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군읍지(昌平郡邑誌)』는 전라남도 창평군(昌平郡) 지금의 [담양군 창평면]에서 편찬하였다.
1책 7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7.3㎝, 가로 23㎝이다. 장정은 주1이고, 표지 재질은 황지(黃紙),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전라남도창평군읍지(全羅南道昌平郡邑誌)’인데, 이는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전라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고 창평군이 전라남도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권수제는 ‘창평읍지(昌平邑誌)’이다. 의정부(議政府) 참사관실(參事官室)의 인장이 찍혀 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2이다.
읍선생(邑先生) 항목 마지막에 김현승(金顯昇)이란 인물이 정유년(丁酉年)에 창평군에 부임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정유년은 1897년(광무 1)이다. 또한 읍지의 책 크기나 종이 재질, 판식이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읍지와 비슷하며, 대한제국기 의정부 참사관실의 인장이 찍힌 것도 같은 시기에 편찬된 다른 읍지와 같다. 따라서 1899년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추정한다. 간행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는데, 다른 읍지에 수록된 지도에 비해 크기가 세로 104㎝, 가로 56.3㎝로 상당히 크다. 창평군 소속 면리의 위치와 관아의 모습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1899년 읍지상송령의 목적이 채색 지도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에 부합한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도리(道里), 각면월경(各面越境), 공해(公廨),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사우(祠宇), 사찰, 산천, 누대, 형승(形勝), 결총(結摠), 호총(戶摠), 사환미(社還米), 환총(還摠), 군총(軍摠), 물산(物産), 인물, 사환(仕宦), 고적(古蹟), 읍선생 등으로 구성하였다.
19세 후반 창평군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읍지이다. 전체 분량은 적지만 지역 인물과 관련한 정보는 풍부하다. 창평 지역의 이름난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록해 두었는데, 양산보와 박이홍(朴以洪), 임억령(林億齡), 정철(鄭澈), 고경명(高敬命), 고인후(高因厚), 정홍명(鄭弘溟) 등의 이름이 보인다. 사환 항목에는 정청(鄭㵙)과 고정주(高鼎柱), 김동수(金東洙) 등 3인의 이름 및 관직, 거주지를 적어 놓았는데, 이전에 편찬된 읍지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다. 일제강점기 읍지 간행 시에 새로 추가된 관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장시와 읍선생 항목은 다른 읍지에 없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