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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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조사시찰단은 1881년(고종 18) 4월 10일부터 윤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다. 당시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의 국정과 문물을 탐방하기 위해 12명의 전문위원을 비롯해 12반 총 6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암행어사의 자격을 유지하며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행동하였다.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가 부담하고 일본에도 출발 이후 통보하는 등 자주성 유지에 노력했다. 전문위원들은 분야를 나누어 각기 국정 시찰을 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시찰단의 활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국내 개화세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조사시찰단 (朝士視察團)
조사시찰단은 1881년(고종 18) 4월 10일부터 윤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다. 당시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던 일본의 국정과 문물을 탐방하기 위해 12명의 전문위원을 비롯해 12반 총 6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암행어사의 자격을 유지하며 비밀리에 개별적으로 행동하였다. 비용은 전적으로 조선 정부가 부담하고 일본에도 출발 이후 통보하는 등 자주성 유지에 노력했다. 전문위원들은 분야를 나누어 각기 국정 시찰을 하고 자세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조사시찰단의 활동은 성공리에 이루어졌고 국내 개화세력의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1883년(고종 20) 10월 조선과 영국 사이에 맺은 조약.
조영수호통상조약 (朝英修好通商條約)
1883년(고종 20) 10월 조선과 영국 사이에 맺은 조약.
조독수호통상조약은 1883년(고종 20)에 체결된 조선과 독일 사이의 통상·우호·항해 조약이다. 1882년에 조미조약·조영조약이 체결되자, 북경주재 독일공사 브란트(Brandt, M. von)의 노력으로 「조독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영조약과 비슷한 내용으로 체결되었는데 영국과 독일 정부가 관세율을 구실로 비준을 거부하였다. 1883년에 조선과 독일 양국간의 우호관계의 유지, 최혜국 대우, 선박 내왕 및 관세규정, 밀무역 금지, 치외법권의 인정, 특권에 대한 균등 참여의 보장 등 독일의 이익과 요구가 반영된 새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독수호통상조약 (朝獨修好通商條約)
조독수호통상조약은 1883년(고종 20)에 체결된 조선과 독일 사이의 통상·우호·항해 조약이다. 1882년에 조미조약·조영조약이 체결되자, 북경주재 독일공사 브란트(Brandt, M. von)의 노력으로 「조독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영조약과 비슷한 내용으로 체결되었는데 영국과 독일 정부가 관세율을 구실로 비준을 거부하였다. 1883년에 조선과 독일 양국간의 우호관계의 유지, 최혜국 대우, 선박 내왕 및 관세규정, 밀무역 금지, 치외법권의 인정, 특권에 대한 균등 참여의 보장 등 독일의 이익과 요구가 반영된 새 조약을 체결하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경복궁의 동쪽 문(門). 궁궐문.
경복궁 건춘문 (景福宮 建春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경복궁의 동쪽 문(門). 궁궐문.
1970년 역사학자 한우근의 개항기 한국 상업구조의 변천에 관한 학술서.
한국개항기의 상업구조 (韓國開港期의 商業構造)
1970년 역사학자 한우근의 개항기 한국 상업구조의 변천에 관한 학술서.
『송계집』은 1972년 근대 유학자 한덕련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본집 20권과 속집 4권 총 24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889수와 편지글 399편을 비롯해 자성록, 제문, 행장, 묘갈명 등 다양한 산문들이 수록되었으며, 도학적 주제와 심성 수양, 문사들과의 교유, 지역 답사 등 그의 사상과 일상을 잘 드러낸다. 특히 다방면에 걸친 저작을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 유학자의 삶과 교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송계집 (竦溪集)
『송계집』은 1972년 근대 유학자 한덕련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본집 20권과 속집 4권 총 24권 1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 889수와 편지글 399편을 비롯해 자성록, 제문, 행장, 묘갈명 등 다양한 산문들이 수록되었으며, 도학적 주제와 심성 수양, 문사들과의 교유, 지역 답사 등 그의 사상과 일상을 잘 드러낸다. 특히 다방면에 걸친 저작을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 유학자의 삶과 교류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객주(客主)』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연재된, 김주영(金周榮)이 지은 대하소설이다. 임오군란 전후를 배경으로, 보부상의 활동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사회 계층들의 움직임을 다룸으로써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 놓인 개항기 조선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대의 언어와 습속에 대한 박물학적인 지식을 통해 역사적 격변기의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객주 (客主)
『객주(客主)』는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연재된, 김주영(金周榮)이 지은 대하소설이다. 임오군란 전후를 배경으로, 보부상의 활동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사회 계층들의 움직임을 다룸으로써 급격한 사회적 변화 속에 놓인 개항기 조선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대의 언어와 습속에 대한 박물학적인 지식을 통해 역사적 격변기의 민중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임거일고』는 1932년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 학자 조백승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 시, 권2에 차자, 연대, 서, 제문, 잡저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3은 부록이다. 이 책을 통해 조선 말기 문인 지식인의 삶과 의식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임거일고 (林渠逸稿)
『임거일고』는 1932년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 학자 조백승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이다.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간행되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 시, 권2에 차자, 연대, 서, 제문, 잡저 등이 수록되어 있고, 권3은 부록이다. 이 책을 통해 조선 말기 문인 지식인의 삶과 의식 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
내지 통상은 개항기에 열강과의 조약에 의해 외상들이 내지에 진출하여 현지 상인이나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행위이다. 외상의 내지 통상은 조영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전면적으로 허용되었으며, 내지 통상을 주도한 것은 청상이었으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확실해진 러일전쟁 후에는 일상들이었다. 외상의 내지 통상으로 인해 조선 상인들이 점차 위축되었으나 외상들에 의한 상권 재편 및 장악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지 통상 (內地 通商)
내지 통상은 개항기에 열강과의 조약에 의해 외상들이 내지에 진출하여 현지 상인이나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행위이다. 외상의 내지 통상은 조영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전면적으로 허용되었으며, 내지 통상을 주도한 것은 청상이었으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확실해진 러일전쟁 후에는 일상들이었다. 외상의 내지 통상으로 인해 조선 상인들이 점차 위축되었으나 외상들에 의한 상권 재편 및 장악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회사는 개항기, 특히 대한제국기에 설립되어 정부의 허가를 얻어 특정 지역에서 특정 물건의 품종에 대한 독점 취급권을 가진 상업회사이다.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고 특정 지역의 특정 품종의 독점적 취급권을 얻은 상업회사로서 개항 초기인 1880년대에는 객주, 시전상인이 그 설립 주체였으나 대한제국기에는 관료도 설립 주체로 대거 참여하였다. 상회사는 실제로 상행위를 하는 군소 상인들을 수탈하는 기능을 하였다.
상회사 (商會社)
상회사는 개항기, 특히 대한제국기에 설립되어 정부의 허가를 얻어 특정 지역에서 특정 물건의 품종에 대한 독점 취급권을 가진 상업회사이다.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고 특정 지역의 특정 품종의 독점적 취급권을 얻은 상업회사로서 개항 초기인 1880년대에는 객주, 시전상인이 그 설립 주체였으나 대한제국기에는 관료도 설립 주체로 대거 참여하였다. 상회사는 실제로 상행위를 하는 군소 상인들을 수탈하는 기능을 하였다.
통치마는 개항기에 치마폭을 이어 통으로 만든 치마이다. 이 치마는 전통치마인 자락치마에 부분적으로 조끼허리를 달아서 치마의 트인 곳을 모두 박아 통으로 만들고 길이를 짧게 만든 치마이다. 조선시대의 자락치마는 길이가 길고 옷감이 많이 들며 속옷이 복잡하여, 활동할 때 한쪽 자락을 손으로 여미고 다녀야만 하는 불편하고 비경제적인 옷으로 인식되었다. 통치마는 땅에 끌리던 치마 길이를 짧게 하고 트인 곳을 모두 막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실용적인 옷이었다.
통치마
통치마는 개항기에 치마폭을 이어 통으로 만든 치마이다. 이 치마는 전통치마인 자락치마에 부분적으로 조끼허리를 달아서 치마의 트인 곳을 모두 박아 통으로 만들고 길이를 짧게 만든 치마이다. 조선시대의 자락치마는 길이가 길고 옷감이 많이 들며 속옷이 복잡하여, 활동할 때 한쪽 자락을 손으로 여미고 다녀야만 하는 불편하고 비경제적인 옷으로 인식되었다. 통치마는 땅에 끌리던 치마 길이를 짧게 하고 트인 곳을 모두 막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실용적인 옷이었다.
아동복은 아이가 출생 이후 아동기에 걸쳐 착용하는 복식이다. 근대 아동관이 형성되기 이전의 아동은 성인과 유사한 형태의 복식을 입었으나 개항 이후 서구 사상의 영향으로 근대 교육과 양육법 등이 도입되고 아동을 인격체로 인식하면서 아동을 위한 옷인 아동복이 생겨났다. 개항기 이후 아동복은 한복과 양복의 혼용기를 거쳐 양복이 일상 아동복으로 정착했으며, 한복은 특별한 행사에 착용하게 되었다.
아동복 (兒童服)
아동복은 아이가 출생 이후 아동기에 걸쳐 착용하는 복식이다. 근대 아동관이 형성되기 이전의 아동은 성인과 유사한 형태의 복식을 입었으나 개항 이후 서구 사상의 영향으로 근대 교육과 양육법 등이 도입되고 아동을 인격체로 인식하면서 아동을 위한 옷인 아동복이 생겨났다. 개항기 이후 아동복은 한복과 양복의 혼용기를 거쳐 양복이 일상 아동복으로 정착했으며, 한복은 특별한 행사에 착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