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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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남인 (南人)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박곡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관료인 이원록의 시·서(書)·전·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남인의 중진으로 활동한 저자의 현실 인식과 정치관, 가족과 교유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허목, 이현일로 대표되는 당대 남인계의 동향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박곡문집 (朴谷文集)
『박곡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관료인 이원록의 시·서(書)·전·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남인의 중진으로 활동한 저자의 현실 인식과 정치관, 가족과 교유관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허목, 이현일로 대표되는 당대 남인계의 동향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방산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허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는 성재 허전의 제자로서 근기남인의 계보를 이은 퇴계학파 학자다. 철학사상면에서 퇴계 이황의 학설을 옹호하고, 지리와 역사에까지 박학하였던 저자의 식견이 수록작에 나타나 있다.
방산문집 (舫山文集)
『방산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허훈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는 성재 허전의 제자로서 근기남인의 계보를 이은 퇴계학파 학자다. 철학사상면에서 퇴계 이황의 학설을 옹호하고, 지리와 역사에까지 박학하였던 저자의 식견이 수록작에 나타나 있다.
서학은 17세기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학문 사상, 과학 기술, 천주교 신앙 등을 연구, 수용, 비판하던 사조를 폭넓게 지칭하는 용어이다. 처음에는 기호남인을 중심으로 서양의 과학, 철학, 종교, 지리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북학파는 특히 과학 기술에 주목하여 근대 지향적인 서기(西器) 수용론을 주장하면서도 천주교 교리만은 배척하였다. 전통 유학자들과 노론계 위정자들은 처음부터 서학을 배척하는 척사론(斥邪論)을 주장하여, 근대 지향적인 학문 조류가 점차 사라지고 척사 운동과 천주교 박해만이 남게 되었다.
서학 (西學)
서학은 17세기 이후 중국을 통해 조선에 들어온 서양의 학문 사상, 과학 기술, 천주교 신앙 등을 연구, 수용, 비판하던 사조를 폭넓게 지칭하는 용어이다. 처음에는 기호남인을 중심으로 서양의 과학, 철학, 종교, 지리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북학파는 특히 과학 기술에 주목하여 근대 지향적인 서기(西器) 수용론을 주장하면서도 천주교 교리만은 배척하였다. 전통 유학자들과 노론계 위정자들은 처음부터 서학을 배척하는 척사론(斥邪論)을 주장하여, 근대 지향적인 학문 조류가 점차 사라지고 척사 운동과 천주교 박해만이 남게 되었다.
조선후기 문신 홍중인이 선조 이후의 당쟁에 대한 사실과 비평 등을 수록한 역사서.
아주잡록 (鵝洲雜錄)
조선후기 문신 홍중인이 선조 이후의 당쟁에 대한 사실과 비평 등을 수록한 역사서.
이용휴(李用休)는 조선 후기 『탄만집』, 『혜환시초』, 『혜환잡저』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이침(李沉)의 아들이며,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작은 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용휴는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태도로 양명학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 등 다양한 사유를 흡수하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유입되었던 서학의 영향권에 위치한 인물로, 이러한 사상적 사유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용휴 (李用休)
이용휴(李用休)는 조선 후기 『탄만집』, 『혜환시초』, 『혜환잡저』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이침(李沉)의 아들이며,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작은 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용휴는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태도로 양명학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 등 다양한 사유를 흡수하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유입되었던 서학의 영향권에 위치한 인물로, 이러한 사상적 사유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조선 숙종 연간에 정권이 남인(南人)에게서 서인(西人)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
유악남용사건 (油幄濫用事件)
조선 숙종 연간에 정권이 남인(南人)에게서 서인(西人)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
조선후기 의 정치적 대립에 관한 사실을을 기록한 정치서. 당쟁기록.
형감합편 (衡鑑合編)
조선후기 의 정치적 대립에 관한 사실을을 기록한 정치서. 당쟁기록.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문묘출향 (文廟黜享)
문묘출향은 1689년(숙종 15) 3월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위판을 문묘에서부터 축출하고 제사를 폐지한 사건이다. 1624년 서인이 이이와 성혼의 문묘 배향을 건의하였으나 남인은 이이가 불교에 빠진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서인과 남인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2년 김석주와 송시열이 주도하여 문묘에 배향되었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출향이 결정되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향되었다. 문묘출향과 복향은 서인과 남인 간의 당쟁 향배와 추이를 같이 하였으며, 많은 정치 사회적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
갑인예송은 1674년(현종 15)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국상에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일어난 예송 사건이다. 인선왕후가 장자의 부인인가 차자의 부인인가에 따라 자의대비는 기년복 혹은 대공복을 입어야 했는데, 이는 효종이 장자인가 차자인가 하는 효종의 종통과도 연관된 문제였다. 현종은 효종의 종통을 문란하게 만든 서인의 대공복 논리에 분노하여 복제를 기년복으로 개정하고 서인을 처벌하였다. 복제 개정 후 한 달여 만에 현종이 승하하자 14세의 나이에 즉위한 숙종은 장례 후 과감히 서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남인을 등용하여 정국을 개편했다.
갑인예송 (甲寅禮訟)
갑인예송은 1674년(현종 15) 효종 왕비 인선왕후의 국상에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일어난 예송 사건이다. 인선왕후가 장자의 부인인가 차자의 부인인가에 따라 자의대비는 기년복 혹은 대공복을 입어야 했는데, 이는 효종이 장자인가 차자인가 하는 효종의 종통과도 연관된 문제였다. 현종은 효종의 종통을 문란하게 만든 서인의 대공복 논리에 분노하여 복제를 기년복으로 개정하고 서인을 처벌하였다. 복제 개정 후 한 달여 만에 현종이 승하하자 14세의 나이에 즉위한 숙종은 장례 후 과감히 서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남인을 등용하여 정국을 개편했다.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기해예송 (己亥禮訟)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원자정호 (元子定號)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임술삼고변은 1682년(숙종 8)에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김석주·김익훈 일파가 남인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함정 수사로 3건의 역모를 고발한 사건이다. 김석주는 남인들의 역모를 고발한 익명서가 나오자 김익훈 등을 통해 남인들을 감시하면서 함정 수사하여 증거를 수집하였다. 김환은 허영·허새를 김익훈은 유명견을 김중하는 민암 등을 역모로 고발하였다. 이 중 허영·허새는 역모를 자백하였으나 나머지 2건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치 공작으로 비판을 받았다. 기사환국 때 남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임술삼고변 (壬戌三告變)
임술삼고변은 1682년(숙종 8)에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김석주·김익훈 일파가 남인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함정 수사로 3건의 역모를 고발한 사건이다. 김석주는 남인들의 역모를 고발한 익명서가 나오자 김익훈 등을 통해 남인들을 감시하면서 함정 수사하여 증거를 수집하였다. 김환은 허영·허새를 김익훈은 유명견을 김중하는 민암 등을 역모로 고발하였다. 이 중 허영·허새는 역모를 자백하였으나 나머지 2건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치 공작으로 비판을 받았다. 기사환국 때 남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조선후기 김제군수, 부호군,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이존도 (李存道)
조선후기 김제군수, 부호군,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조선후기 『몽예집』을 저술한 문인.
남극관 (南克寬)
조선후기 『몽예집』을 저술한 문인.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현석이 명 고황제부터 남명 영력제까지의 명나라 역사를 강목법으로 저술한 역사서.
명사강목 (明史綱目)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현석이 명 고황제부터 남명 영력제까지의 명나라 역사를 강목법으로 저술한 역사서.
1680(숙종 5년) 허견(許堅)의 역모에 관련된 유혁연(柳赫然)의 옥사.
유혁연 옥사 (柳赫然 獄事)
1680(숙종 5년) 허견(許堅)의 역모에 관련된 유혁연(柳赫然)의 옥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