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학은 불교의 사상과 신념을 전하는 동시에 언어의 미학적 가치 실현을 중시하는 종교문학이다. 한국 불교문학은 성립 과정에서 중국의 영향이 컸다. 신라의 향가는 불교적 신앙 체험과 서정 세계를 독창적으로 표출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불전의 재창작이나 승려의 개인 문집 발간이 이루어졌다. 근대기 이후 불교문학은 갈래, 기법, 창작층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 이 중 한용운은 불교시의 초석을 다졌으며, 이광수는 소설 분야에서 개척자 역할을 했다. 불교문학은 불교의 전파라는 목적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문학의 영역과 미적 범주를 확장했다.
불교문학은 불교와 문학 간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생겨난 용어이므로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따라 개념상의 차이가 발생한다. 불교와 문학 간의 대립을 전제로 한 시각은 논외로 하더라도, 불교를 중심에 두고 문학을 부차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시각과 문학을 중심에 두고 불교를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 두 가지로 구별된다.
지금까지 논의된 불교문학에 관한 개념 규정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불교의 경전 및 부처의 가르침에 관계되는 저작물 일체, 둘째, 불교경전 및 불교적인 것을 표현한 문학 일체, 셋째, 불교적인 관심을 문학 형식으로 창작한 것 등이다.
석가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불교문학은 유래하던 시와 신화 등의 영향을 받아 문학성을 풍부하게 간직할 수 있었다. 경전 중 『법화경(法華經)』, 『유마경(維摩經)』, 『화엄경(華嚴經)』은 웅장한 구성력, 운문과 산문을 섞은 특유의 표현을 갖춘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석가에 대한 숭앙심에서 출발한 불전(佛傳)은 『자타카(본생담:석가의 전생이야기)』로 먼저 정리되었으며 이후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등으로 이어졌다. 문학성을 구비한 인도의 불교문학은 불교전파와 더불어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인도 불교문학을 수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인도와 다른 경지를 개척했다. 중국은 구마라집(鳩摩羅什) 같은 한역가(漢譯家)의 노력으로 중국은 경전의 가르침과 문학성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었다. 자국 내 불교문화가 발전되면서부터는 기행문, 고승전, 영험담, 선어록(禪語錄) 등 자생적 작품이 활발히 창작되었는데 선종의 성행과 더불어 오도체험에 바탕을 둔 선시(禪詩), 공안(公案)이 나왔는가 하면 대중 전교(傳敎)에 목적을 둔 속강(俗講)도 널리 연행되었다. 후자는 대중에게 불교적 가르침과 호기심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을 흥성시키는 촉매 구실을 했다.
한국 불교문학의 성립에는 인도보다는 중국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한국 나름의 불교문학을 개척하기도 하였다. 삼국, 고려시대는 한역경전을 수용하고 판각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기행문, 향가(鄕歌), 게송(偈頌), 어록(語錄), 찬시(讚詩), 선시 등을 통해 불교의 종지(宗指)와 함께 개인적 정서를 표현하는데 힘썼다. 특히 신라에서는 게송, 어록 같은 전통 운문에 그치지 않고 독창적 시가인 향가로서 불교적 신앙 체험과 서정세계를 표출하여 중국 지성인들의 경탄마저 자아냈다.
고려시대는 불교설화가 폭넓게 채록된 시기로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야기 중에는 소설과 방불한 것도 발견된다. 시선일여(詩禪一如: 시와 선은 같은 것이다.)의 정신을 투영해주는 선시, 여러 서술방식의 승전(僧傳)이 나타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조선 초에는 억불책에도 불구하고 불전(佛傳)을 재창작한 소설이 등장하는데 일부는 독창적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조선 중기이후에는 승려들도 문집간행에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승려문집에 오른 작품들은 오도(悟道), 선취(禪趣)의 기운이 농후해 유자들에게 불교문학의 특성과 수준을 알리는데 효과적인 증거물이 되었다. 이외 불교설화, 소설, 가사 등은 근대기 직전까지 널리 수용되었으며 현대 불교문학의 발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근대기 이후 불교문학은 갈래, 기법, 창작층에서 과거와 차이를 보여준다. 시, 소설을 중심으로 대략 근대이후의 작가, 작품을 거론한다면 다음과 같다.
만해(萬海) 한용운은 근대 불교시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님의 침묵』은 과거시의 전통을 넘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여기서 님의 부재는 시공의 초월 끝에서 만나는 절대 무(無)나 공(空)이거나 식민지 아래서나마 불국토의 실현을 역설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이해된다. 최남선은 시조집 『백팔번뇌』에서 불타의 자비와 함께 만남, 이별이란 제재를 통해 번뇌와 인간고에 시달리는 인간의 초극의지를 전했으며 이광수는 「촛불」, 「무소구」 등의 시조에서 불교적 세계관, 운명관을 제시하였다.
서정주는 시집 『신라초』에서 숙명적인 갈등과 고뇌, 윤회라는 불교종지의 형상화를 꾀했으며 시집 『동천』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불교적 시간관념에 따라 윤회의 수레바퀴아래 놓여있는 나와 타자, 과거와 지금 사이의 접맥성을 밝혔다. 「승무」, 「고사」 등을 지은 조지훈은 전통미와 함께 선리(禪理), 선취(禪趣)의 분위기를 되살려내는데 힘을 기울였다.
소설 분야에서는 이광수가 개척자적 역할을 했다. 「꿈」, 「이차돈의 사(死)」, 「원효대사」 등은 『삼국유사』 소재 설화를 소설화한 것이며 「사랑」, 「유정」, 「무정」 또한 불교적 가르침이 중심적 주제로 제시된다. 특히 「무명」은 불교사상적 형상화가 잘 이루어진 것으로 세상과 자신의 구원 혹은 고해로부터의 탈출이 전제되어야함을 일깨워준다.
김동리는 「등신불(等身佛)」에서 독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수법으로 인간적 욕심을 버리고 청정한 자아를 찾으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이후 불교소설로는 김정한의 「수라도」, 김원일의 「파라암」, 한승원의 「포구의 달」, 고은의 「화엄경」, 조정래의 「대장경」 등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다른 장르인 수필, 희곡도 현대인들에게 가르침, 위무의 기능을 하며 꾸준히 창작되어왔다.
불교문학은 과거와 달리 현재는 침체상태에 있다. 창작 열기는 약화되었으며 독자들도 불교문학의 독자성과 참된 의미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정신의 문학화는 여전히 높은 감응력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불교문학의 미래는 작가, 독자, 연구자들의 관심과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하겠다.
불교문학은 불교의 전파라는 목적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문학의 영역과 미적 범주를 확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불교 특유의 상상력과 심오한 사상은 유교문화의 엄격성과 경직성을 넘어 다채로운 문학세계로 이끌어 준 것으로 이해된다. 현재에도 그 가치와 의미는 유효하다. 불교정신의 수용은 문학에 있어 감동과 미적 표현을 고양시킬 뿐만 아니라 문학이 궁극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인간주의적 정신을 드러내는데 유효하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