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강서원 ()

목차
관련 정보
고양 용강서원 홍살문과 삼문
고양 용강서원 홍살문과 삼문
유적
1735년, 조선 전기 무신 박순을 추모하기 위해 함경도 영흥군 용흥강 인근에 창건한 서원.
이칭
이칭
용강재(龍江齋), 용강재(龍江齋)
유적
건립 시기
1735년
관련 인물
박순, 조상경, 박서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감내길 25-10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용강서원은 1735년 조선 전기 무신 박순을 추모하기 위해 함경도 영흥군 용흥강 인근에 창건한 서원이다. 순조대에 조상경을 추향하였으며, 1868년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후 옛터에 기적비를 세웠다. 1980년 박순의 후손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용강서원을 복설하고, 박서의 위패도 함께 배향하였다.

목차
정의
1735년, 조선 전기 무신 박순을 추모하기 위해 함경도 영흥군 용흥강 인근에 창건한 서원.
내용

1735년(영조 1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순(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함경도 영흥군[현 함경남도 금야군 영흥읍] 용흥강 인근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41년(영조 17)에 훼철되었다가 1748년(영조 24)에 중건되었다. 순조대에 박순의 10대 외손인 조상경(趙尙絅, 1681~1746)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조상경은 1726년(영조 2)에 함경감사 재임시 용강서원 건립을 청원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하였던 인물이었다.

또한 조상경의 추향을 계기로 그의 후손들이 전답을 기부하는 등 경제적인 지원과 관여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어 위패는 묻고, 서원 터에 기적비(紀蹟碑)를 세웠다. 당시 용강재(龍江齋)만 남아 있었는데, 향사를 계속 지내오다가 뒤에 용강학교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 이후의 상황은 미상이다.

한편, 1980년 박순의 후손들이 박순의 부인 장흥 임씨(長興 任氏)의 묘소가 있는 고양군 벽제읍[현 고양시 일산동구]에 용강서원을 복설하고, 박순의 고조부인 박서(朴犀)를 함께 배향하였다. 현재의 서원은 사당과 재실, 태극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에는 전면에 용강서원 현판이 걸려있다. 재실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강당을 겸하고 있다. 서원의 외삼문인 태극문은 3개의 문으로 세워졌는데 정면 2칸 반,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향사일은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이다.

참고문헌

원전

『영흥군읍지(永興郡邑誌)』
『영흥향교지』
『용강서원철향일기(龍江書院撤享日記)』

단행본

『함경남도지』(함경남도지편찬위원회, 1968)
관련 미디어 (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