편, 명(銘) 6편, 송(頌) 5편, 찬(贊) 3편, 계(啓) 4편, 조(詔) 4편, 전문(箋文) 4편, 격문(檄文)·노포문(露布文)·반사문(頒賜文)·상량문·전책문(殿策文)·행장·묘갈명 각 1편, 제문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한 수도 없으며, 문도 대부분 의작과 대작(代作)이 많다. 「견학사퇴폐청수선진후학소(見學舍頹廢請修繕進後學疏)」는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고, 학교를 보수해 교육 여건을 마련하여 줄 것을 임금에게 청한 글이다.

「상창의대장유의암서(上倡義大將柳毅菴書)」는 1896년 유인석에게 올린 글이다. 삼천리의 문물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이 때, 다시 예양(禮讓)의 처지로 문물을 복귀시키려 하니, 그 의(義)는 일월로 빛을 다툰다 하며 흠앙하는 자세를 나타내었다. 「여심대상목서(與沈臺相穆書)」·「답연기사림원단설단서(答燕岐士林院壇設壇書)」 등은 지방 인사들과 향토의 일로 주고받은 편지이며, 나머지는 대부분 의작이다. 예컨대, 동주(東周)의 무공(武公)이 초나라의 영윤(令尹) 소자(昭子)를 꾸짖는 내용, 자양진인(紫陽眞人)이 범증(范增)이 약을 구걸한 것을 꾸짖는 일을 대신한 내용 등 역사상의 한 사건을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쓴 글이다.

서(序)도 문집의 서발류가 아니고 의작·대작이 많다. 논은 한고조가 유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논한 글 등 주로 사론이 중심을 이룬다.

「규구설(規矩說)」은 어떤 사람이 규구를 읊은 시축을 보고 자신의 규구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글이다. 곧 규구를 유형·무형으로 나누고 그것을 기와 이로 설명하였다. 「씨족설(氏族說)」은 씨와 족에 대해 설명한 글이다. 씨와 족은 고금이 같다고 전제하고, 씨는 사는 곳에 따라 부르는 것, 족은 그 낳은 곳에 따라 붙인 것이라 하고 씨족은 인륜을 밝히고 분명히 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였다.

「관성자전(管城子傳)」은 붓을 주제로 한 가전으로, 당나라 한유(韓愈)의 「모영전(毛頴傳)」을 모방해 지은 것이다. 문방사우 가운데 붓의 공이 제일 커서 사람들이 ‘우리 관성’이라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정작 관성이 누구이며, 어느 곳에 사는가 하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사람들의 이해에 따라 사물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사물의 본질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음을 풍자한 내용이다. 이 밖의 명·송·계·조 등도 모두 의작이다.

집필자
윤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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