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묘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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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안북도 구장군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묘향산 보월사 (妙香山 寶月寺)
북한 평안북도 구장군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고려전기 에 창건된 사찰.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妙香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선승들의 수도처로 창건된 암자.
묘향산 빈발암 (妙香山 賓鉢庵)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妙香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선승들의 수도처로 창건된 암자.
보현사는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 있는 사찰이다. 1042년(정종 8) 창건되었다. 보현보살의 상주처인 묘향산의 보현신앙을 상징하는 절이며, 고려시대 서북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를 보관한 사고가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의승장 청허휴정의 입적처로 조선 후기 조정에서 수충사를 세워 의승군의 충의를 기렸다. 고려시대 이래 오늘날까지도 서북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묘향산 보현사 (妙香山 普賢寺)
보현사는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에 있는 사찰이다. 1042년(정종 8) 창건되었다. 보현보살의 상주처인 묘향산의 보현신앙을 상징하는 절이며, 고려시대 서북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이후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를 보관한 사고가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의승장 청허휴정의 입적처로 조선 후기 조정에서 수충사를 세워 의승군의 충의를 기렸다. 고려시대 이래 오늘날까지도 서북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낭림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갈라져 나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산맥.
묘향산맥 (妙香山脈)
낭림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갈라져 나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산맥.
묘향산 보현사 영산전은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1875년에 개축한 사찰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배집이다. 보현사 동쪽으로 약 500m 있었던 건물을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이다.
묘향산 보현사 영산전 (妙香山 普賢寺 靈山殿)
묘향산 보현사 영산전은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1875년에 개축한 사찰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배집이다. 보현사 동쪽으로 약 500m 있었던 건물을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이다.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인도 승려 지공의 사리가 봉안된 사찰.
묘향산 안심사 (妙香山 安心寺)
북한 평안북도 영변군 북신현면 묘향산(妙香山)에 있는 인도 승려 지공의 사리가 봉안된 사찰.
조선후기 병자호란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승려.
독보 (獨步)
조선후기 병자호란 때 명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승려.
문공유는 고려 전기에 충주목부사, 예부상서, 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문공인의 동생이고, 문극겸의 아버지이다. 그는 이자겸의 집권기에 정치적인 배척을 받았다가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 복직하였다. 문장이 활달하고 예서(隸書)를 잘 썼다. 묘지명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유물인 청자다완(靑瓷茶碗)이 묘에서 출토한 것으로 전한다.
문공유 (文公裕)
문공유는 고려 전기에 충주목부사, 예부상서, 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문공인의 동생이고, 문극겸의 아버지이다. 그는 이자겸의 집권기에 정치적인 배척을 받았다가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 복직하였다. 문장이 활달하고 예서(隸書)를 잘 썼다. 묘지명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유물인 청자다완(靑瓷茶碗)이 묘에서 출토한 것으로 전한다.
조선시대 계룡산 산신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 건립된 목조건물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 경내 위치하고 있는 산신각. 단묘·제사터.
공주 계룡산 중악단 (公州 鷄龍山 中嶽壇)
조선시대 계룡산 산신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 건립된 목조건물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신원사 경내 위치하고 있는 산신각. 단묘·제사터.
조선시대 묘향산 서산대사(西山大師)로 잘 알려진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로 응상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쌍언 (雙彦)
조선시대 묘향산 서산대사(西山大師)로 잘 알려진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제자로 응상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조선후기 묘향산 성순에게 구족계를 받고 언기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의심 (義諶)
조선후기 묘향산 성순에게 구족계를 받고 언기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조선후기 관음사 정책에게 구족계를 받고 청안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선흠 (善欽)
조선후기 관음사 정책에게 구족계를 받고 청안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평안북도는 북한의 북서부에 있는 도이다. 동부는 자강도, 남부는 평안남도와 맞닿아 있고, 서부는 서해와 인접해 있다. 북부는 압록강을 가운데 두고 중국 동북 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신의주시, 구성시, 정주시의 3개 시와 22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안북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대외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이며, 북한의 주요 농업지대 중 하나이다. 북한 전력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풍발전소와 태천발전소가 있으며, 수산업이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명승지이자 관광지로는 묘향산이 있다.
평안북도 (平安北道)
평안북도는 북한의 북서부에 있는 도이다. 동부는 자강도, 남부는 평안남도와 맞닿아 있고, 서부는 서해와 인접해 있다. 북부는 압록강을 가운데 두고 중국 동북 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신의주시, 구성시, 정주시의 3개 시와 22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안북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대외무역과 교통의 중심지이며, 북한의 주요 농업지대 중 하나이다. 북한 전력 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수풍발전소와 태천발전소가 있으며, 수산업이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명승지이자 관광지로는 묘향산이 있다.
향산군은 자강도 서부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으로 평안남도 영원군, 서쪽으로 운산군, 남쪽으로 구장군, 북쪽으로 자강도 희천시와 접해 있다. 지형은 북쪽이 높으며, 큰 골짜기가 남서방향으로 열려 있다. 본래 영변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1952년 군면리 통폐합에 따라 영변군 태평면·북신현면·남송면(11개리)을 분리, 통합하여 향산군을 신설하였다. 행정구역은 1읍, 20리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는 의료기구공장과 조미료 공업이 발달해 있다. 농경지는 군 면적의 12%에 지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밭이 75% 이상을 차지한다.
향산군 (香山郡)
향산군은 자강도 서부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으로 평안남도 영원군, 서쪽으로 운산군, 남쪽으로 구장군, 북쪽으로 자강도 희천시와 접해 있다. 지형은 북쪽이 높으며, 큰 골짜기가 남서방향으로 열려 있다. 본래 영변군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나, 1952년 군면리 통폐합에 따라 영변군 태평면·북신현면·남송면(11개리)을 분리, 통합하여 향산군을 신설하였다. 행정구역은 1읍, 20리로 이루어져 있다. 경제는 의료기구공장과 조미료 공업이 발달해 있다. 농경지는 군 면적의 12%에 지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밭이 75% 이상을 차지한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
향산록 (香山錄)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
『허정집(虛靜集)』은 조선 후기 편양파 승려 허정 법종(虛靜法宗)이 쓴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상권에는 시 수백 수와 임종게가 수록되어 있으며, 하권에는 기문, 고승 행장, 권선문, 천혼소, 유산록 등이 실려 있다.
허정집 (虛靜集)
『허정집(虛靜集)』은 조선 후기 편양파 승려 허정 법종(虛靜法宗)이 쓴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상권에는 시 수백 수와 임종게가 수록되어 있으며, 하권에는 기문, 고승 행장, 권선문, 천혼소, 유산록 등이 실려 있다.
관서명승도첩은 평안도의 명승도 16폭으로 꾸며진 19세기 화첩이다. 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43.3㎝, 가로 32㎝이다. 앞쪽 내지에 찍인 인장으로 보아 진주 하씨 집안의 소장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명승도와 같이 각 장면은 누정이나 정자를 중심으로 일대 자연 경관을 포괄하였다. 이례적으로 평양의 경관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한 점이나 묘향산이나 육육동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화풍상으로는 청록채색 기법을 적용하였다. 조선시대 평안도의 명승지에 대한 관심과 재현 양상을 엿볼 수 있다.
관서명승도첩 (關西名勝圖帖)
관서명승도첩은 평안도의 명승도 16폭으로 꾸며진 19세기 화첩이다. 200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크기는 세로 43.3㎝, 가로 32㎝이다. 앞쪽 내지에 찍인 인장으로 보아 진주 하씨 집안의 소장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인 명승도와 같이 각 장면은 누정이나 정자를 중심으로 일대 자연 경관을 포괄하였다. 이례적으로 평양의 경관을 다양한 시점에서 조망한 점이나 묘향산이나 육육동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화풍상으로는 청록채색 기법을 적용하였다. 조선시대 평안도의 명승지에 대한 관심과 재현 양상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