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기(尹廷琦: 1814~1879)의 본관은 해남(海南)이며, 자는 경림(景林). 호는 방산(舫山)이다. 다산 정약용의 외손자로, 스물세 살까지 외조부로부터 직접 학문을 배우고 이후에는 외숙부인 정학연(丁學淵)의 지도를 받아 다산학을 계승하였다. 당대에 문명(文名)이 높았으며, 권돈인(權敦仁), 김병학(金炳學), 윤정현(尹定鉉)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여러 차례의 출사 권유를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정약용의 학문을 계승하여 『동환록(東寰錄)』, 『시경강의속집(詩經講義續集)』, 『역전익(易傳翼)』 등의 저서를 남겼는데 『동환록』은 다산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계승한 것이고 뒤의 두 저작은 각각 다산의 시경학과 주역학을 발전시킨 산물이다. 이 중에서 경학 관련 저작은 『시경강의속집』과 『역전익』인데, 현재 『역전익』은 건괘(乾卦)‧곤괘(坤卦)‧둔괘(屯卦)만 기록된 잔본만이 전해지기 때문에,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윤정기의 경학 관련 저술은 『시경강의속집』이 유일하다. 500여 편의 시문을 『방산유고』에 남겼고, 종가인 명발당과 별장인 농산별업, 옹산별업 터 등 윤정기 관련 유적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윤정기는 다산학단에서 역학, 경학, 지리학을 계승한 학자로 평가된다.
『시경강의속집』은 11권 6책의 필사본으로 전한다. 윤정기의 주요 경학 저작으로, 정약용의 『시경강의』 및 『시경강의보』의 내용을 계승 · 보완한 후속작이다. 이 저작은 다산이 완결하지 못한 시경학 체계를 정리하고 해석함으로써, 다산 시경학의 한계를 메우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경강의』에서 보류되었던 내용이 『시경강의보』에서 일차적으로 정론화되었고, 『시경강의속집』에서는 그 이론들이 더욱 강화되고 체계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경강의속집』은 1868년에 완성하였으며, 체재는 크게 총론과 각론으로 구분된다. 총론에 해당하는 「총론(總論)」‧「국풍(國風)」‧「주남(周南)」 등에서는 『시경』 전체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전개되며, 각론에서는 각 편의 주제와 내용이 상세히 해설된다. 특히 「소남」[후설], 「패풍」, 「왕풍」, 「정풍」, 「제풍」, 「빈풍」[후설], 「노송」 등의 편에는 해당 시편의 주지(主旨)가 별도로 설명되어 있으며, 이는 총론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상호 보완적인 구성을 이룬다. 전체 구성은 『시경』 원전의 순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편차되어 있으나, 다산의 저술에 비해 일부 시편 해설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된 바 있다.
윤정기의 『시경강의속집』은 다산 정약용의 시경학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해석과 이론적 창신을 보여 준다. 다산의 시경학은 한대 정현(鄭玄)의 주석과 「소서(小序)」의 가치를 재조명한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러나 『시경강의』는 문답체 형식에 따라 이론적 체계가 다소 미비하였으며, 『시경강의보』 역시 온전한 보완이 되지 못해 후학의 보충이 필요하였다.
『시경강의속집』은 이러한 미비점을 보완하여 다산이 제시한 이론을 실제 시편 해석에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다산의 이론적 연구에 비해 윤정기는 실증적 해석을 중시하였고, 가능한 한 많은 전적을 참조하여 시편 해석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특히 참고한 자료들의 출처를 명시한 점은 학문적 성실성을 잘 보여 준다.
또한 윤정기는 국풍(國風)을 악명(樂名)으로 이해하거나, 음시(淫詩)에 대한 이해에서도 주자(朱子)나 선대 학자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정약용과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등, 『시경』 해석에서의 독창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시경강의속집』은 단순한 주석서가 아니라, 당시 현실과 실증적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경학적 실천 의식을 반영한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윤정기의 시경학은 백호 윤휴(尹鑴), 성호 이익, 녹암 권철신(權哲身) 등 선대 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연장선에서 정약용의 시경학을 계승 · 발전시킨 것이다. 특히, 정약용의 시경학은 『시경강의』의 문답체라는 한계와 『시경강의보』의 부분적 개수 등으로 인해 체계적 연구가 어려웠던 반면, 『시경강의속집』은 이러한 결핍을 보완할 수 있는 완결된 형태의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 저작은 다산 시경학 연구의 진전을 가능하게 하며, 실학 경학의 한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또한 윤정기 자신도 단순한 계승자에 머물지 않고, 시경을 ‘경(經)’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주체적이고 실증적인 학문관을 실천한 독자적 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