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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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년(현종 1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불암사(佛巖寺)에서 새긴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목판.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 (釋氏源流應化事蹟 木板)
1673년(현종 1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의 불암사(佛巖寺)에서 새긴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목판.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익희의 무덤.
김익희의 묘 (金益熙의 墓)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 김익희의 무덤.
달성 도동서원은1568년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건립한 서원이다. 1568년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으로 건립되어 1573년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4년 김굉필의 묘소가 있는 도동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607년 재사액을 허가받고, 1610년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1871년의 원사 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중정당과 사당,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10일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달성 도동서원 (達城 道東書院)
달성 도동서원은1568년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건립한 서원이다. 1568년 비슬산 기슭에 쌍계서원으로 건립되어 1573년 사액을 받았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4년 김굉필의 묘소가 있는 도동으로 옮겨 중건하였다. 1607년 재사액을 허가받고, 1610년 봉안식을 거행하였다. 1871년의 원사 훼철령에도 존속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중정당과 사당, 담장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10월 10일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었다. 2019년 7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관광자원을 기반으로 형성된 취락을 말한다. 산악관광취락, 해안관광취락, 온천관광취락, 사적관광취락 등으로 불리지만, 이들 취락을 총칭해서 관광취락이라고 한다. 관광시설, 관광객의 성격, 관광의 계절성은 관광취락의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르다. 관광취락은 단순한 관광지와 달리 관광시설이 고정되어 있고, 관광업 종사자가 상주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국민소득의 향상에 따른 여가시간의 증가와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관광활동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관광취락 (觀光聚落)
관광자원을 기반으로 형성된 취락을 말한다. 산악관광취락, 해안관광취락, 온천관광취락, 사적관광취락 등으로 불리지만, 이들 취락을 총칭해서 관광취락이라고 한다. 관광시설, 관광객의 성격, 관광의 계절성은 관광취락의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르다. 관광취락은 단순한 관광지와 달리 관광시설이 고정되어 있고, 관광업 종사자가 상주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국민소득의 향상에 따른 여가시간의 증가와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관광활동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매헌실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전공을 세운 정기룡의 사적을 모아서 기록한 실기이다.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조정융이 찬한 「사적」과 1718년(숙종 44) 채휴징이 편찬한 「연보」를 합쳐 1746년(영조 22) 정기룡의 후손 정구정(鄭龜禎)이 간행하였다.
매헌실기 (梅軒實記)
『매헌실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전공을 세운 정기룡의 사적을 모아서 기록한 실기이다.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조정융이 찬한 「사적」과 1718년(숙종 44) 채휴징이 편찬한 「연보」를 합쳐 1746년(영조 22) 정기룡의 후손 정구정(鄭龜禎)이 간행하였다.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교서. 사지.
관음사지 (觀音寺志)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산 관음사의 사적을 기록한 불교서. 사지.
고려시대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만든 모임.
기로회 (耆老會)
고려시대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만든 모임.
불암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이 824년에 창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그러나 도헌이 824년에 출생하였으므로 이 기록은 믿기 어렵다. 이후 도선이 중창하고, 조선에 들어와 무학이 삼창하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암사가 보이며, 조선 후기 이후 지속적으로 중수가 이루어졌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경기도 유형 문화재인 불암사경판 등은 17·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불암사의 사격(寺格)을 짐작하게 한다.
천보산 불암사 (天寶山 佛巖寺)
불암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천보산(天寶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이 824년에 창건하였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그러나 도헌이 824년에 출생하였으므로 이 기록은 믿기 어렵다. 이후 도선이 중창하고, 조선에 들어와 무학이 삼창하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불암사가 보이며, 조선 후기 이후 지속적으로 중수가 이루어졌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석씨원류응화사적목판, 목조관음보살좌상을 비롯하여 경기도 유형 문화재인 불암사경판 등은 17·18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불암사의 사격(寺格)을 짐작하게 한다.
중인도 상가대율사에 유학을 가서 범본 율장을 가져온 백제의 승려이다. 겸익은 526년(성왕 4년) 귀국하여 국내의 명승과 더불어 『율부』 72권을 번역하였다. 백제 율종의 비조(鼻祖)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겸익에 관한 기록이 『조선불교통사』(1918)에 처음 보여 어느 정도 사실을 전하고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겸익 (謙益)
중인도 상가대율사에 유학을 가서 범본 율장을 가져온 백제의 승려이다. 겸익은 526년(성왕 4년) 귀국하여 국내의 명승과 더불어 『율부』 72권을 번역하였다. 백제 율종의 비조(鼻祖)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겸익에 관한 기록이 『조선불교통사』(1918)에 처음 보여 어느 정도 사실을 전하고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사병은 국가의 공적(公的)인 군제(軍制)에 포함되지 않고,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에 사적(私的)으로 예속되어 있는 무력집단이다. 족병(族兵)·가병(家兵)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가노(家奴)나 유민(流民)로 구성되었다. 9세기 말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지의 호족들이 유민들을 모아 조직하였다. 고려 정부는 중앙집권화정책을 추진하여 호족들의 사병을 해체하였는데, 무신란 이후 무신들이 다시 사병을 양성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에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사병을 혁파하고자 하였으나 제2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방원에 의해 혁파되었다.
사병 (私兵)
사병은 국가의 공적(公的)인 군제(軍制)에 포함되지 않고,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에 사적(私的)으로 예속되어 있는 무력집단이다. 족병(族兵)·가병(家兵)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가노(家奴)나 유민(流民)로 구성되었다. 9세기 말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각지의 호족들이 유민들을 모아 조직하였다. 고려 정부는 중앙집권화정책을 추진하여 호족들의 사병을 해체하였는데, 무신란 이후 무신들이 다시 사병을 양성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에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사병을 혁파하고자 하였으나 제2차 왕자의 난 이후에 이방원에 의해 혁파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도질토기·화로형토기 등이 출토된 무덤군.
경주 구정동 고분군 (慶州 九政洞 古墳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도질토기·화로형토기 등이 출토된 무덤군.
고려 후기에, 첨의참리, 집현전대학사, 동수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변 (金賆)
고려 후기에, 첨의참리, 집현전대학사, 동수국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 권세있는 대가(大家)에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집단.
문객 (門客)
고려시대 권세있는 대가(大家)에 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집단.
계약은 사법상 권리의 변동을 내용으로 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되어, 그 내용대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당사자들 사이에 권리 변동이라는 효과를 발생시키려는 의사가 합치한 경우에만 계약이 가능하다. 개인의 재산 관계나 가족관계와 관련된 법률관계는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형성해야 한다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이러한 법률관계는 계약을 근거로 발생하거나 소멸하게 된다.
계약 (契約)
계약은 사법상 권리의 변동을 내용으로 하는 의사표시가 합치되어, 그 내용대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당사자들 사이에 권리 변동이라는 효과를 발생시키려는 의사가 합치한 경우에만 계약이 가능하다. 개인의 재산 관계나 가족관계와 관련된 법률관계는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형성해야 한다는 사적자치의 원칙에 따라, 이러한 법률관계는 계약을 근거로 발생하거나 소멸하게 된다.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고려실록 (高麗實錄)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에, 『국조사적』, 『병산풍물지』, 『수곡집』 등을 저술한 학자.
권보 (權甫)
조선 후기에, 『국조사적』, 『병산풍물지』, 『수곡집』 등을 저술한 학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곡성대안사적인선사탑비문」,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등을 쓴 서예가.
요극일 (姚克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곡성대안사적인선사탑비문」,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 등을 쓴 서예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석조 불상. 보살상. 국보.
평창 월정사 석조 보살 좌상 (平昌 月精寺 石造 菩薩 坐像)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석조 불상. 보살상. 국보.
조선전기 태조 이성계의 조선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편찬한 사적기. 조선왕실사적기.
용흥성적 (龍興聖蹟)
조선전기 태조 이성계의 조선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편찬한 사적기. 조선왕실사적기.
세습(世襲)은 사회적 가치 및 자원의 세대 전승(傳承)이 혈연 등 사적(私的)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정치권력의 세습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거의 사라지고 금기시되었다. 반면에 경제력의 세습은 사유재산과 더불어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법제화되었다.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존재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된 시대에 점점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세습 (世襲)
세습(世襲)은 사회적 가치 및 자원의 세대 전승(傳承)이 혈연 등 사적(私的) 원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와서 정치권력의 세습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거의 사라지고 금기시되었다. 반면에 경제력의 세습은 사유재산과 더불어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법제화되었다. 그에 따른 부의 편중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존재하지만, 경제성장이 둔화된 시대에 점점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