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의 원명은 Saddharmapuṇḍarīka Sūtra인데, 축법호(竺法護)는 『정법화경(正法華經)』, 구마라습(鳩摩羅什)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으로 한역(漢譯)하였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묘법연화경』은 대부분 송나라 계환(戒環)의 주해(註解)가 있는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7권본이다.
표지는 구름 무늬가 있는 녹색 비단, 내용은 닥종이에 필사되어 있다. 장정은 붉은색 실로 오침(五針)으로 묶어 놓았으며, 크기는 37.5×25.9㎝이다. 내용은 72장이며, 반엽(半葉)의 행자 수는 10행 18자이다.
책의 상하와 본문에 걸쳐 누습(漏濕)의 흔적이 있으나 필사된 글씨는 깨끗하다. 표지에는 서명과 관련된 묵서(墨書)나 제첨(題簽)이 없으며, 권수제(卷首題)는 『묘법년화경』이다.
1626년 3월에 한문으로 쓴 발원문에서 “ 상궁(尙宮) 최씨(崔氏) 혜원(慧遠)은 이 공덕으로 다음 세상에는 남자로 변하여 불도를 닦는 신성한 곳에 들어가 부처님을 뵙고, 듣지 못한 법문을 듣고 깨닫지 못한 진리를 깨달아 영원히 모든 번뇌를 벗어나 마침내 부처님이 깨친 지혜를 이루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표지 내부에 들어 있던 한문으로 된 낱장의 별지에는 “을축[1565년]에 태어난 상궁 최씨 혜원은 『법화경(法華經)』, 『참경(懺經)』, 『약사경(藥師經)』, 『장수경(長壽經)』, 『지장경(地藏經)』은 각 1건, 『금강경(金剛經)』은 3건을 이미 봉헌(奉獻)하였으며,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닫고자 한다.”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묘법연화경』 사경(寫經)도 상궁 최씨의 지속적인 공덕 과정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에 한글 사경이 출현될 수 있는 시대적 배경도 있다. 그것은 임진왜란 이후 승병(僧兵)들의 참전으로 인해 불교의 위상이 이전보다 나아진 데다 백성들도 공덕을 쌓기 위해 묘법연화경의 간행에 전국적으로 참여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묘법연화경』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의 40년 설법을 집약하는 정수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모두 7권 2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권1은 서품(序品)과 방편품(方便品)‚ 권2는 비유품(譬喩品)과 신해품(信解品)이 있다.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과 함께 가장 중요한 품으로 인정받는 방편품은 모든 사람에게 부처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이 목적임을 설하는 내용이다.
이 『묘법연화경』은 발원자, 완성의 시기와 목적 등을 알 수 있는 한글 사경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유산이다. 또한, 이 사경을 통해 17세기 전기의 한글 표음법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후 대한제국 시대인 1904년(고종 41) 7월에 궁인들이 사성(寫成)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 한글 사경도 원효사 묘법연화경과 동일하게 한글로 음역하고 현토를 해놓았다. 이러한 한글 사경의 제작 방식은 원효사 묘법연화경 이후에도 궁인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원효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11월 29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