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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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광주청년동맹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50년
출생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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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주도하였으며,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광주청년동맹 의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광주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이던 1926년 11월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으로 조직된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에 참여해 회계를 담당했다.

1927년 3월 성진회가 비밀유지 문제로 형식상 해산을 결의하고 각 학교별로 학생운동의 핵심지도부를 조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광주고등보통학교의 조직 책임자가 되었다. 같은 달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中央]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1928년 4월 광주고등보통학교 및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의 동맹휴학이 발생하자 동경유학생 모교 분규사건 대책강구회의 특파원 자격으로 귀국했다. 이후 성진회 회원을 중심으로 동맹휴학중앙본부를 설치하고 동맹휴학을 지도했다.

1929년 6월 주오대학에서 퇴학을 당하고 귀국한 뒤에는 차재정(車載貞)이 책임비서로 있던 조선공산청년회에 가입했다. 조선공산청년회의 조선공산당 재건야체이까(곧 조선공산청년회 전라도간부기관)의 성원은 장재성 외에도 장석천(張錫天)(책임자) · 강석원(姜錫元) · 박오봉(朴五鳳) · 서재익(徐在益) · 나승규(羅承奎) · 국채진(鞠彩鎭) 등이었다.

같은 달에는 학교별로 분산되어 있던 광주의 학생조직을 독서회로 개편하고 각 학교의 독서회를 통제하는 중앙지도기관으로 독서회중앙부를 설치하기로 하고 책임비서가 되어 광주 지역의 학생운동을 지도했다. 이 무렵 광주의 학생들에게 학생운동의 기본임무로 민족의 선각자가 되어 농민과 노동자를 지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한 · 일 학생 사이에 충돌사건이 일어나자 대규모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시위운동의 지도자가 되어 독서회중앙부의 조직을 통해 학생을 동원하고 격문을 배포하는 활동을 벌였다. 11월 3일 이후에는 장석천 등과 함께 학생투쟁지도본부를 결성하고 광주학생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 사건으로 1931년 6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934년 4월 만기 출옥한 후 일본으로 가서 니혼[日本]대학 상경과를 졸업했다. 1936년 6월에는 재동경조선인유학생연합회 결성에 참가하고 다카즈[高津正道]의 지도 아래 인민전선 전술에 입각한 활동을 벌였다.

귀국 후 광주학생운동 참가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조직을 모색하던 중 1938년 2월 검거되었다. 해방 직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 전남지부 조직부장을 역임했다. 1945년 12월에는 광주청년동맹을 조직하고 의장이 되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전남 대표로 참석했으며 1946년 3월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 전남지부 결성준비회의 총무부에서 활동했다. 세 차례에 걸쳐 38선 이북을 왕래하다가 1948년 검거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950년 7월 사살되었다.

참고문헌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엮음, 창작과 비평사, 1996)
『근현대의 형성과 지역 사회운동』(안종철·김준·정장우·최정기, 새길, 1995)
「광주학생운동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성격」(이준식, 『한국 근현대청년운동사』,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운동사연구반, 풀빛, 1995)
「광주학생독립운동」(박찬승, 『전라남도지』제8권, 전라남도지편찬위원회, 1993)
『光州學生抗日事件資料』(朝鮮總督府警務局, 風媒社, 1979)
집필자
이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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