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변호사"
검색결과 총 11건
민사·형사의 재판 및 그에 관련되는 국가제도.
사법제도 (司法制度)
민사·형사의 재판 및 그에 관련되는 국가제도.
신기하는 해방 이후 12·13·14·15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이다.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 관계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광주 동구 지역구 의원으로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5월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신기하 (辛基夏)
신기하는 해방 이후 12·13·14·15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이다.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 관계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광주 동구 지역구 의원으로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5월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해방 이후 국회법제조사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윤길중 (尹吉重)
해방 이후 국회법제조사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해방 이후 광주 고등법원 판사, 대전 지방법원 강경지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변호사, 인권운동가.
홍남순 (洪南淳)
해방 이후 광주 고등법원 판사, 대전 지방법원 강경지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변호사, 인권운동가.
김은호는 해방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법조원로원 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18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1952년 제1회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했다. 1964년 3.24 데모로 구속된 김중태의 무료 변론을 시작으로 구속 학생들의 변론과 석방 서명운동 등을 펼쳤다. 서울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법조원로회 회장,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법체계의 민주화 작업, 인권 문제 해결, 인권위원회의 활동 등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6년 사망할 때까지 줄곧 인권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명덕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김은호 (金殷鎬)
김은호는 해방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법조원로원 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18년 경북 영양 출생으로 1952년 제1회 검사특별임용시험에 합격했다. 1964년 3.24 데모로 구속된 김중태의 무료 변론을 시작으로 구속 학생들의 변론과 석방 서명운동 등을 펼쳤다. 서울변호사회 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법조원로회 회장, 서울시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다. 법체계의 민주화 작업, 인권 문제 해결, 인권위원회의 활동 등 각종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6년 사망할 때까지 줄곧 인권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명덕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북한 변호사들의 영리단체.
조선중앙변호사협회 (朝鮮中央辯護士協會)
북한 변호사들의 영리단체.
김택현은 해방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1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으로 신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사법관시보실무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활동하다가 판사로 임명되었다. 1964년 변호사 개업 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1967년 장준하의 변호인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12월 동백림사건 변호를 맡았으며, 이후 재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정부로부터 인권옹호유공자로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고, 1986년 사망했다.
김택현 (金澤鉉)
김택현은 해방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1915년 평안북도 선천군 출생으로 신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47년 사법관시보실무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활동하다가 판사로 임명되었다. 1964년 변호사 개업 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1967년 장준하의 변호인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12월 동백림사건 변호를 맡았으며, 이후 재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83년 정부로부터 인권옹호유공자로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고, 1986년 사망했다.
해방 이후 법무부 차관, 법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
배영호 (裵泳鎬)
해방 이후 법무부 차관, 법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
해방 이후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서울고등법원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임한경 (林漢璟)
해방 이후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서울고등법원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대, 제15대 국회의원직,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추구하였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중심 외교통상 정책을 펼쳤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노무현 (盧武鉉)
노무현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여 제13대, 제15대 국회의원직, 김대중 정부에서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지냈다. 대통령 취임 후 '참여정부'로 명명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 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추구하였다.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 등 국익 중심 외교통상 정책을 펼쳤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
조영래 (趙英來)
조영래는 대한민국의 인권변호사로, 『전태일평전』의 집필자이자 1980년대 노동·여성·환경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인물이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1년 6개월간 복역하고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6년간 도피 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3년 시민공익법률사무소를 개설하여 망원동 수재집단의 소송사건, 이경숙사건(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상봉동 진폐소송사건 등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