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론 ()

근대사
문헌
1913년부터 1944년까지 발행된 대표적인 종합 잡지.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13년
종간 연도
1944년
폐간 연도
1942년
간행자
마키야마 고죠, 이시구로 구미, 김사연, 사토키치 모토키, 가마타 쇼이치
간행주기
월간
총호수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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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선공론』은 1913년부터 1944년까지 발행된 대표적인 종합 잡지이다. 31년 8개월 동안 조선공론사에서 일본어로 발행된 장수 잡지인데, 처음에는 도쿄에서 간행했지만 1920년 11월부터는 경성에서 간행하였다. 『조선급만주』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간행된 종합 잡지의 쌍벽을 이루었다. 초기에는 조선총독부의 여러 정책을 일본 지식인층의 입장에서 비판하는 글과 조선총독부 관료들의 사생활을 고발하는 글을 자주 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황실 중심, 국가 본위’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었다.

정의
1913년부터 1944년까지 발행된 대표적인 종합 잡지.
창간 경위

1906년 와세다[早稻田]대학을 졸업한 마키야마 고죠[牧山耕藏]가 일본의 유력 정치인인 이누카이 쯔요시[犬養毅]의 추천으로 한국에 와서 통감부 기관지 『경성일보』와 『일본정보통신』 경성지국에서 근무하다가 1913년 4월 도쿄에서 조선공론사 이름으로 『조선공론』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형식상 도쿄에서 간행한 것은 당시 조선총독부가 민간 잡지 발행을 통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편집과 영업은 경성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신문지 규칙」의 개정에 따라 잡지 발행 통제가 완화되자 1920년 8월 경성에서의 발행 허가를 얻어낸 뒤 1920년 11월호부터 경성에서 인쇄하기 시작하였다.

구성과 내용

창간 당시 “직언직필”을 표방하였다. 잡지의 본문은 공론, 잡보, 문예잡사, 사회 기사로 구성되었다. 공론에는 조선공론사 사장을 비롯해 일본인 찬조자들이 쓴 정치 · 경제 · 사회 관련 논설이 편성되었다. 잡보에는 조선의 산업과 정치 중심의 정보, 문예잡사에는는 수필이나 소설, 읽을거리, 사회 기사에는 주1 동향이나 주2 등 흥미 위주의 글이 실렸다.
당초 정치 잡지를 표방했지만 일본인의 대중적 취향을 고려한 기사도 많이 실렸다. 창간호부터 한동안 연재된 ‘사랑의 통감부와 총독부’는 통감부와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화류계 추문을 기사화한 것이다. 독자 투고에는 한시, 신체시, 주3, 주4, 주5, 주6 외에도 주변 잡기가 주7의 형태로 실렸다.

변천 및 현황

마키야마가 1917년 일본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뒤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1920년 5월 편집장이던 이시모리 구미[石森久彌]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다시 이시모리가 1933년 5월 조선신문사 대표이사 부사장에 취임하면서 관선 경기도 도회 의원인 김사연(金思演)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김사연은 사장에 취임하면서 “조선인의 진정한 목소리를 내지[=일본] 및 내지인에게 소개하는 것을 나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물론 『조선공론』은 공명정대한 언론으로 정치, 경제, 그 외의 모든 사회상을 비판함과 동시에 취미와 실익을 추구하여 국리민복에 힘쓸 것이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김사연의 사장 재직은 단명에 그쳤다. 1935년 5월 조선공론사의 지배인이던 사토키치 모토키[里吉基樹]가 경영권을 이어 받았다. 1942년 2월부터는 실업의 조선[實業之朝鮮] 사장을 맡고 있던 가마타 쇼이치[鎌田正一]에게 다시 경영권이 넘어갔다. 이때부터 조선총독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에 따라 『실업의 조선』과 『경성잡필(京城雜筆)』을 통합한 개권호로 다시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개권호는 1944년 11월[380호]까지 발간된 것이 확인된다.
일본과 한국에서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선공론』은 31년 8개월 동안 장수 발행되어, 『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간행된 종합 잡지의 쌍벽을 이루었다.
무단 통치 시기만 하더라도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다소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실질적 폐간호인 1942년 1월호에서 사토키치 사장이 “국책에 순응해 나를 버리고 대동을 위해 국가진운에 공헌해 왔다”고, 편집장인 호사카[保坂祐玄]가 “황실 중심, 국가 본위로 일본 정신 앙양, 국방 강화, 공산 소멸, 퇴폐 문화 배격주의로 영리는 돌보지 않고 잡지를 발행해 왔다”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전시체제기에는 국책 선전 매체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참고문헌

논문

이동훈, 「마키야마 고조[牧山耕藏]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석당논총』 82,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2022)
최혜주, 「잡지 『조선공론(朝鮮公論)』의 1930년대 사설에 나타난 조선통치론과 내선융화론」(『한국민족운동사연구』 98,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9)
김종식, 「1910년대 재조일본인 정치가의 정체성 형성과정 : 마키야마 고죠[牧山耕藏]를 중심으로」(『사림』 56, 수선사학회, 2016)
최혜주, 「잡지 『조선공론(朝鮮公論)』의 1910년대 사설에 나타난 조선통치론」(『한국민족운동사연구』 8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6)
주석
주1

기생, 색주가, 매춘부 등의 활동 분야. 우리말샘

주2

추잡하고 좋지 못한 소문. 우리말샘

주3

일본에서 옛날부터 내려온 정형의 노래. 31음을 정형으로 하는 단가를 이르는데, 넓은 뜻으로는 중국에서 온 한시와 대조하여 일본 고유의 시를 이르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4

5·7·5의 3구(句) 17자(字)로 된 일본 특유의 단시(短詩). 특정한 달이나 계절의 자연에 대한 시인의 인상을 묘사하는 서정시이다. 우리말샘

주5

일본 에도 시대에 유행한 5·7·5조의 17음 정형시. 인생의 한 단면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예리하게 찌르는 풍속시이자 생활시이다.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우리말샘

주6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글. 대체로 일기체, 편지 형식, 수필, 보고 형식 따위로 쓴다. 우리말샘

주7

신문, 잡지 따위에 싣기 위하여 원고를 써서 보냄. 또는 그 원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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