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232년(고종 19) 몽골의 제2차 침입 때 광주산성(廣州山城)에서 벌어진 전투.
역사적 배경
경과 및 결과
의의와 평가
사르타이의 공격을 막아냈던 광주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축성되고 고려시대에 일장성(日長城, 혹은 晝長城)이라 불렸던 오늘의 남한산성이다. 광주산성의 공격에 실패한 사르타이는 고려 공격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못한 채 처인성을 공격하다가 1232년 12월 16일 사살되었다. 광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세화는 광주부사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영전하였으며, 광주민들은 수년 후인 1235년(고종 22)에 국가로부터 요역(徭役) 등을 면제 받았다. 광주산성전투는 제2차 몽골 침입 때 고려 지방민이 정부군의 도움 없이 거둔 승첩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윤용혁, 혜안, 2011)
- 『고려대몽항쟁사연구』(윤용혁, 일지사, 1991)
- 『대몽항쟁사』(유재성,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8)
- 「1232년 용인 처인성에서의 대몽승첩」(윤용혁,『여몽전쟁과 강화도성 연구』,혜안, 2011)
- 「몽골의 2차침구와 처인성승첩: 특히 광주민과 처인부곡민의 항전에 주목하여」(윤용혁,『한국사연구』29, 1980)
- 「몽고의 침입에 대한 항쟁」(강진철,『한국사』7, 국사편찬위원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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