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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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은 고려·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 무역을 담당한 상인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부 내의 시전(市廛), 전국적 행상(行商) 활동,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 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등을 토대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인삼 재배와 홍삼 제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개성상인들은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불리는 복식 부기법, 사환(使喚) 교육과 차인(差人)의 지방 진출 등을 지원하는 제도, 신용을 기초로 하는 금융 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합리적이고 장기 지속 가능한 상업 관습을 창출하였다.
개성상인 (開城商人)
개성상인은 고려·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 무역을 담당한 상인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부 내의 시전(市廛), 전국적 행상(行商) 활동,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 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등을 토대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인삼 재배와 홍삼 제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개성상인들은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불리는 복식 부기법, 사환(使喚) 교육과 차인(差人)의 지방 진출 등을 지원하는 제도, 신용을 기초로 하는 금융 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합리적이고 장기 지속 가능한 상업 관습을 창출하였다.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북측 지역인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개발한 공업단지. 개성공업지구.
개성공단 (開城工團)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북측 지역인 개성시 봉동리 일대에 개발한 공업단지. 개성공업지구.
박연폭포는 개성시 북부 박연리에 있는 폭포이다. 폭포의 높이 37m, 너비 1.5m로,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이다. 성거산과 천마산 사이의 골짜기로 흘러내린 물이 박연에 모였다가 떨어지는 폭포이다. 옛날에 박진사(朴進士)가 놀러왔다가 폭포 아래 사는 용녀(龍女)에게 홀려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아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한 진사의 어머니가 떨어져 죽어서 박씨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설과 바가지와 같이 생긴 담소에서 떨어지는 폭포라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일찍이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박연폭포 (朴淵瀑布)
박연폭포는 개성시 북부 박연리에 있는 폭포이다. 폭포의 높이 37m, 너비 1.5m로,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이다. 성거산과 천마산 사이의 골짜기로 흘러내린 물이 박연에 모였다가 떨어지는 폭포이다. 옛날에 박진사(朴進士)가 놀러왔다가 폭포 아래 사는 용녀(龍女)에게 홀려 백년가약을 맺었는데, 아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생각한 진사의 어머니가 떨어져 죽어서 박씨의 성을 따서 이름을 지었다는 설과 바가지와 같이 생긴 담소에서 떨어지는 폭포라고 하여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일찍이 서경덕, 황진이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있는 사립여자고등학교.
호수돈여자고등학교 (好壽敦女子高等學校)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에 있는 사립여자고등학교.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변안열 (邊安烈)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북한 개성시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
고려박물관 (高麗博物館)
북한 개성시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
개성부는 고려시대 왕경(王京)에 설치되었던 특별 행정구역, 또는 왕경 인근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995년(성종 14)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폐지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두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도성 안을 관할하는 개성부를 다시 두었다.
개성부 (開城府)
개성부는 고려시대 왕경(王京)에 설치되었던 특별 행정구역, 또는 왕경 인근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995년(성종 14)에 처음 설치되었다가 1018년(현종 9)에 폐지되었고, 1062년(문종 16)에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두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도성 안을 관할하는 개성부를 다시 두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한국미술사학회 대표위원 등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崔淳雨)
국립중앙박물관장, 한국미술사학회 대표위원 등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홍삼무역 (紅蔘貿易)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개성 만월대 유적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송악산 남쪽 구릉 지대에 있는 고려시대 명문 기와, 금속활자와 청자·경첩 등이 출토된 궁궐터이다. 만월대 유적은 고려시대 국왕의 정치 공간이자 생활 공간으로 919년(태조 2)부터 1392년(공양왕 4)까지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던 궁궐 유적이다. 1973∼1974년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총 8차례에 걸쳐 남북 공동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현재 북한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성 만월대 유적 (開城 滿月臺 遺蹟)
개성 만월대 유적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송악산 남쪽 구릉 지대에 있는 고려시대 명문 기와, 금속활자와 청자·경첩 등이 출토된 궁궐터이다. 만월대 유적은 고려시대 국왕의 정치 공간이자 생활 공간으로 919년(태조 2)부터 1392년(공양왕 4)까지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던 궁궐 유적이다. 1973∼1974년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고,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총 8차례에 걸쳐 남북 공동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현재 북한 국보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성 덕물산 도당굿은 개성 덕물산(德物産) 상산(上山)의 무촌(巫村)에서 봄의 꽃맞이와 잎맞이 신사로 드린 마을굿이다. 개성 덕물산은 만신의 조종(祖宗)으로 간주되는 산이고, 마을 단위의 도당굿으로 봄의 꽃맞이, 잎맞이 신사로 드린 굿이다. 대체로 유가 - 굿각에서의 굿 - 마당굿- 서낭대 들고 마을을 돌며 난장치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유가 행렬에는 무당패, 굿중패, 사당패가 모두 동참해서 유가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당패를 중심으로 여러 놀이패들이 모두 참여하여 신명난 연희를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개성 덕물산 도당굿 (開城 德物山 都堂굿)
개성 덕물산 도당굿은 개성 덕물산(德物産) 상산(上山)의 무촌(巫村)에서 봄의 꽃맞이와 잎맞이 신사로 드린 마을굿이다. 개성 덕물산은 만신의 조종(祖宗)으로 간주되는 산이고, 마을 단위의 도당굿으로 봄의 꽃맞이, 잎맞이 신사로 드린 굿이다. 대체로 유가 - 굿각에서의 굿 - 마당굿- 서낭대 들고 마을을 돌며 난장치기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유가 행렬에는 무당패, 굿중패, 사당패가 모두 동참해서 유가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당패를 중심으로 여러 놀이패들이 모두 참여하여 신명난 연희를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찹쌀가루를 끓는 물로 익반죽하여 밤톨만큼씩 둥글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 여러가지 고물을 묻혀 만든 떡.
경단 (瓊團)
찹쌀가루를 끓는 물로 익반죽하여 밤톨만큼씩 둥글게 빚어, 끓는 물에 삶아 여러가지 고물을 묻혀 만든 떡.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이란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에 따라 중생을 다섯 부류로 나눈 유식학파의 교리이다. 성문정성, 독각정성, 보살정성, 부정정성, 무유정성의 다섯 부류 중 보살정성과 부정정성의 일부에 대해서만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로 인해 오성각별설은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성개성불' 사상과 대립된다.
오성각별설 (五性各別說)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이란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에 따라 중생을 다섯 부류로 나눈 유식학파의 교리이다. 성문정성, 독각정성, 보살정성, 부정정성, 무유정성의 다섯 부류 중 보살정성과 부정정성의 일부에 대해서만 성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로 인해 오성각별설은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성개성불' 사상과 대립된다.
「복령사」는 조선 전기 박은(朴誾)이 개성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는 복령사(福靈寺)를 소재로 지은 칠언율시이다. 정조가 교정한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권 3과 역대의 여러 시선집에 실려 있다. 박은의 시명(詩名)은 그가 살았을 당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 작품은 박은의 시 중에서 널리 알려진 절창(絕唱)으로 꼽힌다.
복령사 (福靈寺)
「복령사」는 조선 전기 박은(朴誾)이 개성의 송악산(松岳山)에 있는 복령사(福靈寺)를 소재로 지은 칠언율시이다. 정조가 교정한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 권 3과 역대의 여러 시선집에 실려 있다. 박은의 시명(詩名)은 그가 살았을 당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이 작품은 박은의 시 중에서 널리 알려진 절창(絕唱)으로 꼽힌다.
경공업 부문의 전문가, 간부를 양성하는 북한의 종합대학.
고려성균관 (高麗成均館)
경공업 부문의 전문가, 간부를 양성하는 북한의 종합대학.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기현 (畿縣)
고려시대 왕경을 뜻하는 적현[赤縣, 京縣]과 함께 경기를 구성했던 개경 인근의 군현.
중경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開京)과 조선시대 유수부(留守府) 개성(開城)의 별칭이다. 고려 태조는 송악을 중심으로 개성군 등 5개 지역을 묶어 개주(開州)라고 하였다. 이와 함께 양경 혹은 삼경(三京) 체제를 마련하여, 서경(西京)과 동경(東京), 남경(南京) 등에 개경의 역할을 보완하는 기능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중경은 조선시대에는 개성을 칭하던 별칭이다.
중경 (中京)
중경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開京)과 조선시대 유수부(留守府) 개성(開城)의 별칭이다. 고려 태조는 송악을 중심으로 개성군 등 5개 지역을 묶어 개주(開州)라고 하였다. 이와 함께 양경 혹은 삼경(三京) 체제를 마련하여, 서경(西京)과 동경(東京), 남경(南京) 등에 개경의 역할을 보완하는 기능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중경은 조선시대에는 개성을 칭하던 별칭이다.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우의정,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우량 (鄭羽良)
조선 후기에, 병조판서, 우의정,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령전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고려시대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이다. 고려 원묘(原廟) 중의 하나로 태조·황고(太祖皇考)의 별묘(別廟)라고 불렸다.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친(부·조·증조·고조)의 진영을 봉안한 영전(影殿)으로 5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나라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경령전에 고하였다. 주고(奏告)와 부묘(祔廟) 의례는 태묘 의례를 따랐다. 의례의 위상은 원구·사직·태묘와 같이 대사에 올라 있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오·추석·중구일에 국왕이 친히 제사하였다.
경령전 (景靈殿)
경령전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고려시대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이다. 고려 원묘(原廟) 중의 하나로 태조·황고(太祖皇考)의 별묘(別廟)라고 불렸다.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친(부·조·증조·고조)의 진영을 봉안한 영전(影殿)으로 5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나라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경령전에 고하였다. 주고(奏告)와 부묘(祔廟) 의례는 태묘 의례를 따랐다. 의례의 위상은 원구·사직·태묘와 같이 대사에 올라 있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오·추석·중구일에 국왕이 친히 제사하였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사립 전문계 고등학교.
정화여자상업고등학교 (貞和女子商業高等學校)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사립 전문계 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