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후 만화가 본격적으로 움트자마자 5년 뒤 한국전쟁의 비극과 마주했다. 다시 한국만화는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1951년부터 피난지 부산에서 저급한 종이에 표절투성이인 만화가 보급되었다. 그때부터 창작, 보급, 인쇄 시스템이 새롭게 구축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아동문화가 전멸하다시피 한 토양에서 만화는 잡지와 단행본이라는 체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만화잡지의 쇠락과 단행본의 고급화는 오히려 판매 저하와 유통질서를 깨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한국에서 두드러지는 대여, 만화대본소의 등장이다.
1960년대 후반 합동문화사는 오성문고와 크로바문고를 합병하고 출판, 유통을 독점함으로써, 공존했던 제일문고와 광문당출판사를 무너뜨렸고 시장의 절대강자가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967년 7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02 주소지에서 설립 등록을 했으므로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합동 체제의 시작이라고 할수 있다. 세금 회피 목적으로 지인, 친척을 동원한 다수의 출판사를 만들었는데, 자회사로는 합동문화사, 상록문화사, 신일문화사, 신진문화사, 삼진사, 부엉이문고, 진영사, 화성사, 진영문화사, 진흥사, 흥진출판사, 칠성문화사, 회원사. 대우사 등이 있었다.
합동문화사의 출현은 1950년대 이후 서점, 잡지, 대본소 체제에서 꾸준히 성장하던 한국만화를 다시 나락을 빠뜨리게 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유통독점 합동은 1972년 『한국일보』가 설립한 소년 한국도서와 시장을 양분(兩分)한 채 1980년대 초 까지 건재했다. 이 기간은 말 그대로 출판, 유통업자들이 작가와 작품을 쥐고 흔든 시대였다. 주1 저질만화의 양산은 필연적으로 정부와 사회로부터는 저질, 비위생, 불량의 딱지를 달고 살았다.
합동문화사는 자회사를 만들기 위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한 경우가 많았는데, 열악한 풍토에서 빚어진 이른바 관습으로 보이며, 이와같은 경향은 198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합동문화사와 소년 한국도서는 세금 추적을 피하기 위한 이중장부와 편법을 동원했던 것으로 작가들은 증언했다. 그만큼 당시의 만화 유통은 전근대적이었다.
1960년대부터 15년간 이상 한국사회에 존재했던 만화 창작 유통의 독과점 업체이다. 합동문화사의 독점으로 인해 경쟁은 사라지고 작가는 예속되는 등 전반적으로 한국만화의 수준이 떨어졌다. 이는 결국 정부의 개입을 불렀고 심의, 검열, 통제의 덫에 스스로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