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군읍지(鎭川郡邑誌)』는 진천군수서리음성군수(鎭川郡守署理陰城郡守) 서창보(徐彰輔)의 책임하에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에서 편찬하였다. 책 끝부분에 ‘진천군수서리음성군수 서창보’라고 써 있고 군수의 인장이 찍혀 있어, 편찬 책임자와 편찬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서창보는 1900년(광무 4)경 진천군수서리음성군수로 재임하였다.
1책 23장 50면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5.9㎝, 가로 25.6㎝이다. 표제는 ‘진천군읍지(鎭川郡邑誌)’이고, 권수제는 ‘상산지(常山志)’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대한제국 출범 이후 지방행정 정보를 새롭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1899년(광무 3)에 편찬한 관찬 지리지이다. 대한제국 내부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 군의 읍지와 지도 2건씩을 한 달 안에 제출하게 하였다. 고종 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비하고,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 이후 지방행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1825년(순조 25) 정재경(鄭在褧)이 편찬한 『상산지(常山志)』를 저본으로 하여 대부분의 내용을 베껴 썼다. 원래 『상산지』는 상하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읍지는 원본의 상권 중 마지막 환적(宦蹟) 항목과 하권의 인물 관련 내용을 제외하고 한 권으로 만든 것이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인 「진천현지도(鎭川縣地圖)」와 ‘상산지 범례(常山志 凡例)’, 그리고 목록(目錄)을 제시하였다. 수록 항목은 강역(疆域), 분야(分野), 연혁, 군명(郡名), 성지(城池), 방리(坊里), 풍속(風俗), 형승(形勝), 산천, 누정(樓亭), 단사(壇祠), 교원(校院), 고적(古蹟), 제영(題詠), 공해(公署), 창저(倉儲), 관직(官職), 군액(軍額), 역원(驛院), 교량(橋梁), 제언(堤堰), 토산(土産), 토전(土田), 진공(進貢), 봉름(俸廩), 요역(徭役), 사찰, 봉수(烽燧), 도로, 장시(場市), 호구(戶口), 성씨(姓氏), 능묘(陵墓) 순으로 구성하였다.
앞부분에 ‘범례(凡例) 7조’를 기재하였는데, 옛 읍지의 내용이 소략해 『평양지(平壤誌)』의 예에 따라 모자란 내용을 덧붙이되, 옛 읍지에 실려 있는 것은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는 읍지 편찬의 배경과 기본 원칙을 우선적으로 밝혔다.
방리 항목에는 면리 구성과 각 면별 소속 ‘이(里)’, 관아로부터의 거리를 적어 놓았다. 산천 항목에는 두타산(頭陀山)과 대문령(大門嶺), 주천(注川) 등 산과 고개, 하천을 수록하였다. 분야 항목은 조선 일역 전체가 별자리 28수(宿) 중 기성(箕星)과 미성(尾星)의 분야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싣고 있는데, 항목 설정 자체부터가 매우 눈에 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진천읍지(鎭川邑誌)』와 『상산지』의 창저, 군액, 호구, 봉름, 요역 항목과 조세 관련 내용의 수치가 거의 같은 것으로 볼 때, 19세기 말 대신 18세기 중엽 진천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기의 읍지상송령에 따라 진천군에서 중앙에 보고한 읍지 내용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