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극경세서동사보편통재는 조선시대 문신 신익성이 중국의 『황극경세서』에 우리나라 역사를 보충하여 서술한 역사서이다. 송나라 소옹의 『황극경세서』를 보충해 편년체로 서술하였다. 9권 7책의 목판본이다. 내제는 ‘강절선생황극경세서동사보편통재’로 되어 있다. 책머리에 범례가 있고 권1에서 권9까지 ‘이운경세(以運經世)’에 대한 내용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역사의 근거를 상고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두었다. 상고사에 인위적인 사실은 물론 천재지변 등도 기록한 점이 특징적이다. 고려시대사는 『고려사』·『동국통감』·『동국사략』을 인용했다.
9권 7책. 목판본. 내제는 ‘강절선생황극경세서동사보편통재(康節先生皇極經世書東史補編通載)’로 되어 있다.
왕명에 따라 편집된 듯하나 확실한 언급이 없고, 간년도 분명하지 않다. 이 책은 원래 소옹이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운데에 나오는 제5주 황극을 근거로 중국 역대왕조의 흥망성쇠를 태극(太極)의 원리에 의해 편저한 것으로 후주(後周)의 세종까지 기록한 것이다.
신익성은 소옹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송나라의 역사를 구준(丘濬)의 『세사정강(世史正綱)』에 의해 보충하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나라 단군창국(檀君創國)의 신화를 비롯,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왕조를 중심으로 전개된 역사적 사실들을 빠짐없이 게재하였다.
체재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머리에 범례가 있고, 권1은 이운경세(以運經世) 1∼4, 권2는 이운경세 5, 권3은 이운경세 6∼8, 권4는 이운경세 9, 권5∼9는 이운경세 10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범례에서 우리 나라 역사의 근거를 상고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두었고, 고려시대사는 정인지(鄭麟趾)가 저술한 『고려사』와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동국통감』과 박상(朴祥)이 지은 『동국사략』을 인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논설은 선유인 이언적(李彦迪)과 이황(李滉)의 설을 인용했음을 강조하였다.
중국의 역사는 공자가 제요(帝堯)로부터 정리하고 그 이상을 삭제한 예에 따랐으나 소옹은 제요 이전 2,149년을 소급해 국가의 형태가 갖추어진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 나라의 단군은 중국의 제요보다 26년 뒤인 무진년에 건국함을 주장하고 단군이 임금이 되기까지의 전설을 상고사에 따라 그대로 이기하였다.
또한, 주나라 성왕(成王) 4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한 사실과 기자가 조선으로 올 때 5,000명을 인솔하고 왔다는 사실을 첨가하였다.
상고사를 정리하면서 특기한 사실은 건국 · 정도(定都) · 영성(營城) · 궁실(宮室) · 왕의 생몰 · 전쟁 · 반란 등 인위적인 사실과 구름 · 안개 · 비 · 일식 · 월식 · 벼락 · 홍수 · 바람 · 해일 · 지진 등 천재와 지변, 기상의 변화 등도 빠짐없이 기록했다는 점이다.
특히, 왕의 계통 변화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기했고, 왕비 책봉에 있어서도 왕비의 가계나 내력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또한, 사당을 세우는 일도 자세히 기록했으며 축성(築城) · 도로 · 국교 · 제사 등을 비롯, 머리가 둘 달린 송아지의 출산이나 발이 여섯 있는 거북의 출현 등 기이한 사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국교 관계에 있어서는 외교의 시작과 절교에 있어서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한 불교와 도교의 전래를 비롯, 관제의 설정, 서책의 수입, 기록의 보존, 방물(方物)의 책정, 학교의 건설, 역마의 설치, 불사리의 전래, 사찰의 건립, 관복의 지정 등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중국 역사는 송나라가 원나라에 멸망될 때까지 정리되어 있고, 우리 나라는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건국할 때까지 기록되어 있다. 기록할 때 연대 표시는 육갑으로 하고 그 밑에 중국 연호를 기재하였다.
우리 나라 역사를 기재할 때는 중국 역사보다 한 글자 낮추어서 기록했고, 중국 역사를 쓰고 뒤에 이어서 쓸 때는 ‘○’표로 시작을 표시하였다.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