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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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만안교 (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벽파 (僻派)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1735년(영조 11) 7월에 사도세자의 보양청을 설립할 때부터 이듬해 원단(元旦)에 폐지할 때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경모궁보양청일기 (景慕宮輔養廳日記)
1735년(영조 11) 7월에 사도세자의 보양청을 설립할 때부터 이듬해 원단(元旦)에 폐지할 때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박치륭 (朴致隆)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헌경왕후 (獻敬王后)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뒤주대왕신 (뒤주大王神)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暎嬪 李氏)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수원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수원부 (水原府)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수원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용주사는 경기도 화성시 화산에 있던 갈양사터에 창건된 조선 후기 현륭원의 능침사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다.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화산 용주사 (花山 龍珠寺)
용주사는 경기도 화성시 화산에 있던 갈양사터에 창건된 조선 후기 현륭원의 능침사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다.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두고, 주위에 보살과 사천왕·제자·분신불(分身佛) 등 권속을 배치하여, 세 부처의 모임을 한 화면에 그렸다. 화기가 없어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불 대좌 아래쪽에 왕실 인사의 안녕을 비는 축원문이 적혀 있어 왕실 원당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려준다.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 (龍珠寺 大雄殿 後佛幀畵)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두고, 주위에 보살과 사천왕·제자·분신불(分身佛) 등 권속을 배치하여, 세 부처의 모임을 한 화면에 그렸다. 화기가 없어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불 대좌 아래쪽에 왕실 인사의 안녕을 비는 축원문이 적혀 있어 왕실 원당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려준다.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시파 (時派)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광현 (李光鉉)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한중록(閑中錄)」은 조선 후기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지은 회고록이다. 한글본, 한문본, 한글·한문 혼용본 등의 필사본(筆寫本)이 전해지고, 이본이 현재 20여 종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중록」은 내용상 세 차례에 걸쳐 서술된 혜경궁 홍씨의 글 모음인데, 저자의 일생을 회고한 내용,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경위를 기술한 내용, 친정에 쏟아진 여러 가지 죄의 혐의에 대해 변명하는 내용이다.
한중록 (閑中錄)
「한중록(閑中錄)」은 조선 후기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가 지은 회고록이다. 한글본, 한문본, 한글·한문 혼용본 등의 필사본(筆寫本)이 전해지고, 이본이 현재 20여 종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중록」은 내용상 세 차례에 걸쳐 서술된 혜경궁 홍씨의 글 모음인데, 저자의 일생을 회고한 내용,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경위를 기술한 내용, 친정에 쏟아진 여러 가지 죄의 혐의에 대해 변명하는 내용이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수원 성곽의 남쪽 문(門). 성문.
수원 팔달문 (水原 八達門)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수원 성곽의 남쪽 문(門). 성문.
경기도 화성시 소재 용주사(龍珠寺)에 보관된 목조 감실.
화성 용주사 목조 감실 (華城 龍珠寺 木造 龕室)
경기도 화성시 소재 용주사(龍珠寺)에 보관된 목조 감실.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정조동궁일기 (正祖東宮日記)
시강원에서 조선 제22대왕 정조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시강원에서 효장세자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진종동궁일기 (眞宗東宮日記)
시강원에서 효장세자의 동궁 시절을 기록한 실록. 동궁일기.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세자를 훈계하기 위하여 저술한 어제(御製). 교훈서.
어제칙유원량 (御製飭諭元良)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세자를 훈계하기 위하여 저술한 어제(御製). 교훈서.
궁원의는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과 무덤인 영우원의 제향에 관한 각종 도설과 식례를 수록한 의례서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 궁호를 경모, 원호를 영우로 격상하고 각종 의례에 관한 법식을 제정하자 1776년 예조에서 편찬하였다. 궁원의는 상·하 2책이며 각 책마다 「경모궁의」와 「영우원의」로 나눠 서술하였다. 책에는 경모궁, 정자각 등의 건물 모습과 각종 축문, 제사 절차에 관한 세부 규정 외에도 사도 세자의 향사에 관한 기록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제향을 종묘보다 한 등급 낮추고 다른 궁보다 높이며 왕권과 왕실의 지위도 높이고자 했다.
궁원의 (宮園儀)
궁원의는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과 무덤인 영우원의 제향에 관한 각종 도설과 식례를 수록한 의례서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 궁호를 경모, 원호를 영우로 격상하고 각종 의례에 관한 법식을 제정하자 1776년 예조에서 편찬하였다. 궁원의는 상·하 2책이며 각 책마다 「경모궁의」와 「영우원의」로 나눠 서술하였다. 책에는 경모궁, 정자각 등의 건물 모습과 각종 축문, 제사 절차에 관한 세부 규정 외에도 사도 세자의 향사에 관한 기록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제향을 종묘보다 한 등급 낮추고 다른 궁보다 높이며 왕권과 왕실의 지위도 높이고자 했다.
「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지은 지문이다. 정조가 장헌세자의 현릉원을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지석의 지문을 친히 지었다. 지석은 묘 옆이나 앞에 묻는 것인데 지석에 새긴 글이 지문이다. 지문에는 죽은 사람의 생몰년, 행장, 묘소의 위치 등이 적혀있다. 「현륭원지」에는 원의 위치·작성 경위·가계·행록·추숭·자손 등을 기록하였다. 현륭원 지문은 정조의 『홍재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의 작성에 이용된 전거들은 「행록」, 「기주」, 『궁중기문』, 『정원일기』, 『궁원의』 등이다.
현륭원지 (顯隆園誌)
「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장헌세자의 무덤을 현륭원으로 이장하고 지은 지문이다. 정조가 장헌세자의 현릉원을 수원부 화산으로 이장하고 지석의 지문을 친히 지었다. 지석은 묘 옆이나 앞에 묻는 것인데 지석에 새긴 글이 지문이다. 지문에는 죽은 사람의 생몰년, 행장, 묘소의 위치 등이 적혀있다. 「현륭원지」에는 원의 위치·작성 경위·가계·행록·추숭·자손 등을 기록하였다. 현륭원 지문은 정조의 『홍재전서』 16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의 작성에 이용된 전거들은 「행록」, 「기주」, 『궁중기문』, 『정원일기』, 『궁원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