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평군읍지 ()

창평군읍지
창평군읍지
인문지리
문헌
1899년, 전라남도 창평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이칭
이칭
전라남도창평군읍지(全羅南道昌平郡邑誌), 창평읍지(昌平邑誌)
문헌/고서
편찬 시기
1899년
저자
전라남도 창평군(昌平郡)
권책수
1책 7장
권수제
창평읍지(昌平邑誌)
판본
필사본
표제
전라남도창평군읍지(全羅南道昌平郡邑誌)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창평군읍지』는 1899년 전라남도 창평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7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는데, 그 크기가 상당히 크며 고을을 상세히 표현하여 자료적 가치가 높다. 19세 후반 창평군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읍지로, 분량은 적지만 지역 인물과 관련한 정보를 풍부하게 수록하였다.

정의
1899년, 전라남도 창평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저자 및 편자

『창평군읍지(昌平郡邑誌)』는 전라남도 창평군(昌平郡) 지금의 [담양군 창평면]에서 편찬하였다.

서지사항

1책 7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7.3㎝, 가로 23㎝이다. 장정은 주1이고, 표지 재질은 황지(黃紙),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표제는 ‘전라남도창평군읍지(全羅南道昌平郡邑誌)’인데, 이는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전라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되고 창평군이 전라남도에 소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권수제는 ‘창평읍지(昌平邑誌)’이다. 의정부(議政府) 참사관실(參事官室)의 인장이 찍혀 있으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2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읍선생(邑先生) 항목 마지막에 김현승(金顯昇)이란 인물이 정유년(丁酉年)에 창평군에 부임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여기서 정유년은 1897년(광무 1)이다. 또한 읍지의 책 크기나 종이 재질, 판식이 1899년(광무 3)에 편찬된 읍지와 비슷하며, 대한제국기 의정부 참사관실의 인장이 찍힌 것도 같은 시기에 편찬된 다른 읍지와 같다. 따라서 1899년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추정한다. 간행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구성과 내용

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 1장을 첨부하였는데, 다른 읍지에 수록된 지도에 비해 크기가 세로 104㎝, 가로 56.3㎝로 상당히 크다. 창평군 소속 면리의 위치와 관아의 모습까지 상세히 표현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1899년 읍지상송령의 목적이 채색 지도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에 부합한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도리(道里), 각면월경(各面越境), 공해(公廨),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사우(祠宇), 사찰, 산천, 누대, 형승(形勝), 결총(結摠), 호총(戶摠), 사환미(社還米), 환총(還摠), 군총(軍摠), 물산(物産), 인물, 사환(仕宦), 고적(古蹟), 읍선생 등으로 구성하였다.

의의 및 평가

19세 후반 창평군의 사정을 살필 수 있는 읍지이다. 전체 분량은 적지만 지역 인물과 관련한 정보는 풍부하다. 창평 지역의 이름난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을 기록해 두었는데, 양산보와 박이홍(朴以洪), 임억령(林億齡), 정철(鄭澈), 고경명(高敬命), 고인후(高因厚), 정홍명(鄭弘溟) 등의 이름이 보인다. 사환 항목에는 정청(鄭㵙)과 고정주(高鼎柱), 김동수(金東洙) 등 3인의 이름 및 관직, 거주지를 적어 놓았는데, 이전에 편찬된 읍지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다. 일제강점기 읍지 간행 시에 새로 추가된 관직자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장시와 읍선생 항목은 다른 읍지에 없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원전

『창평군읍지(昌平郡邑誌)』
『창평읍지(昌平邑誌)』
『창평현읍지(昌平縣邑誌)』
『호남도지(湖南道誌)』
『호남읍지(湖南邑誌)』
『호남지(湖南誌)

단행본

이재두, 『조선후기 읍지편찬의 계보』(민속원, 2023)
『한국지리지총서: 읍지 1~20』(아세아문화사, 1982~1986)

논문

이재두, 「19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읍지 편찬」(『조선시대사학보』 103, 조선시대사학회, 2022)
김태웅, 「근대개혁기 전국지리지의 기조와 특징: 규장각 소장 읍지를 중심으로」(『규장각』 4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3)
정대영, 「1899년 전국읍지상송령과 읍지편찬 연구」(『서지학보』 38, 한국서지학회, 2011)
양보경, 김경란, 「일제 식민지 강점기 읍지의 편찬과 그 특징」(『응용지리』 22,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지리연구소, 2001)
배성우, 「18세기 전국지리지 편찬과 지리지 인식의 변화」(『한국학보』 22-4, 일지사, 1996)
양보경, 「조선시대 읍지의 성격과 지리적 인식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87)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책을 만들 때, 다섯 군데를 바늘로 꿰어 실로 묶는 전통적인 제본 방식.

주2

청구기호: 규 10777.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박미선(전남대 HK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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