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태조 대, 한양 천도를 위해 설치한 임시 관서.
설치 목적
1394년(태조 3) 8월 8일에 태조는 직접 여러 관원을 거느리고 도읍터를 살펴보았다. 후보지였던 무악(毋岳)과 한양(漢陽)을 차례로 방문하고 최종적으로 한양으로 천도하는 것을 결정하였다. 한양 천도가 결정된 직후 태조는 그해 9월 1일에 새로운 도읍지의 궁궐을 건설하는 사안을 맡길 임시기구로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하였다.
기능과 역할
도감의 판사들은 중신이었던 판문하부사 권중화(權仲和),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한양을 답사하면서 궁궐을 비롯하여 새 도읍의 종묘와 사직, 시장과 도로의 터를 정하였다. 이는 도성의 기본 요건인 좌묘우사(左廟右社)와 면조후시(面朝後市)의 원칙을 세운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한양 도성의 기본 설계가 완료되었고 한양의 첫 궁궐인 경복궁(景福宮)의 터도 정해졌다. 도감의 관원들은 본격적으로 한양에서 도읍을 건설하는 사안을 전담하였다.
변천사항
신도궁궐조성도감의 해체 직후인 윤9월에는 별도로 도성조축도감(都城造築都監)을 새롭게 설치하였고, 이 기구에서 한양 도성의 건설을 추진하였다. 이와 별개로 태조는 경복궁에 거처하면서 12월 28일에 새 도읍의 궁궐 공역은 마무리되었다. 이후 도성 공역은 지속되어 1398년(태조 7) 2월, 1차적으로 한양 도성의 건립이 완료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 『태조실록(太祖實錄)』
단행본
- 장지연,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새 권력은 왜 새 수도를 요구하였나』(너머북스, 2018)
- 홍순민, 『홍순민의 한양읽기-도성』(눌와, 2017)
논문
- 장지연, 「태조대 경복궁 전각명에 담긴 의미와 사상적 지향」(『한국문화』 39,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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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제1대 왕인 태조의 본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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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도읍을 옮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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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 인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무악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2020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계 연보를 기준으로 면적은 0.36㎢.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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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서울’의 옛 이름.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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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의 개국 공신(1328~1401).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우고, 위화도 회군을 도와 삼사 판사(三司判事)가 되었다. 안사공신(安社功臣)을 거쳐 조선 개국 후에는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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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집이나 건물을 지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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