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 서첩 - 유봉 필첩 ( - )

서예
작품
국가유산
조선 중기, 숙종 대의 학자 윤증이 쓴 서첩.
작품/서화
작가
윤증(尹拯)
소장처
수원화성박물관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윤증서첩-유봉필첩(尹拯書帖-酉峯筆帖)
분류
기록유산/서간류/서예/서예
지정기관
경기도
종목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14년 07월 08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창룡대로 265 (이의동, 수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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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윤증서첩-유봉필첩』은 조선 중기, 숙종 대의 학자 윤증이 쓴 서첩이다. 표지 안쪽에 ‘유봉’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19장에 걸쳐 글씨를 썼는데 범질의 「자제계」와 도잠의 「귀거래사」 등을 중자(中字)의 행서와 행초서로 썼다. 18세기의 대학자이자 명필이었던 윤증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다. 2014년 7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조선 중기, 숙종 대의 학자 윤증이 쓴 서첩.
제작 배경

윤증(尹拯)의 본관은 파평(坡平)이고, 자는 자인(子仁)이며, 호는 명재(明齋) 또는 유봉(酉峯)이다. 『 명재유고』, 『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의 저술을 남긴 학자이다. 그는 높은 학문으로 천거되어 우의정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 필첩은 그의 호를 따 '유봉필첩'으로 붙였다.

내용

표지를 넘기면 안쪽에 ‘유봉’이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19장에 걸쳐 글씨를 썼는데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범질(范質)의 「자제계(子弟戒)」를 행서 소자로 썼고, 두 번째는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전반부를 행초서 중자(中字), 후반부를 해서 중자로 쓴 것이다. 세 번째는 소옹(邵雍)의 「군자음(君子吟)」, 주돈이(周敦頤)의 「졸부(拙賦)」, 장식(張栻)의 「자수명(自修銘)」 등을 해서 중자로 썼다.

형태 및 특징

윤증 서법의 바탕은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과 우계(牛溪) 성혼(成渾), 큰아버지 동토(童土) 윤순거(尹舜擧)와 석호(石湖) 윤문거(尹文擧), 부친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윤증의 외조부인 성수침은 조맹부(趙孟頫)와 선우추(鮮于樞)의 서풍을 따르면서도 특유의 청수(淸秀)한 서풍을 구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조맹부와 선우추의 서풍은 성수침을 통해 외손인 윤증에게도 전승되었다.

의의 및 평가

윤증의 필적으로 여러 간찰과 몇몇 시고(詩稿)가 전하였으나 이 서첩처럼 명필로서 그의 면모를 확인시켜 주는 유물은 드물다. 이 서첩을 통해 윤증의 서풍은 주로 성수침의 서풍을 계승하는 한편 원대(元代) 제가의 서풍을 수용, 자기화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의 대학자이자 명필이었던 윤증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다. 2014년 7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웹페이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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