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6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2.2㎝, 가로 21.4㎝이다. 『지평군읍지여지도(砥平郡邑誌與地圖)』 외에도 경기도 지평군(砥平郡) 지금의 [양평군 지평면 · 양동면 · 청운면 · 단월면 · 용문면 일대]에 대한 읍지가 여러 종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16세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18세기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수록본이 있다.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새롭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9년(광무 3)에 편찬하였다. 대한제국 내부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 군의 읍지와 지도 2건씩을 한 달 안에 제출하게 하였다. 고종 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비하고,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 이후 지방행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경기도 지평군의 읍치는 지평면에 있었다. 이 지역은 고구려 때 지현현(砥峴縣)으로 불렸고, 신라 경덕왕 때 지평으로 개칭되었다. 1378년(우왕 4)에 유모 장씨(張氏)의 고향이라 하여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이듬해에 폐지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에 철장을 현 경계에 설치하고 다시 감무를 두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평군이 되었고, 1908년(융희 2) 칙령에 따라 양근군과 통합되어 양평군이 되었다.
본 읍지에서는 지평군 소속 고을의 정보와 자연환경, 시설 위치, 부세 내역, 인물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수록 항목은 진관(鎭管),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누정(樓亭), 학교, 사찰, 인물, 총묘(塚墓), 제영(題詠),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등으로 구성하였다.
기록된 전결 수를 통해 지평 지역이 조선시대에 비교적 작은 규모의 읍세를 지닌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지평군은 광주진관 소속으로, 동쪽으로 강원도 원주까지 주1, 남쪽으로 여주까지 주2, 서쪽으로 양근군까지 주3, 북쪽으로 홍천까지 주4, 서울까지는 주5로 하루 반 거리였다.
1899년 전국적으로 시행된 읍지 정비 작업의 일환으로 편찬한 읍지로, 지평군의 연혁과 자연환경, 부세 내역, 인물 정보 등 다양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19세기 말 지평군의 행정과 지리, 경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지방사 연구는 물론, 지역사회의 변화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