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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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장군 묘는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정치가·외교가 서희의 무덤이다. 개경 개국사에서 세상을 떠난 서희의 무덤이 이곳에 조성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둘레석이 설치된 장방형 봉분과 3단으로 조성된 묘역 구조 등 고려시대 묘제의 모습이 남아 있다. 고려초 외침 극복에 큰 공헌을 한 서희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서희 장군 묘 (徐熙 將軍 墓)
서희 장군 묘는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정치가·외교가 서희의 무덤이다. 개경 개국사에서 세상을 떠난 서희의 무덤이 이곳에 조성된 경위는 분명치 않다. 둘레석이 설치된 장방형 봉분과 3단으로 조성된 묘역 구조 등 고려시대 묘제의 모습이 남아 있다. 고려초 외침 극복에 큰 공헌을 한 서희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거란은 5세기 중엽부터 1125년까지 퉁구스와 몽골의 혼혈족으로 알려진 동호(東胡)계의 한 종족명이자 국가명이다. 요하 상류인 시라무렌[西刺木倫]의 남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거란국은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틈타 8부족을 통일한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16년에 건국되어, 9대 210년동안 존속하다가 1125년에 천조제(天祚帝)가 여진에 생포되면서 멸망하였다. 고려와 3차례에 걸쳐 무력충돌을 하였으며, 압록강 이동의 점유지에 군사시설을 확충하는 문제로 고려와 갈등을 빚었다.
거란 (契丹)
거란은 5세기 중엽부터 1125년까지 퉁구스와 몽골의 혼혈족으로 알려진 동호(東胡)계의 한 종족명이자 국가명이다. 요하 상류인 시라무렌[西刺木倫]의 남쪽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이다. 거란국은 당나라 말과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틈타 8부족을 통일한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916년에 건국되어, 9대 210년동안 존속하다가 1125년에 천조제(天祚帝)가 여진에 생포되면서 멸망하였다. 고려와 3차례에 걸쳐 무력충돌을 하였으며, 압록강 이동의 점유지에 군사시설을 확충하는 문제로 고려와 갈등을 빚었다.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박양유 (朴良柔)
고려전기 공관어사 지도성사, 시중, 태사개국광익공 등을 역임한 문신.
안융진(安戎鎭)은 고려 전기 973년(광종 24)에 북계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33년(덕종 2)과 1137년(인종 15)에 다시 축성되었다. 안융진성은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 위치한 토성(土城)이다. 안융진은 993년(성종 12) 거란의 제1차 침입 시기에 주요 전장이 되었다.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거란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서희(徐熙)는 소손녕(蕭遜寧)과 강화 회담을 진행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안융진 (安戎鎭)
안융진(安戎鎭)은 고려 전기 973년(광종 24)에 북계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33년(덕종 2)과 1137년(인종 15)에 다시 축성되었다. 안융진성은 평안남도 문덕군 신리에 위치한 토성(土城)이다. 안융진은 993년(성종 12) 거란의 제1차 침입 시기에 주요 전장이 되었다. 안융진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거란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서희(徐熙)는 소손녕(蕭遜寧)과 강화 회담을 진행하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
조선 전기에, 집현전부교리, 사간원의 우헌납, 좌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서강 (徐岡)
조선 전기에, 집현전부교리, 사간원의 우헌납, 좌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의 무신.
서경충 (徐敬忠)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의 무신.
고려 후기에, 동지추밀원사, 양계병마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공 (徐恭)
고려 후기에, 동지추밀원사, 양계병마사, 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성종은 고려 전기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81~997년. 경종의 선양으로 즉위하였다. 즉위년에 5품 이상의 경관에게 시정에 관한 건의문을 바치게 하였고,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였다. 중앙 관제와 지방제도를 정비하였고, 새로운 사회를 이끌기 위한 정치 이념으로 유교를 받아들였다. 고려의 기틀은 이때 마련되었다고 평가된다. 993년(성종 12) 거란이 침입했을 때 서희를 보내 외교 담판으로 물리치고 강동 6주를 편입해 영토를 확장하였다. 997년(성종 16) 병이 위독해지자 조카 왕송(이후의 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성종 (成宗)
성종은 고려 전기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81~997년. 경종의 선양으로 즉위하였다. 즉위년에 5품 이상의 경관에게 시정에 관한 건의문을 바치게 하였고,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였다. 중앙 관제와 지방제도를 정비하였고, 새로운 사회를 이끌기 위한 정치 이념으로 유교를 받아들였다. 고려의 기틀은 이때 마련되었다고 평가된다. 993년(성종 12) 거란이 침입했을 때 서희를 보내 외교 담판으로 물리치고 강동 6주를 편입해 영토를 확장하였다. 997년(성종 16) 병이 위독해지자 조카 왕송(이후의 목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고려 전기 때, 판장작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균 (徐鈞)
고려 전기 때, 판장작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눌은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중대광, 삼중대광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996년(성종 15)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6대 성종~10대 정종까지 정치의 중심에서 활약하였다. 이에 따라 서눌은 할아버지 서필, 아버지 서희와 더불어 최고 관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3대가 모두 종묘(宗廟)에 배향되었다.
서눌 (徐訥)
서눌은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중대광, 삼중대광 내사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996년(성종 15)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6대 성종~10대 정종까지 정치의 중심에서 활약하였다. 이에 따라 서눌은 할아버지 서필, 아버지 서희와 더불어 최고 관직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3대가 모두 종묘(宗廟)에 배향되었다.
고려 전기에,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쌍기 (雙冀)
고려 전기에,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2대 효공왕 때 아간대부를 역임한 이천 지방의 호족.
서신일 (徐神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2대 효공왕 때 아간대부를 역임한 이천 지방의 호족.
서필은 고려 전기 광종의 정치 개혁을 보좌한 문신이다. 그의 집안은 이천의 유력한 호족으로 보이며, 서필이 처음 출사하였다. 그는 재상직에 있으면서 광종의 호족 억압책과 귀화 중국인 우대책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광종의 정치 개혁을 적극 지지하였다. 이에 따라 서필 가문은 서필-서희-서눌 3대가 줄곧 최고 관직을 역임한 데다가 또한 3대가 모두 종묘에 배향되기도 하였다.
서필 (徐弼)
서필은 고려 전기 광종의 정치 개혁을 보좌한 문신이다. 그의 집안은 이천의 유력한 호족으로 보이며, 서필이 처음 출사하였다. 그는 재상직에 있으면서 광종의 호족 억압책과 귀화 중국인 우대책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광종의 정치 개혁을 적극 지지하였다. 이에 따라 서필 가문은 서필-서희-서눌 3대가 줄곧 최고 관직을 역임한 데다가 또한 3대가 모두 종묘에 배향되기도 하였다.
고려전기 좌산기상시 참지정사, 문하시랑, 내사시랑 등을 역임한 관리.
최량 (崔亮)
고려전기 좌산기상시 참지정사, 문하시랑, 내사시랑 등을 역임한 관리.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 불상.
평창 월정사 북대 고운암 목조 미륵보살 좌상 (平昌 月精寺 北臺 孤雲庵 木造 彌勒菩薩 坐像)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 불상.
고려 전기에, 감찰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몽전 (李蒙戩)
고려 전기에, 감찰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공빈령, 감찰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정우현 (鄭又玄)
고려 전기에, 공빈령, 감찰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전기 중랑장, 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대도수 (大道秀)
고려전기 중랑장, 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자이툰 부대는 2004년 2월 23일 이라크 평화 유지와 아르빌 지역의 경비 및 재건을 목적으로 창설, 파병되어 다국적군의 일원으로서 2008년 12월 20일까지 활동했던 한국군 민사부대이다. 이라크전쟁 후 파괴된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미국 정부는 파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응해 2004년 2월에 창설, 이라크 아르빌 지역으로 파병한 부대이다. 창설 당시 약 3,600명 규모의 사단급 부대로 조직되었으며 이라크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2008년 12월 철수할 때까지 아르빌 경비 및 재건, 의료 지원 등의 활동을 수행하였다.
자이툰 부대 (Zaytun部隊)
자이툰 부대는 2004년 2월 23일 이라크 평화 유지와 아르빌 지역의 경비 및 재건을 목적으로 창설, 파병되어 다국적군의 일원으로서 2008년 12월 20일까지 활동했던 한국군 민사부대이다. 이라크전쟁 후 파괴된 이라크 재건을 위해 미국 정부는 파병을 요청하였고, 이에 응해 2004년 2월에 창설, 이라크 아르빌 지역으로 파병한 부대이다. 창설 당시 약 3,600명 규모의 사단급 부대로 조직되었으며 이라크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2008년 12월 철수할 때까지 아르빌 경비 및 재건, 의료 지원 등의 활동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