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200년(신종 3), 진주에서 공 · 사 노비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저항.
발단
경과 및 결과
이에 따라 공 · 사 노비의 저항은 지방관과 재지 세력의 대립으로 전환되었다. 조정에서는 소부감(小府監) 조통(趙通)과 중랑장(中郎將) 이당적(李唐績)을 보내 무마하려 했으나, 정방 일당의 세력이 커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때 평소 정방의와 원한이 있던 진주 사람 20여 명이 합주(陜州)의 저항 세력인 광명(光明)과 계발(計勃)을 끌어들여 정방의를 공격하려 했으나, 도리어 패배하여 합주의 노올부곡(奴兀部曲)까지 공격 당하였다. 이로써 저항의 양상은 재지 세력과 일반 백성의 대립으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정방의의 무리는 이렇게 기세를 떨쳤으나 이듬해인 1201년(신종 4)에 진주 사람들이 정방의를 토벌하여 죽이니, 정창대는 달아나고 그 일당들은 흩어짐으로써 진주민란이 진정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홍승기, 『고려 귀족사회와 노비』(일조각, 1983)
-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농민 · 천민 항쟁 연구』(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1)
- 신안식, 『고려 무인정권과 지방사회』(경인문화사, 2002)
논문
- 변태섭, 「농민·천민의 난」(『한국사』 7, 국사편찬위원회, 1981)
- 이정신, 「고려 무신정권기 진주민의 항쟁」(『한국학보』 55, 일지사, 1989)
- 이정신, 「농민·천민의 봉기」(『신편한국사』 20, 국사편찬위원회, 199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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