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6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2.5㎝, 가로 21.6㎝이다. 표제는 ‘적성군지(積城郡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적성군읍지(積城郡邑誌)』는 대한제국기인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적성군(積城郡)은 현재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연천군 백학면과 장남면 일부, 양주군 남면에 해당하며, 읍치는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에 있었다. 고구려 시대에는 칠중현(七重縣), 통일신라 시대에는 중성현(重城縣)으로 불렸고, 고려 초에 적성현으로 개칭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적성군으로 승격되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연천군과 파주군이 통폐합되면서 연천군에 흡수되었으나, 1945년 분단 후 대부분이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이 읍지에서는 적성군에 속한 고을의 정보와 자연환경, 각종 시설의 위치 및 내력, 재정 내역 등 지역의 기초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수록 항목은 산천, 제언(堤堰),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단묘(壇廟), 해우(廨宇), 시장(市場), 학교, 역(驛), 사찰, 직관(職官), 군물(軍物), 토산(土産) 등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직관 항목에 군수 외 향장(鄕長)과 순교(巡校), 수서기(首書記), 서기(書記), 통인(通引), 사령(使令), 사용(使傭), 사동(使僮), 객사직(客舍直) 등을 상세히 기록해 놓아, 당시의 지방행정 제도를 파악할 수 있다. 또 기록된 전결 수를 통해 적성군이 조선시대에 작은 규모의 읍세를 가진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적성군은 동쪽으로 마전군(麻田郡)까지 주1, 남쪽으로 양주목(楊州牧)까지 주2, 서쪽으로 장단부(長湍府)까지 주3, 북쪽으로 마전군까지 주4, 서울까지는 주5, 하루 반 거리였다.
적성군에 대한 읍지로 여러 종이 전해 오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16세기 전반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8세기 중엽의 『여지도서(輿地圖書)』, 19세기 중반의 『적성현읍지(積城縣邑誌)』 등이 있다. 이 읍지는 기존 적성 지역 읍지의 전통을 반영하면서 19세기 후반의 정보를 새롭게 정리한 것으로, 이전에 편찬된 읍지들과의 비교를 통해 19세기 말 적성 지역의 현황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또한 당시 적성군의 지리적 · 행정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지방행정과 지역사회를 연구하는 데 보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