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세종 때 제작한 측량기구.
개설
연원 및 변천
구조 및 형태
제조 방법
목재를 대용할만한 것으로는 금속재와 석재가 있는데, 금속재는 제작상의 난점과 함께 부식의 염려가 있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수표의 재료로서 석재가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수표교는 장통교(長通橋)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다리의 서쪽 물 가운데 석표(石標)를 세우고 척 · 촌의 수를 새겨서 강우량을 측정하게 했다”고 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될 당시에는 목재였던 기존의 수표가 석재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수표는 높이 약 3m, 폭이 약 20㎝의 화강석으로 된 부정육면체 방추형의 돌기둥이다. 돌기둥의 양쪽 면에는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을 새겼고, 뒷면의 3척 · 6척 · 9척 되는 눈금 위에는 ○표를 파서 수량을 헤아리는 표지로 삼았다. 촌 · 분까지 새겼던 세종대의 수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용 방법 및 특징
『풍운기』는 관상감의 관측일지 원부(原簿)이다. 즉 관측에 임한 당직관리가 자기 담당 시간에 관측한 모든 현상을 규정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관측은 24시간 동안 3교대로 했고, 관측자는 관측 내용을 기록하고 서명하였다.
『조선왕조실록』 · 『승정원일기』 · 『일성록』 등의 연대기 기록은 『풍운기』를 원본으로 삼았다. 매일 승정원과 시강원 및 규장각 등에 제출한 보고서에 의해서 집계되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되는 ‘수표단자(水標單子)’는 바로 이를 가리킨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풍운기(風雲紀)』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우리역사 과학기행』(문중양, 동아시아, 2007)
- 『우리의 과학문화재』(서해문집, 1997)
- 『한국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75)
- 『中國科學技術史(水利卷)』(周魁一, 科學出版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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