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원록(李元祿, 16291688)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字)는 사흥(士興), 호는 박곡(朴谷)이다. 아버지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제자인 합천군수 이도장(李道長, 16031644)이다. 이조판서 이원정(李元禎, 16221680)의 동생이다. 1651년(효종 2) 생원시(生員試)에서 장원(壯元)을 차지하고, 1663년(현종 4)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했다. 이후 성균관전적, 병조정랑, 의주부윤(義州府尹), 병조참의, 경상도관찰사, 예조참판,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호조참판 겸 사은부사(謝恩副使)에 제수되었으나 1680년(숙종 6)의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남인(南人)들이 축출되면서 파직되었다. 젊어서부터 병이 잦았던 이유를 겸하여, 세거지(世居地)인 낙동강 칠곡(漆谷) 매원(梅院)마을을 박곡(朴谷)으로 명명하고, 귀향하여 생을 마쳤다.
『박곡문집』에는 간행 경위를 알려주는 서발문(序跋文), 간기(刊記)가 없다. 여타 묘도문자 등에서도 『박곡문집』에 관한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권4 부록의 말미에, 이원록의 8대손 이상손(李相孫)이 가장(家藏) 중인 병풍에 대해 쓴 발문이 있다. 이 발문은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이 이원록에게 “분수를 편안히 여기고 천명을 알며, 바름을 지켜 변치 않는다(안분지명 수정불이(安分知命, 守正不二)).”라고 적어준 내용으로부터 허목과 함께 경신대출척으로 축출된 이원록의 풍모를 떠올린 내용으로, 여러 묘도문자의 서술을 인용했다. 또한 이상손이 유주목(柳疇睦, 18131872)에게 부탁한 병풍의 발문이 그 앞에 수록되어 있다. 이로 볼 때, 이상손이 조상의 사적을 정리하고 문집을 간행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그렇다면 간행 시기는 19세기 말로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손의 이력은 미상이다.
4권 2책의 구성이다. 10행 18자, 상하내향2엽화문어미(上下內向2葉花紋魚尾)의 목판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한국국학진흥원, 미국 버클리대학(UC Berkeley)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시 4수, 서(書) 15편, 소(疏) 5편, 차(箚) 1편, 계사(啓辭) 1편, 전(箋) 8편, 서(序) 1편, 발(跋) 1편, 잠(箴)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는 친지에게 보낸 안부 편지가 대부분이다. 영의정 허적(許積, 1610~1680)에게 보낸 글은 주1로 인한 농사의 실패를 지적하고, 정치의 비리를 들어 기강의 해이, 관권의 대문(大紊: 크게 문란함), 궁금(宮禁: 궁궐) 방의 해이함, 죄수의 경석(輕釋: 경솔한 석방) 등의 시정을 촉구한 글이다.
소 가운데 「사진차록소(寫進箚錄疏)」는 정경세(鄭經世, 1563~1633)가 인조에게 올린 차소의 내용을 인용하여 올린 것이다. 정경세의 학문과 도덕을 칭찬하고, 그의 충성하는 마음이 중흥의 대업적을 성취할 수 있게 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말이나 글을 정세의 형편에 따라 적절히 원용한다면 지금도 그 도움이 클 것이라 하였다. 또한, 재앙을 물리치고 폐단을 제거하는 계책과 자기의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법이 여기에서 나올 수 있으므로 주2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송이석(宋履錫)이 지은 이원록의 행장에도 이 정경세를 현창한 상소에 관한 일화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남인들의 정치적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 타인을 위해 대작(代作)한 사직소들이 있다.
또한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 대해 자기의 의견을 추가한 속잠이 있다. 창곡(倉穀)·기계(器械)·이군(移軍)·성민(城民)에 대해 야기되는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을 기록한 「변사예비책(邊事豫備策)」이 있었다고 하나, 문집에 원문은 없고 행장(行狀)에만 그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권2에는 제문(祭文) 13편, 구묘문(丘墓文) 2편, 잡저(雜著) 4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은 지인을 위한 것 외에 동생, 부인 등의 가족을 위한 것, 타인의 의뢰로 대작(代作)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묘문은 안경엄(安景淹, 15951674)의 묘표(墓表)와 6대조 이지(李摯, 미상1535?)의 묘갈(墓碣) 건립 사실을 밝힌 짧은 후소지(後小識)이다. 이지는 칠곡의 광주이씨 입향조(入鄕祖)이다. 잡저는 책(策) 3편과 논(論) 1편인데, 그 내용으로 볼 때 과거 시험의 답안지로 추정된다.
권3·4는 부록으로, 이원록에 관련된 교서(敎書) 2편, 사제문(賜祭文) 1편, 제문 16편, 만사(輓詞) 113수, 행장 1편, 묘갈명 1편, 대전병명(大篆屛銘) 1편, 병명발(屛銘跋)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문과 만사는 이현일(李玄逸, 16271704), 이관징(李觀徵, 1618∼1695), 오시복(吳始復, 16371716), 이서우(李瑞雨, 1633~1709) 등, 남인의 주요 인물들이 지은 작품들을 포함하고 있다. 병명에 관련된 2편의 글은 허목이 이원록에게 선물한 친필 병풍에 관련된 것이다.
조선 후기 남인계 문인 관료의 정치관과 교유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