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4월 5일 경복중학교 출신인 이현상, 장의찬(張宜燦), 홍건표(洪建杓), 성익환(成益煥), 최고(崔高), 명의택(明義宅), 주낙원(朱樂元)과 중앙중학교(中央中學校) 졸업생인 남상갑(南相甲) 등 8명이 경성 봉래동에서 창당 발기를 하여 결성되었다. 전신은 1939년 경복중학교에서 조직된 독서회(讀書會)였다.
흑(黑)은 노예상태를 의미하고 백(白)은 희망과 자유를 상징하여, 흑에서 벗어나 백까지 투쟁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강령을 제정하고, 당수에 이현상, 부당수 장의찬, 섭외조직책 주낙원과 성익환 등 간부진을 결정하였다. 당 조직 이후 경성사범학교(京城師範學校), 경성광산전문학교(京城鑛山專門學校),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등의 학생들을 포섭하여 당원으로 삼았다.
흑백당의 행동 목표는 일본인 주택가 방화와 일본인 살해, 친일파 처단이었다. 연합군이 서울을 폭격할 것이라 판단한 이들은 폭격의 혼란 속에서 일본인 밀집 지역을 방화하고, 격문을 살포하기로 하였다.
방화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 명의택의 집에 비밀리에 휘발유를 비축하였다. 또한, 척살할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고 주소와 행적을 면밀히 조사하였다. 명단에는 이광수(李光洙), 하산무(夏山茂), 최린(崔麟) 등이 올랐다. 이를 위해 무기를 구입하고자 모은 회비로 이현상이 만주로 가서 권총 등을 구입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모교인 경복중학교에 설치된 무기고에서 소총 2자루와 실탄을 몰래 탈취하여 인근 야산 깊숙히 은닉하였다.
1942년 10월경 당원이었던 김창흠(金昌欽)이 충북 괴산에서 체포되었다. 체포 소식을 들은 당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국외로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10여 명은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베이징[北京]에서 다시 체포되었다. 체포된 당원 12명은 혹독한 고문를 겪은 뒤, 재판에 넘겨져 징역 8년에서 3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