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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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진주 출신의 향리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진주민란
  • 본관진주(晋州)
  • 사망 연도1201년(신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진주 향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3년
  • 홍영의 (국민대학교 교수, 고려시대사)
  • 최종수정 2024년 09월 09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정방의는 고려 후기 진주 출신의 향리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1200년(신종 3) 진주의 공·사 노예가 중심이 되어 주리들의 강압적인 수탈과 억압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켰으나, 정방의가 진주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그 기세를 타 그 무리들을 다 죽였다. 그러나 진주 사람들은 주변의 천민들과 힘을 합쳐 계속 정방의를 치기 위해 노력하였고, 마침내 정방의는 1201년(신종 4) 3월 진주 사람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며, 아우 정창대의 무리 200여 명도 평정되었다.

정의

고려 후기, 진주 출신의 향리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가계 및 인적사항

경상도 진주(晋州) 출신의 향리(鄕吏)이다.

주요 활동

1200년(신종 3) 진주의 공사(公私) 노예가 중심이 되어 주리(州吏)들의 강압적인 수탈과 억압에 대항하여 난을 일으켰다. 그때 주리의 집 50여 호(戶)가 약탈되고 불이 났는데, 그 불이 정방의의 집에까지 번졌다. 정방의가 활과 화살을 가지고 관아에 나타났으므로 사록(司錄) 전수룡(全守龍)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고 의심하여 고문하였으나 증거가 없어 풀어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목사(牧師) 이순중(李淳中)이 정방의가 난을 일으키려 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하여 옥에 가두고 국문하려고 하니, 동생 정창대(鄭昌大)가 나타나 정방의를 부축하여 도망갔다. 그 뒤 정방의가 무리를 모아 평소 원한이 있던 자들을 죽였는데 그 수가 6,4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이순중은 각문(閣門)을 닫고 나오지 않았으나 정방의가 위협하여 일을 보도록 하였고, 그들은 은병(銀甁)을 거두어 이것을 권신에게 뇌물로 바쳐 죄를 면하고자 하였다. 이때 안찰부사(按察副使) 손공례(孫公禮)가 진주에 이르러 이 사실을 안문(按問)하는데, 이민(吏民)들이 모두 정방의를 두려워하여 정방의에게 죄가 없다고 하므로, 도리어 이순중이 초도(草島)에 유배되었다. 그 뒤에도 소부감(小府監) 조통(趙通), 중낭장 이당적(李唐績) 등을 보내어 안무하게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처럼 정방의가 진주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진주민란의 성격이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처음 봉기를 주도하였던 노예들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리하여 진주 사람들은 합주(陜州: 현, 경상남도 합천군)에서 난을 일으킨 광명(光明)·계발(計勃)의 무리를 끌어들여 진압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정방의의 무리는 그 기세를 타 노올부곡(奴兀部曲)까지 이르러 그 무리들을 다 죽였다. 그러나 진주 사람들은 주변의 천민들과 힘을 합쳐 계속 정방의를 치기 위해 노력하였고, 마침내 정방의는 1201년(신종 4) 3월 진주 사람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며, 아우 정창대의 무리 200여 명도 평정되었다.

정방의는 지방관들과 대치되는 세력으로 존재하였는데, 그의 난은 노예들의 봉기를 계기로 평소에 내재되어 있던 지방관과 토호(土豪)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으로 이해된다. 정방의의 난은 피지배층의 호응을 얻기 위한 조처가 없이 진행되었고 최충헌(崔忠獻)은 묵시적으로 정방의의 진주 통치권을 인정하였다. 이 난은 토호, 중앙정부 대 농민, 천민, 노예의 연합전선 양상으로 나타났다가, 일반 백성들과의 불화로 인해 평정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농민천민항쟁 연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1991)

  • 논문

  • - 변태섭, 「농민·천민의 난」 (『한국사』 7, 국사편찬위원회, 1973)

  • - 이정신, 「고려무신정권기 진주민의 항쟁」 (『한국학보』 55, 일지사, 1989)

주석

  • 주1

    : 지방의 큰 행정 단위인 주에 속하여 일하던 아전. 우리말샘

  • 주2

    : 은으로 만든 병. 우리말샘

  • 주3

    : 어느 한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양반을 떠세할 만큼 세력이 있는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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