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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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을 통칭한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泰陵과 康陵)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정왕후의 능인 태릉과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인 강릉을 통칭한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이봉구가 건립한 누정.
강릉 방해정 (江陵 放海亭)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이봉구가 건립한 누정.
『강릉부지』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강릉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정조 연간의 관찬 읍지를 바탕으로 1889년에 편찬한 것을 베껴 썼다. 일제강점기에 식민 통치를 위한 방편으로 각 고을의 읍지를 모아 필사하게 한 과정에서 간행되었다. 1책 93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 『강릉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강릉부지 (江陵府誌)
『강릉부지』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강릉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1899년에 편찬한 읍지를 베껴 쓴 책이다. 정조 연간의 관찬 읍지를 바탕으로 1889년에 편찬한 것을 베껴 썼다. 일제강점기에 식민 통치를 위한 방편으로 각 고을의 읍지를 모아 필사하게 한 과정에서 간행되었다. 1책 93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 『강릉군지』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강릉향교는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이다. 1411년 화재로 향교가 소실되자, 2년 뒤 강릉대도호부 판관 이맹상과 최치운을 비롯한 강릉 유생 68명이 건의하여 중건되었다. 다른 지방 향교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국 향교 설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구조, 춘추로 거행하는 석전제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 및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향교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강릉향교 (江陵鄕校)
강릉향교는 1313년 강원도안렴사 김승인이 강릉에 설립한 지방의 유학교육 기관이다. 1411년 화재로 향교가 소실되자, 2년 뒤 강릉대도호부 판관 이맹상과 최치운을 비롯한 강릉 유생 68명이 건의하여 중건되었다. 다른 지방 향교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전국 향교 설립의 효시라 할 수 있다. 또한 건물 구조, 춘추로 거행하는 석전제 등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 및 전승되고 있는 점에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향교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 보살 좌상 (江陵 神福寺址 石造 菩薩 坐像)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소재한 무궁화.
강릉 방동리 무궁화 (江陵 方洞里 無窮花)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소재한 무궁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
강릉솔향수목원 (江陵솔香樹木園)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소재한 공립수목원.
1992년 창단된 강릉시 강릉시립예술단 소속 시립 교향악단.
강릉시립교향악단 (江陵市立交響樂團)
1992년 창단된 강릉시 강릉시립예술단 소속 시립 교향악단.
강릉원주대학교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대학로와 원주시 남원로에 있었던 국립대학교이다. 1946년 강릉사범학교가 설립되어, 강릉교육대학, 강릉대학으로 이어졌다. 원주대학과 통합·개편되어 2009년 강릉원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영동 유일의 국립종합대학교로서 21세기의 세계화 지방화 시대를 이끄는 인재양성에 힘쓰다가 2026년 강원대학교와 통합하였다.
강릉원주대학교 (江陵原州大學校)
강릉원주대학교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대학로와 원주시 남원로에 있었던 국립대학교이다. 1946년 강릉사범학교가 설립되어, 강릉교육대학, 강릉대학으로 이어졌다. 원주대학과 통합·개편되어 2009년 강릉원주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영동 유일의 국립종합대학교로서 21세기의 세계화 지방화 시대를 이끄는 인재양성에 힘쓰다가 2026년 강원대학교와 통합하였다.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호수인 경포호와 그곳에 자리한 누대이다. 경포호는 예로부터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이름이 높았고, 경포대 일대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히며 문학과 회화의 중요한 제재가 되었다. 1326년(충숙왕 13) 박숙에 의해 창건되었고, 몇 차례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江陵 鏡浦臺와 鏡浦湖)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호수인 경포호와 그곳에 자리한 누대이다. 경포호는 예로부터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이름이 높았고, 경포대 일대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꼽히며 문학과 회화의 중요한 제재가 되었다. 1326년(충숙왕 13) 박숙에 의해 창건되었고, 몇 차례 중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좌초된 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과 승조원 26명이 이 일대 육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들 중 자체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대한민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江陵地域 武裝共匪 侵透事件)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안가에서 좌초된 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원과 승조원 26명이 이 일대 육지로 침투한 사건이다. 이들 중 자체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대한민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하였다.
강릉 초당두부는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초당마을의 향토음식이다. 강릉 초당두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두부를 만들 때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당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부 마을은 1000년 이상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 공동체 기반의 생활 장소이며, 1990년대 이후 순두부를 매개로 한 상업 활동이 증가하면서 외지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
강릉 초당두부 (江陵 草堂豆腐)
강릉 초당두부는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초당마을의 향토음식이다. 강릉 초당두부는 다른 지역과 달리 두부를 만들 때 간수 대신 바닷물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당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두부 마을은 1000년 이상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 공동체 기반의 생활 장소이며, 1990년대 이후 순두부를 매개로 한 상업 활동이 증가하면서 외지 방문객이 급증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고대 동부여(東扶餘)의 도읍지.
가섭원 (迦葉原)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지역에 있었던 고대 동부여(東扶餘)의 도읍지.
범일(梵日, 810~889)은 통일신라시대 선종 승려로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산조이다. 9세기 전반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을 배우고 귀국하여 명주(현재 강원도 강릉) 굴산사(崛山寺)에 머물렀다. 범일을 개산조로 하는 사굴산문은 고려 말까지 선을 주도하는 산문으로 성장하였다.
범일 (梵日)
범일(梵日, 810~889)은 통일신라시대 선종 승려로 사굴산문(闍崛山門)의 개산조이다. 9세기 전반 당나라에 유학하여 선을 배우고 귀국하여 명주(현재 강원도 강릉) 굴산사(崛山寺)에 머물렀다. 범일을 개산조로 하는 사굴산문은 고려 말까지 선을 주도하는 산문으로 성장하였다.
1896년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항일 의병진.
관동구군창의진 (關東九郡倡義陣)
1896년강원도 강릉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항일 의병진.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민용호가 강릉에서의 의병활동에대하여 기록한 실기. 의병운동자료집.
관동창의록 (關東倡義錄)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의병장 민용호가 강릉에서의 의병활동에대하여 기록한 실기. 의병운동자료집.
맹지대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연간 장령·교리·승지·김천찰방·강릉현감·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세종 때의 명신 맹사성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 송시열과 송준길을 문묘에 종향하자는 상서문을 올렸다.
맹지대 (孟至大)
맹지대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연간 장령·교리·승지·김천찰방·강릉현감·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세종 때의 명신 맹사성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 송시열과 송준길을 문묘에 종향하자는 상서문을 올렸다.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남양주 광릉 (南楊州 光陵)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은 신라 하대의 왕족인 김주원이 묻혇다고 알려진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무덤이다. 선덕왕 사후 왕위 쟁탈전을 벌인 김주원이 김경신에게 패배하여 명주, 지금의 강릉 지역으로 퇴거하였다. 조선 중기에 김주원의 후손이 강릉의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읍지, 족보류에 김주원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해방 이후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강릉단오제」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박용녀 (朴龍女)
해방 이후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강릉단오제」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