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왕실 인사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임시로 만든 관직.
설치 목적
처음에는 산실, 즉 왕비의 출산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한 관직이었지만 차후에는 국왕과 대비, 왕비, 사친(私親) 등 왕실 인사들의 건강을 살피기도 하였다. 이는 순조 대에 왕실 어른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들의 건강을 살필 전문 인원이 필요하던 상황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임무와 직능
승후관은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제수되었고 임시직이었기 때문에 겸임으로 업무를 담당하였다. 다만 맡은 업무가 왕실의 건강과 관련된 것이어서 종친이나 외척에서 제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중인 의관인 내의원 관원과 달리 승후관은 사대부에서 차출하여 제수하였다.
변천사항
특히 1890년(고종 27)부터는 승후관이 국왕과 대비전, 중궁전에 자주 설치되면서 정치적 개입을 하는 경우도 생겼다. 1898년(고종 35)에 의정부 찬정(贊政) 권중현(權重顯)은 국왕인 고종을 알현하기 위해서는 승후관의 기분이 좋아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진료를 위해 설치하였던 승후관이 고종의 측근이 되어서 정치에도 간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승후관은 주로 종친에서 차출하였기 때문에 국왕이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신임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병합될 때까지 존속하고 있었다.
참고문헌
원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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