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적으로 작가들이 협업해 만든 출판사로, 당대 실력있는 김원빈, 추동성, 유세종, 김종래 작가를 영입해 만들었다. 그러나 작가들의 불협화음으로 짧은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1960년대 초부터 작가들이 그룹을 짓거나 대량 생산에 의욕을 불러 일으킨 것은 역시 서점, 잡지만화의 쇠퇴와 더불어 등장한 만화대본소 체제였다. 대여와 전국 총판을 통한 유통은 다작을 유인했다. 서점만화가 대본소에 밀려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사이였다. 책 구매력이 한정된 데다 더 값싸고 손쉽게 만화를 볼 수 있는 대본소 체제가 등장한 후, 대본소 위주의 한국만화는 1960년대 중반 이후 독과점 체제로 전환하면서 공식적인 한국만화의 유통 체제로 자리 잡았다.
작가들이 모여있던 신촌역[서대문구 대현동] 일대는 거대 유통기지화되었고, 신촌역을 통해 전국 주요 총판 보급소로도 기능하였다. 다작을 하기 위해 문하생 제도가 등장했고, 많은 작가들이 대량 생산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시스템이 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10여년 이상 지속된 독점 제작 유통시스템인 합동문화사는 한국만화를 후퇴시켰다. 창작물을 대여하는 대본소라는 창작자에게 불리한 유통시스템을 고착화시켰으며, 만화문화가 아동에 국한되며 저질오락이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결과적으로 기여했다.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강화되고 만화 창작 의욕은 위축되었다. 수많은 작가와 출판사들의 독점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자본의 압력에 굴복되었고 이를 견제하려 뛰어들었던 『한국일보』에서 설립한 소년 한국도서는 오히려 시장을 양분한 채 독점구조를 유지, 계승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대중문화 시장의 왜곡, 창작의 제한과 작가 시장의 위축, 정권의 탄압과 질적 저하, 만화문화의 후퇴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 오성문고는 1966년 박기당, 박광현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만든 작가 중심 출판사였으나 작가들의 불화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작가들이 자본에 굴하지 않고 독립출판을 도모했다는 데 현대 만화사적으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