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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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智異山) 남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승려 연기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
지리산 화엄사 (智異山 華嚴寺)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智異山) 남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승려 연기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 사찰.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에 있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
서울 탑골공원 (서울 塔골公園)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에 있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고려실록 (高麗實錄)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사병은 국가의 공적(公的)인 군제(軍制)에 포함되지 않고,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에 사적(私的)으로 예속되어 있는 무력집단이다. 족병(族兵)·가병(家兵)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가노(家奴)나 유민(流民)로 구성되었다. 9세기 말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지의 호족들이 유민들을 모아 조직하였다. 고려 정부는 중앙집권화정책을 추진하여 호족들의 사병을 해체하였는데, 무신란 이후 무신들이 다시 사병을 양성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에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사병을 혁파하고자 하였으나 제2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방원에 의해 혁파되었다.
사병 (私兵)
사병은 국가의 공적(公的)인 군제(軍制)에 포함되지 않고,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에 사적(私的)으로 예속되어 있는 무력집단이다. 족병(族兵)·가병(家兵)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가노(家奴)나 유민(流民)로 구성되었다. 9세기 말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지의 호족들이 유민들을 모아 조직하였다. 고려 정부는 중앙집권화정책을 추진하여 호족들의 사병을 해체하였는데, 무신란 이후 무신들이 다시 사병을 양성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에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사병을 혁파하고자 하였으나 제2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방원에 의해 혁파되었다.
『칠대실록(七代實錄)』은 고려 전기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7대에 걸친 역사 기록이다. 원래 실록이 있었으나 현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편찬하였는데, 이를 『칠대사적(七代事跡)』이라 하였다. 편찬에 참여한 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황주량(黃周亮)에 의해 주도되어 황주량의 저서처럼 되어 있다.
칠대실록 (七代實錄)
『칠대실록(七代實錄)』은 고려 전기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7대에 걸친 역사 기록이다. 원래 실록이 있었으나 현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편찬하였는데, 이를 『칠대사적(七代事跡)』이라 하였다. 편찬에 참여한 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황주량(黃周亮)에 의해 주도되어 황주량의 저서처럼 되어 있다.
세습(世襲)은 사회적 가치 및 자원의 세대 전승(傳承)이 혈연 등 사적(私的)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정치권력의 세습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거의 사라지고 금기시되었다. 반면에 경제력의 세습은 사유재산과 더불어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법제화되었다.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존재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된 시대에 점점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세습 (世襲)
세습(世襲)은 사회적 가치 및 자원의 세대 전승(傳承)이 혈연 등 사적(私的)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정치권력의 세습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거의 사라지고 금기시되었다. 반면에 경제력의 세습은 사유재산과 더불어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법제화되었다.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존재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된 시대에 점점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석조 불상. 보살상.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 보살 좌상 (平昌 月精寺 石造 菩薩 坐像)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석조 불상. 보살상. 국보.
고려시대 권세있는 대가(大家)에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집단.
문객 (門客)
고려시대 권세있는 대가(大家)에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집단.
조선후기 곽원갑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와 의병들의 창의사적을 기록한 사적기.
창의록 (倡義錄)
조선후기 곽원갑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와 의병들의 창의사적을 기록한 사적기.
『매헌실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전공을 세운 정기룡의 사적을 모아서 기록한 실기이다.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조정융이 찬한 「사적」과 1718년(숙종 44) 채휴징이 편찬한 「연보」를 합쳐 1746년(영조 22) 정기룡의 후손 정구정(鄭龜禎)이 간행하였다.
매헌실기 (梅軒實記)
『매헌실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전공을 세운 정기룡의 사적을 모아서 기록한 실기이다.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조정융이 찬한 「사적」과 1718년(숙종 44) 채휴징이 편찬한 「연보」를 합쳐 1746년(영조 22) 정기룡의 후손 정구정(鄭龜禎)이 간행하였다.
고려 후기에, 첨의참리, 집현전대학사, 동수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변 (金賆)
고려 후기에, 첨의참리, 집현전대학사, 동수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
양양 낙산사 일원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낙산사 사찰 일원이다. 200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화엄종의 개조로 불리는 의상대사가 직접 와서 위치를 정해 지은 사찰이다. 외침이나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훼손되었지만 그 때마다 중창하여 사찰의 위용을 지켜오고 있다. 2005년 대형화재로 폐사 위기를 맞았지만,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사찰 건물을 신축하였다. 낙산사가 위치하고 있는 낙산의 동쪽 해안의 단에 위에는 의상대가 있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에 이르는 해안구간은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양양 낙산사 일원 (襄陽 洛山寺 一圓)
양양 낙산사 일원은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낙산사 사찰 일원이다. 2008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화엄종의 개조로 불리는 의상대사가 직접 와서 위치를 정해 지은 사찰이다. 외침이나 화재 등으로 여러차례 훼손되었지만 그 때마다 중창하여 사찰의 위용을 지켜오고 있다. 2005년 대형화재로 폐사 위기를 맞았지만,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사찰 건물을 신축하였다. 낙산사가 위치하고 있는 낙산의 동쪽 해안의 단에 위에는 의상대가 있다. 의상대에서 홍련암에 이르는 해안구간은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만든 모임.
기로회 (耆老會)
고려시대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만든 모임.
경주 헌강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9대 헌강왕의 능이다. 경문왕의 아들로 875년에 즉위하여 12년간 재위하였다. 헌강왕을 보리사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헌강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으로 남북 길이가 긴 장방형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널방의 벽면은 상부로 올라갈수록 안으로 기울었으며 구석 부분은 엇물려쌓기 방식으로 석재를 처리하고 있다. 무덤 보호석을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4단으로만 쌓아 올렸는데,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왕릉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경주 헌강왕릉 (慶州 憲康王陵)
경주 헌강왕릉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49대 헌강왕의 능이다. 경문왕의 아들로 875년에 즉위하여 12년간 재위하였다. 헌강왕을 보리사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헌강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흙으로 덮은 원형봉토분으로 남북 길이가 긴 장방형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널방의 벽면은 상부로 올라갈수록 안으로 기울었으며 구석 부분은 엇물려쌓기 방식으로 석재를 처리하고 있다. 무덤 보호석을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4단으로만 쌓아 올렸는데, 삼국통일 이후의 신라왕릉으로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곡성대안사적인선사탑비문」,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등을 쓴 서예가.
요극일 (姚克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곡성대안사적인선사탑비문」,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등을 쓴 서예가.
1673년(현종 1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불암사(佛巖寺)에서 새긴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목판.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 (釋氏源流應化事蹟 木板)
1673년(현종 1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불암사(佛巖寺)에서 새긴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목판.
조선 후기에, 『국조사적』, 『병산풍물지』, 『수곡집』 등을 저술한 학자.
권보 (權甫)
조선 후기에, 『국조사적』, 『병산풍물지』, 『수곡집』 등을 저술한 학자.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교서. 사지.
관음사지 (觀音寺志)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교서. 사지.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패총 전시관.
동삼동패총전시관 (東三洞貝塚展示館)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패총 전시관.
정수곤은 조선 성종 대의 사적(史籍)의 관리에 능하였던 문신 관료이다. 1472년(성종3) 식년시에 입격하였다. 문장에 능해 문한(文翰)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회에 자주 초빙되었다. 사적 관리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평가되었으며, 『소문총공집』의 어려운 부분을 주해할 때도 참여하였다.
정수곤 (丁壽崑)
정수곤은 조선 성종 대의 사적(史籍)의 관리에 능하였던 문신 관료이다. 1472년(성종3) 식년시에 입격하였다. 문장에 능해 문한(文翰)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회에 자주 초빙되었다. 사적 관리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평가되었으며, 『소문총공집』의 어려운 부분을 주해할 때도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