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천헌성 묘지명은 고구려 연개소문의 후손으로 당에 투항한 천헌성(651~692)의 일생을 기록한 묘지명이다. 현재 묘지명 원석과 탁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판독문만 남아 있다. 천헌성은 연개소문의 손자이자 당에 투항한 천남생의 아들이다. 천남생의 봉작을 이어받아 변국공(卞國公)에 책봉된 천헌성의 활약상과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과 신원 등에 대해 기재되어 있다. 특히 고구려가 멸망한 후 연개소문의 부인이 당에 들어와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이다. 고구려 멸망과 당에 투항한 연개소문 가문의 동향에 대한 자료로서 매우 가치가 있다.
정의
고구려 연개소문의 후손으로 당에 투항한 천헌성(651~692)의 일생을 기록한 묘지명.
개설
내용
묘지명에는 그가 고구려인이고 조상 대대로 재상을 지낸 집안 출신이라고 하였다. 증조부는 대조(大祚)로 막리지(莫離支)였고, 조부는 개금(蓋金)으로 태대대로(太大對盧)를 지냈는데 모두 병마(兵馬)를 담당하는 직책이었다고 하였다. 부친은 남생(男生)으로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를 지내다 당에 귀부하여 요동대도독 상주국 변국공에 제수되었다고 하였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현은(玄隱), 현일(玄逸), 현정(玄靜)이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연개소문 가문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며, 조부인 연개소문을 개금(蓋金)이라고 했다는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그의 손자인 천비묘지명에 부친을 천은으로 기록한 것과 대비해 보면 천비의 부친이자 천헌성의 아들인 천은은 바로 천현은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묘지명에는 그의 성품과 재능에 대해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잘 대접하며 도량이 넓고 크다고 하였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9세(659) 때 선인(先人)이 되었고, 16세(666) 때에는 연개소문의 뒤를 이어 대막리지가 된 부친 남생과 형제인 연남건(淵男建) 과 연남산(淵男産)과의 내분으로 부친이 국내성으로 쫓겨나자 직접 당에 들어가서 투항할 뜻을 전하고 당 고종에게 우무위장군을 제수받고 돌아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앞서 염유(冉有) 등을 먼저 당 고종에게 보낸 것도 기록하였다.
의봉 4년(679)에 부친인 천남생이 세상을 떠났으며, 그 해 9월에 정양군토반대사(定襄軍討叛大使)가 되었고, 다시 상주국(上柱國)이 되었으며, 개요 2년(682)에는 부친의 봉작을 이어받아 변국공(卞國公)에 책봉되었다. 영순 원년(682)에 조모상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하였는데, 조모는 바로 연개소문의 아내이다. 광택 원년(684) 10월에 운휘장군(雲麾將軍)과 수우위대장군원외치동정원(守右衛大將軍員外置同正員), 우우림위상하(右羽林衛上下)에 제수되었고, 수공 2년(686)에는 신무군대총관에 임명되었고, 수공 4년(690)에는 용수도대총관(龍水道大摠管)에 임명되어 반란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천수 원년(691) 9월에는 좌위대장군원외치동정원(左衛大將軍員外置同正員)에 제수되었다. 천수 2년(692) 2월에 검교천주자래사(檢校天樞子來使)에 임명되었고 아울러 현무북문압운대의동등사(玄武北門押運大儀銅等事)를 겸하는 등 관직을 연이어 받으며 황제를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역적 내준신(來俊臣)의 무고로 42세의 나이에 비명에 죽고 만다.
구시 원년(700) 8월에 신원이 되어 다음 해인 대족 원년(701) 2월 17일, 그가 세상을 떠난지 9년 만에 낙양의 선영 부친인 천남생의 무덤 동편에 묻히게 되었다. 묘지명의 마지막에는 그를 찬양하는 사(詞)에 고구려는 주몽이 건국했고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이어졌다는 것과 당에 투항한 것과 당에서의 활약상과 억울한 죽음과 신원 등에 대해 읊었다.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洛陽出土石刻時地記』(郭培育‧郭培智, 大象出版社, 2005)
- 『唐代海東蕃閥誌存』(羅振玉, 1937)
- 「천헌성묘지」(권덕영, 『중국 소재 한국 고대 금석문』,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 「천헌성묘지명」(박한제, 『역주 한국고대금석문』Ⅰ, 한국고대사회연구소, 1992)
- 「洛陽,西安出土北魏與唐高句麗人墓志及泉氏墓地」(趙振華,『洛陽古代銘刻文獻硏究』, 三秦出版社,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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