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벽암_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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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치영(南漢緇營)은 조선 후기에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남한산성(南漢山城) 안에 둔 의승군(義僧軍)의 승영(僧營)이다. 인조 대에 벽암 각성(碧巖覺性)이 8도 도총섭(都摠攝)으로 임명되었고 산성을 조성하는 데 승군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승역(僧役)을 활용했다. 성 안에 수어청(守禦廳) 소속의 승영 사찰을 두었으며, 승군이 성을 방비하게 하였다.
남한치영 (南漢緇營)
남한치영(南漢緇營)은 조선 후기에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남한산성(南漢山城) 안에 둔 의승군(義僧軍)의 승영(僧營)이다. 인조 대에 벽암 각성(碧巖覺性)이 8도 도총섭(都摠攝)으로 임명되었고 산성을 조성하는 데 승군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승역(僧役)을 활용했다. 성 안에 수어청(守禦廳) 소속의 승영 사찰을 두었으며, 승군이 성을 방비하게 하였다.
벽암문은 조선 중기에 활동한 부휴계의 고승 벽암 각성의 법맥을 이은 문파이다. 각성은 남한산성 초대 팔도도총섭을 지냈고 화엄사, 쌍계사, 완주 송광사 등을 중창했다. 제자로 취미 수초, 백곡 처능 등 다수를 두었고 손제자인 백암 성총이 부휴계의 계파적 정체성을 다졌다.
벽암문 (碧巖門)
벽암문은 조선 중기에 활동한 부휴계의 고승 벽암 각성의 법맥을 이은 문파이다. 각성은 남한산성 초대 팔도도총섭을 지냈고 화엄사, 쌍계사, 완주 송광사 등을 중창했다. 제자로 취미 수초, 백곡 처능 등 다수를 두었고 손제자인 백암 성총이 부휴계의 계파적 정체성을 다졌다.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 왕사를 역임한 고승에게 도총섭이라는 직책이 주어진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淸虛休靜)이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각각 8도 도총섭을 두었다.
도총섭 (都摠攝)
고려 말과 임진왜란 의승군 활동 이후 조선 후기 최고위 승려에게 주어진 승직(僧職)이다. 고려 말 왕사를 역임한 고승에게 도총섭이라는 직책이 주어진 것이 확인된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淸虛休靜)이 8도 도총섭으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는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에 각각 8도 도총섭을 두었다.
수초(守初, 1590~1668)는 조선 후기 부휴계 벽암 각성(碧巖覺性)의 수제자로 『취미대사시집(翠微大師詩集)』을 저술한 승려이다. 성삼문(成三問)의 후손으로 유학에도 정통하였고 선과 교를 널리 폈다. 수선은 부휴계의 적전 계보를 이었으며, 제자로는 백암 성총(栢庵性聰)이 있다.
수초 (守初)
수초(守初, 1590~1668)는 조선 후기 부휴계 벽암 각성(碧巖覺性)의 수제자로 『취미대사시집(翠微大師詩集)』을 저술한 승려이다. 성삼문(成三問)의 후손으로 유학에도 정통하였고 선과 교를 널리 폈다. 수선은 부휴계의 적전 계보를 이었으며, 제자로는 백암 성총(栢庵性聰)이 있다.
고방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백마산에 있는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1㎞ 떨어진 곳인데, 빈대가 많아서 보광전을 헐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1923년 벽암이 중창하였고, 1981년부터 법전이 감로당을 이전하였으며 관음전·삼성각·향로실·사천왕문·범종각·청원루를 새로 짓고 보광명전을 복원하였다. 보광명전 안에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고방사 (古方寺)
고방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백마산에 있는 사찰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원래의 절터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1㎞ 떨어진 곳인데, 빈대가 많아서 보광전을 헐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1923년 벽암이 중창하였고, 1981년부터 법전이 감로당을 이전하였으며 관음전·삼성각·향로실·사천왕문·범종각·청원루를 새로 짓고 보광명전을 복원하였다. 보광명전 안에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은 조선 후기 승려 설암 추붕(雪巖秋鵬)이 종밀(宗密)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분과하여 주석을 붙인 책으로 1740년에 간행되었다. 추붕은 편양파의 화엄 종장 월저 도안(月渚道安)의 제자로서 본서 외에도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 등을 지었다.
선원제전집도서과평 (禪源諸詮集都序科評)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은 조선 후기 승려 설암 추붕(雪巖秋鵬)이 종밀(宗密)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를 분과하여 주석을 붙인 책으로 1740년에 간행되었다. 추붕은 편양파의 화엄 종장 월저 도안(月渚道安)의 제자로서 본서 외에도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 등을 지었다.
조선중기의 고승 벽암대사(碧巖大師) 각성(覺性, 1575~1660)이 당나라 규봉(圭峰) 종밀(宗密, 780~841)의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을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선원집도중결의 (禪源集圖中決疑)
조선중기의 고승 벽암대사(碧巖大師) 각성(覺性, 1575~1660)이 당나라 규봉(圭峰) 종밀(宗密, 780~841)의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을 풀이한 주석서. 불교서.
송광사(松廣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17세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청량산 원암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원암사 승려들이 지금의 자리가 보조국사 지눌이 길지로 지정했던 곳이라며 법당을 짓고 개창한 사찰이다. 벽암 각성을 초청하여 화엄대법회를 개설하고 사적비를 세웠으며, 부휴계의 사찰이 되었다. 18세기 이후 무경 자수가 청허계의 법맥을 이으면서 부휴계와 청허계가 공존하는 사찰이 되었다.
송광사 (松廣寺)
송광사(松廣寺)는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17세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청량산 원암사가 화재로 소실되자 원암사 승려들이 지금의 자리가 보조국사 지눌이 길지로 지정했던 곳이라며 법당을 짓고 개창한 사찰이다. 벽암 각성을 초청하여 화엄대법회를 개설하고 사적비를 세웠으며, 부휴계의 사찰이 되었다. 18세기 이후 무경 자수가 청허계의 법맥을 이으면서 부휴계와 청허계가 공존하는 사찰이 되었다.
희언(煕彥, 1561~1647)은 부휴 선수의 제자이며 벽암 각성과 친분이 두터웠던 승려이다. 큰스님으로 자신을 떠받들면 존경받을 만한 행적이 없다며 거절하였지만, 간절하게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법성원융’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희언은 법주사와 해인사에서 수행했다. 해인사 국일암 옆에는 부휴 선수, 고한 희언, 벽암 각성의 승탑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희언 (熙彦)
희언(煕彥, 1561~1647)은 부휴 선수의 제자이며 벽암 각성과 친분이 두터웠던 승려이다. 큰스님으로 자신을 떠받들면 존경받을 만한 행적이 없다며 거절하였지만, 간절하게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법성원융’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주었다. 희언은 법주사와 해인사에서 수행했다. 해인사 국일암 옆에는 부휴 선수, 고한 희언, 벽암 각성의 승탑 세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