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를 넘기면 안쪽에 ‘유봉’이라는 인장이 찍혀있다. 19장에 걸쳐 글씨를 썼는데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범질(范質)의 「자제계(子弟戒)」를 행서 소자로 썼고, 두 번째는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전반부를 행초서 중자(中字), 후반부를 해서 중자로 쓴 것이다. 세 번째는 소옹(邵雍)의 「군자음(君子吟)」, 주돈이(周敦頤)의 「졸부(拙賦)」, 장식(張栻)의 「자수명(自修銘)」 등을 해서 중자로 썼다.
윤증의 필적으로 여러 간찰과 몇몇 시고(詩稿)가 전하였으나 이 서첩처럼 명필로서 그의 면모를 확인시켜 주는 유물은 드물다. 이 서첩을 통해 윤증의 서풍은 주로 성수침의 서풍을 계승하는 한편 원대(元代) 제가의 서풍을 수용, 자기화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세기의 대학자이자 명필이었던 윤증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다. 2014년 7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