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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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발해는 1116년(예종 11) 고영창(高永昌)이 건국한 발해(渤海)의 부흥 국가이다. 발해 멸망 후 190년이 지난 1116년에 거란(契丹)에 협조하던 발해 지배층 유민인 고영창에 의해 건국되었다. 거란에 반기를 들고 세워진 대발해는 융기(隆基, 또는 응순(應順))로 원년을 칭하였다. 국가 체제의 미흡, 금에 대한 외교 실패, 다른 지역의 발해 유민 대표 및 요동 지역 이민족들과의 연합 실패, 발해계 내부의 공동체 의식의 약화 등으로 5개월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대발해 (大渤海)
대발해는 1116년(예종 11) 고영창(高永昌)이 건국한 발해(渤海)의 부흥 국가이다. 발해 멸망 후 190년이 지난 1116년에 거란(契丹)에 협조하던 발해 지배층 유민인 고영창에 의해 건국되었다. 거란에 반기를 들고 세워진 대발해는 융기(隆基, 또는 응순(應順))로 원년을 칭하였다. 국가 체제의 미흡, 금에 대한 외교 실패, 다른 지역의 발해 유민 대표 및 요동 지역 이민족들과의 연합 실패, 발해계 내부의 공동체 의식의 약화 등으로 5개월 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후발해는 발해의 부흥국가로서 929년경 건국한 발해 유민의 왕조이다. 발해가 멸망한 926년 이후 송나라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이다. 실질적인 권력을 올야 출신의 오씨(烏氏)을 차지하여 ‘오씨발해’라고도 부른다. 발해국의 대씨 세력 또는 대인선(大諲譔)의 아우가 건국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의 옛 부여부를 탈환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펼쳤으며 휘발하(輝發河) 전투에 원군을 파견하였고, 정안국의 일부 세력을 규합하였다. 외교적으로 후당에 7차례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후주와 고려 등 주변 국가로 정치적 망명을 하거나 이주하였다.
후발해 (後勃海)
후발해는 발해의 부흥국가로서 929년경 건국한 발해 유민의 왕조이다. 발해가 멸망한 926년 이후 송나라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한 명칭이다. 실질적인 권력을 올야 출신의 오씨(烏氏)을 차지하여 ‘오씨발해’라고도 부른다. 발해국의 대씨 세력 또는 대인선(大諲譔)의 아우가 건국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해의 옛 부여부를 탈환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펼쳤으며 휘발하(輝發河) 전투에 원군을 파견하였고, 정안국의 일부 세력을 규합하였다. 외교적으로 후당에 7차례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후주와 고려 등 주변 국가로 정치적 망명을 하거나 이주하였다.
1925년 서상우가 발해의 강역과 지명 고증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발해강역고 (渤海疆域考)
1925년 서상우가 발해의 강역과 지명 고증에 관하여 저술한 학술서.
조선후기 학자 유득공이 발해의 역사·문화에 대한 내용을 엮어 1784년에 저술한 역사서.
발해고 (渤海考)
조선후기 학자 유득공이 발해의 역사·문화에 대한 내용을 엮어 1784년에 저술한 역사서.
『발해고』는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발해의 지명을 비정하여 역사지리적 입장에서 서술한 지리서이다. 10권으로 이루어진 『아방강역고』의 일부이다. 『아방강역고』는 1903년에 장지연이 『대한강역고』로 바꾸어 출판했는데 제5권에 『발해고』가 있다. 『발해고』에서 정약용은 발해국 5경의 위치 중 상경용천부를 지금의 목단강 유역으로 비정하였다. 이는 『성경통지』 등을 참고하여 비정한 것인데 여러 차례의 유적 발굴로 그 위치가 입증되었다. 『발해고』는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여러 학설에 대해 세밀히 재검토하여 학문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해고 (渤海考)
『발해고』는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발해의 지명을 비정하여 역사지리적 입장에서 서술한 지리서이다. 10권으로 이루어진 『아방강역고』의 일부이다. 『아방강역고』는 1903년에 장지연이 『대한강역고』로 바꾸어 출판했는데 제5권에 『발해고』가 있다. 『발해고』에서 정약용은 발해국 5경의 위치 중 상경용천부를 지금의 목단강 유역으로 비정하였다. 이는 『성경통지』 등을 참고하여 비정한 것인데 여러 차례의 유적 발굴로 그 위치가 입증되었다. 『발해고』는 여러 오류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여러 학설에 대해 세밀히 재검토하여 학문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5년 김육불(金毓黻)이 발해국사에 관한 자료를 엮어 집대성한 역사서.
발해국지장편 (渤海國志長編)
1935년 김육불(金毓黻)이 발해국사에 관한 자료를 엮어 집대성한 역사서.
발해의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현악기.
발해금 (渤海琴)
발해의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현악기.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발해에 관하여 저술한 역사서.
발해속고 (渤海續考)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발해에 관하여 저술한 역사서.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사학가·독립운동가, 박은식이 발해의 건국 과정과 관제, 행정구역, 역사·문화 등을 담아 1911년 간행한 역사서.
발해태조건국지 (渤海太祖建國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사학가·독립운동가, 박은식이 발해의 건국 과정과 관제, 행정구역, 역사·문화 등을 담아 1911년 간행한 역사서.
발해시대 왕의 칭호.
가독부 (可毒夫)
발해시대 왕의 칭호.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동녕현(東寧縣) 단결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집터.
동녕 단결 유적 (東寧 團結 遺蹟)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동녕현(東寧縣) 단결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집터.
고려전기 발해에서 고려로 귀화한 유민.
모두간 (冒豆干)
고려전기 발해에서 고려로 귀화한 유민.
발해의 제12대(재위: 858년~871년) 왕.
대건황 (大虔晃)
발해의 제12대(재위: 858년~871년) 왕.
고려전기 발해에서 고려로 귀화한 유민.
대도행랑 (大道行郎)
고려전기 발해에서 고려로 귀화한 유민.
고려전기 발해인들을 데리고 고려에 투항한 유민.
박승 (朴昇)
고려전기 발해인들을 데리고 고려에 투항한 유민.
남북국시대 발해에서 고려에 귀화한 유민.
김신 (金神)
남북국시대 발해에서 고려에 귀화한 유민.
발해의 제1대 고왕 대조영의 아버지로,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당나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왕족.
걸걸중상 (乞乞仲象)
발해의 제1대 고왕 대조영의 아버지로,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당나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왕족.
발해의 부흥국인 흥료국의 제1대 왕.
대연림 (大延琳)
발해의 부흥국인 흥료국의 제1대 왕.
고려전기 발해에서 고려로 귀화한 유민.
대유범 (大儒範)
고려전기 발해에서 고려로 귀화한 유민.
남북국시대 때, 발해에서 조공사로 후당에 파견되었으나, 발해의 몰락으로 고려에 망명한 발해의 왕족.
대진림 (大陳林)
남북국시대 때, 발해에서 조공사로 후당에 파견되었으나, 발해의 몰락으로 고려에 망명한 발해의 왕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