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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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 정상에 있는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신 서낭당.
대관령 국사성황사 (大關嶺 國師城隍祠)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 정상에 있는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신 서낭당.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좌초된 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과 승조원 26명이 이 일대 육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들 중 자체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대한민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江陵地域 武裝共匪 侵透事件)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좌초된 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과 승조원 26명이 이 일대 육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들 중 자체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대한민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임응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사진가이다. 와세다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다. 1946년부터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으며 부산광화회를 결성했다. 한국전쟁에 종군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살롱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50년대부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사진 이념을 주장했다. 1966년부터는 한국 고건축사진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사진집 『한국의 고건축』(1977)을 출간했다.
임응식 (林應植)
임응식은 해방 이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장, 중앙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사진가이다. 와세다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다. 1946년부터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으며 부산광화회를 결성했다. 한국전쟁에 종군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살롱 사진’과 ‘회화주의 사진’을 주로 찍었다. 1950년대부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사진 이념을 주장했다. 1966년부터는 한국 고건축사진을 연재했고, 이를 모아 사진집 『한국의 고건축』(1977)을 출간했다.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 지방의 별칭.
영동지방 (嶺東地方)
강원도 태백산맥 동쪽 지방의 별칭.
소형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의 해상침투 사건.
북한잠수정 침투사건 (北韓潛水艇 浸透事件)
소형 잠수정을 이용한 북한의 해상침투 사건.
고려시대 북계와 함께 양계(兩界)를 구성하던 지방행정구역.
동계 (東界)
고려시대 북계와 함께 양계(兩界)를 구성하던 지방행정구역.
범일(梵日, 810~889)은 통일신라시대 선종 승려로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산조이다. 9세기 전반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을 배우고 귀국하여 명주(현재 강원도 강릉) 굴산사(崛山寺)에 머물렀다. 범일을 개산조로 하는 사굴산문은 고려 말까지 선을 주도하는 산문으로 성장하였다.
범일 (梵日)
범일(梵日, 810~889)은 통일신라시대 선종 승려로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산조이다. 9세기 전반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을 배우고 귀국하여 명주(현재 강원도 강릉) 굴산사(崛山寺)에 머물렀다. 범일을 개산조로 하는 사굴산문은 고려 말까지 선을 주도하는 산문으로 성장하였다.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조선시대 7가지 공무를 보았던 관청.
칠사당 (七事堂)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조선시대 7가지 공무를 보았던 관청.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 보살 좌상 (江陵 神福寺址 石造 菩薩 坐像)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강릉도부원수, 판덕창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권현룡 (權玄龍)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강릉도부원수, 판덕창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렴사, 어사중승, 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지상 (鄭之祥)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렴사, 어사중승, 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고대 동부여(東扶餘)의 도읍지.
가섭원 (迦葉原)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고대 동부여(東扶餘)의 도읍지.
경릉(敬陵)은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덕종 경릉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자묘로 조성되었으며, 경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석물을 추가 설치하지 않아, 이후 세자묘 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영되어 덕종릉과 대조를 이룬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경릉 (敬陵)
경릉(敬陵)은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덕종 경릉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자묘로 조성되었으며, 경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석물을 추가 설치하지 않아, 이후 세자묘 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영되어 덕종릉과 대조를 이룬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동해안 지역의 굿 중 꽃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굿거리. 송신제.
꽃노래굿
동해안 지역의 굿 중 꽃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는 굿거리. 송신제.
『임영지』는 강릉부사 맹지대가 강원도 강릉지방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788년에 편찬한 읍지이다. 3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으로, 크기는 세로 38.4㎝, 가로 26.47㎝이다. 광해연간에 출간된 전지, 1748년(영조 24)에 출간된 후지, 1788년(정조 12)에 출간된 속지 등 총 다섯 권으로 지금은 세 권만 전한다. 이후 1933년까지의 기록을 증보하여 『증수임영지』를 편찬하였다. 『증수임영지』의 항목은 건치연혁, 군명, 역로, 누정, 사찰, 고적, 풍속, 인물, 시화, 시문 등이다.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임영지 (臨瀛誌)
『임영지』는 강릉부사 맹지대가 강원도 강릉지방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788년에 편찬한 읍지이다. 3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으로, 크기는 세로 38.4㎝, 가로 26.47㎝이다. 광해연간에 출간된 전지, 1748년(영조 24)에 출간된 후지, 1788년(정조 12)에 출간된 속지 등 총 다섯 권으로 지금은 세 권만 전한다. 이후 1933년까지의 기록을 증보하여 『증수임영지』를 편찬하였다. 『증수임영지』의 항목은 건치연혁, 군명, 역로, 누정, 사찰, 고적, 풍속, 인물, 시화, 시문 등이다.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남양주 광릉 (南楊州 光陵)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안종원은 고려후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 문신으로 활동하였다. 1225년 출생으로 1341년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가 신돈(辛旽) 집권기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우왕 대에 환관의 폐단이나 사신들의 밀무역에 대한 간언을 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1394년 사망하였다.
안종원 (安宗源)
안종원은 고려후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까지 문신으로 활동하였다. 1225년 출생으로 1341년 과거에 급제하여 공민왕 대에 전법총랑(典法摠郎)에 이르렀다가 신돈(辛旽) 집권기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우왕 대에 환관의 폐단이나 사신들의 밀무역에 대한 간언을 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으나 1394년 사망하였다.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여민락」·「본환입」·「세환입」 등을 수록한 악보. 양금악보.
협률대성 (協律大成)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여민락」·「본환입」·「세환입」 등을 수록한 악보. 양금악보.
존무사는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이다.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 설치로 명주도만 남은 동계를 강릉도로 편성하고 존무사를 설치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동녕부를 돌려받자 서경에 존무사를 파견하여 서북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남도의 안렴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수령을 평가하며, 조세를 수납하는 일 등을 맡았다.
존무사 (存撫使)
존무사는 고려 후기, 강릉도(江陵道)와 평양도(平壤道)에서 백성을 안무하고 수령을 감찰하던 지방 관직이다. 1258년(고종 45)에 쌍성총관부 설치로 명주도만 남은 동계를 강릉도로 편성하고 존무사를 설치하였다. 1290년(충렬왕 16)에 동녕부를 돌려받자 서경에 존무사를 파견하여 서북면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존무사는 남도의 안렴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즉 백성의 괴로움을 묻고, 수령을 평가하며, 조세를 수납하는 일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