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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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윤지충 (尹持忠)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1801년 천주교 박해에 관한 정부측 기록을 수집하여 정리한 천주교서. 박해기.
사학징의 (邪學懲義)
1801년 천주교 박해에 관한 정부측 기록을 수집하여 정리한 천주교서. 박해기.
조선후기 황사영백서사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황사영 (黃嗣永)
조선후기 황사영백서사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교우촌은 박해 시기에 천주교인들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산간벽지에 조성한 천주교 공동체이다.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791년 신해박해 이후이다. 교우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고을의 경계가 접한 깊은 산골에 자리 잡았다. 1836년 이후 선교사들은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고 회장을 임명하거나 승인하였다. 1886년 한불조약 체결로 종교 자유가 묵인된 후, 신자들이 평야 지역이나 도시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성당 주변으로 이주해 감에 따라, 산간벽지의 교우촌들은 점차 그 의미나 기능을 상실하였다.
교우촌 (敎友村)
교우촌은 박해 시기에 천주교인들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하여 산간벽지에 조성한 천주교 공동체이다. 교우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791년 신해박해 이후이다. 교우촌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고을의 경계가 접한 깊은 산골에 자리 잡았다. 1836년 이후 선교사들은 교우촌을 공소로 설정하고 회장을 임명하거나 승인하였다. 1886년 한불조약 체결로 종교 자유가 묵인된 후, 신자들이 평야 지역이나 도시 지역에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이 성당 주변으로 이주해 감에 따라, 산간벽지의 교우촌들은 점차 그 의미나 기능을 상실하였다.
조선 후기에,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은 일로 윤지충과 함께 체포되어 참수당한 순교자.
권상연 (權尙然)
조선 후기에,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은 일로 윤지충과 함께 체포되어 참수당한 순교자.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김진후 (金震厚)
조선후기 신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호조좌랑, 호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박전 (朴全)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호조좌랑, 호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사헌부장령, 담양부사, 홍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이관 (朴以寬)
조선 전기에, 사헌부장령, 담양부사, 홍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승지, 병조참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심세정 (沈世鼎)
조선 후기에, 승지, 병조참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천당지옥론』·『성교전서』 등을 저술한 천주교인.
김건순 (金建淳)
조선후기 『천당지옥론』·『성교전서』 등을 저술한 천주교인.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김제준 (金濟俊)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의 순교자.
조선후기 신해박해, 신유박해 와 관련된 천주교인.
최필공 (崔必恭)
조선후기 신해박해, 신유박해 와 관련된 천주교인.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복자(福者).
신태보 (申太甫)
조선후기 기해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 복자(福者).
김대건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다.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나 1836년, 중국 마카오에서 유학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인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제주에 표착했다가 10월 12일 충청도 강경을 통해 귀국했으며, 1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46년 5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상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체포된 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김대건 (金大建)
김대건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처형된 신부로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다. 1821년,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태어나 1836년, 중국 마카오에서 유학한 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로부터 2주일 뒤인 8월 31일 상해를 출발하여 제주에 표착했다가 10월 12일 충청도 강경을 통해 귀국했으며, 11월부터 서울과 경기도 용인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46년 5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해상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로 갔다가 체포된 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병오박해는 1846년(헌종 12) 신부 김대건(金大建)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이다. 한국 천주교 4대 박해 중의 하나로, 1846년 6월 5일(음력 5월 12일) 김대건의 체포를 계기로 시작되어 9월 20일(음력 7월 30일)에 종결되었다. 이 박해로 신부(사제) 1명과 일반 신자 8명이 처형되었으며, 1984년에 모두 시성(諡聖)되었다.
병오박해 (丙午迫害)
병오박해는 1846년(헌종 12) 신부 김대건(金大建)의 체포를 계기로 일어난 천주교 박해의 옥사이다. 한국 천주교 4대 박해 중의 하나로, 1846년 6월 5일(음력 5월 12일) 김대건의 체포를 계기로 시작되어 9월 20일(음력 7월 30일)에 종결되었다. 이 박해로 신부(사제) 1명과 일반 신자 8명이 처형되었으며, 1984년에 모두 시성(諡聖)되었다.
김창식은 일제강점기 한국인 최초의 목사이자 한국 기독교 초기 전도인이다. 선교사들의 신실한 생활에 감동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1892년 미국 감리회 조선선교회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전도인이 되었다. 그 후 홀과 함께 평양지방에 파송되어 순회 전도를 시작하였고 복음을 전하다가 큰 고난을 겪었다. 1896년부터 정식 목회자 수업을 받아 서북 지방의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의 교리를 전파하였다. 한국인 최초 목사로 집사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전국을 누비며 각처에 48개 교회를 세우고 세례를 베풀었다.
김창식 (金昌植)
김창식은 일제강점기 한국인 최초의 목사이자 한국 기독교 초기 전도인이다. 선교사들의 신실한 생활에 감동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1892년 미국 감리회 조선선교회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전도인이 되었다. 그 후 홀과 함께 평양지방에 파송되어 순회 전도를 시작하였고 복음을 전하다가 큰 고난을 겪었다. 1896년부터 정식 목회자 수업을 받아 서북 지방의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리스도의 교리를 전파하였다. 한국인 최초 목사로 집사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전국을 누비며 각처에 48개 교회를 세우고 세례를 베풀었다.
『기해일기(己亥日記)』는 조선 후기 최영수와 현석문이 기해박해(1839년)를 전후하여 순교한 천주교인들에 관해 기록한 순교자 전기집이다. 78명의 순교 행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순교자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서술되었다. 1925년에 시복(諡福)된 79위 복자(福者)의 조사 작업에 중요한 기초 사료가 되었다.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1880년대 초에 수집되었으며, 1905년에 뮈텔(Mutel, G.C.M., 閔德孝) 주교의 감준으로 서울에서 활판본으로 간행되었다.
기해일기 (己亥日記)
『기해일기(己亥日記)』는 조선 후기 최영수와 현석문이 기해박해(1839년)를 전후하여 순교한 천주교인들에 관해 기록한 순교자 전기집이다. 78명의 순교 행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순교자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하여 서술되었다. 1925년에 시복(諡福)된 79위 복자(福者)의 조사 작업에 중요한 기초 사료가 되었다. 필사본으로 전해지다가 1880년대 초에 수집되었으며, 1905년에 뮈텔(Mutel, G.C.M., 閔德孝) 주교의 감준으로 서울에서 활판본으로 간행되었다.
현석문은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이자 천주교 지도자이다. 서울에서 중인 출신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누나, 아내와 아들이 모두 순교했다. 1830년대 후반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데 참여했다. 1839년 박해 이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 행적인 『기해일기』를 작성하였다. 1844년 말 김대건 부제의 입국과 1845년 프랑스인 선교 사제 입국 과정에 참여했다.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7월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현석문 (玄錫文)
현석문은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이자 천주교 지도자이다. 서울에서 중인 출신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누나, 아내와 아들이 모두 순교했다. 1830년대 후반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데 참여했다. 1839년 박해 이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 행적인 『기해일기』를 작성하였다. 1844년 말 김대건 부제의 입국과 1845년 프랑스인 선교 사제 입국 과정에 참여했다.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7월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은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 관련 유적이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천주교 박해, 천주교인의 신앙심과 삶을 보여주고 있어 종교사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사상적 변천을 증거하는 유적이다. 2014년 9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 (唐津 솔뫼마을 金大建 神父 遺蹟)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은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에 있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 관련 유적이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하여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천주교 박해, 천주교인의 신앙심과 삶을 보여주고 있어 종교사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사상적 변천을 증거하는 유적이다. 2014년 9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관덕정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와 동학 관련 성지이다. 이곳은 1749년 경상도관찰사 민백상이 세운 도시청 건물인 관덕당의 연병장 터로서 경상감영의 대표적인 형장이었다. 이 형장에서 영남 지역 최대 천주교 순교자가 나왔으며, 지금까지 17명의 순교자가 알려져 있다. 영남의 유일한 성인인 이윤일 요한의 유해를 그의 처형지에서 모시고 있는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이윤일 요한 성인과 관덕당에서 순교한 복자 10위(복자 1위는 마산교구에서 현양), 경상감영에서 옥사한 복자 10위에 대한 현양 사업을 하고 있다.
관덕정 (觀德亭)
관덕정은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와 동학 관련 성지이다. 이곳은 1749년 경상도관찰사 민백상이 세운 도시청 건물인 관덕당의 연병장 터로서 경상감영의 대표적인 형장이었다. 이 형장에서 영남 지역 최대 천주교 순교자가 나왔으며, 지금까지 17명의 순교자가 알려져 있다. 영남의 유일한 성인인 이윤일 요한의 유해를 그의 처형지에서 모시고 있는 관덕정 순교기념관은 이윤일 요한 성인과 관덕당에서 순교한 복자 10위(복자 1위는 마산교구에서 현양), 경상감영에서 옥사한 복자 10위에 대한 현양 사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