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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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부분 또는 표면 전체를 갈아 만든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기.
간석기 (간石器)
날 부분 또는 표면 전체를 갈아 만든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에 주로 사용된 석기.
몸돌석기는 자갈돌이나 모난 돌에 두 번 이상 연속적으로 타격해 격지를 떼어 내어 날카로운 날을 만든 도구이다. 개념적으로 좁은 의미의 석기이며, 몸돌석기와 격지석기는 짝을 이룬다. 몸돌석기의 종류로는 찍개, 주먹대패, 여러면석기, 주먹찌르개, 주먹도끼 등이 있다.
몸돌석기 (몸돌石器)
몸돌석기는 자갈돌이나 모난 돌에 두 번 이상 연속적으로 타격해 격지를 떼어 내어 날카로운 날을 만든 도구이다. 개념적으로 좁은 의미의 석기이며, 몸돌석기와 격지석기는 짝을 이룬다. 몸돌석기의 종류로는 찍개, 주먹대패, 여러면석기, 주먹찌르개, 주먹도끼 등이 있다.
잔석기는 석기시대 돌날의 조각 또는 좀돌날, 드물게는 작은 격지를 밑감으로 하여, 정교하게 잔손질해서 세모꼴 · 사다리꼴 · 긴네모꼴의 기하학적 형태로 만든 작은 석기이다. 세석기(細石器: microlith)라고도 불린다.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시작하여 중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잔석기 (잔石器)
잔석기는 석기시대 돌날의 조각 또는 좀돌날, 드물게는 작은 격지를 밑감으로 하여, 정교하게 잔손질해서 세모꼴 · 사다리꼴 · 긴네모꼴의 기하학적 형태로 만든 작은 석기이다. 세석기(細石器: microlith)라고도 불린다.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부터 시작하여 중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 다음 시대로 농경과 정주, 토기, 마제석기, 궁시 등을 주요 문화적 지표로 하는 시대이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가는 무렵, 환경 변화에 적응한 신석기인은 기술혁신을 통해 생업 형태의 다변화와 더불어 생계 방식, 생업 도구, 의식주, 분묘, 신앙 의례, 장거리 교역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다. 신석기 문화는 자체적인 변화·발전 과정을 거쳐 도작농경과 무문토기를 주체로 하는 청동기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종말을 맞이한다.
신석기시대 (新石器時代)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 다음 시대로 농경과 정주, 토기, 마제석기, 궁시 등을 주요 문화적 지표로 하는 시대이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가는 무렵, 환경 변화에 적응한 신석기인은 기술혁신을 통해 생업 형태의 다변화와 더불어 생계 방식, 생업 도구, 의식주, 분묘, 신앙 의례, 장거리 교역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다. 신석기 문화는 자체적인 변화·발전 과정을 거쳐 도작농경과 무문토기를 주체로 하는 청동기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종말을 맞이한다.
중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를 가리키며 주로 유럽의 선사시대에 쓰이는 개념이다.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토기를 사용하는 농경마을이 특징인 신석기시대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며, 일부에서는 후구석기시대. 종말기 구석기시대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세석기[잔석기]를 중석기시대의 표지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세석기 문화가 후기 구석기시대의 양상임이 드러난 뒤 중석기시대라는 개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중석기시대 (中石器時代)
중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사이를 가리키며 주로 유럽의 선사시대에 쓰이는 개념이다.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토기를 사용하는 농경마을이 특징인 신석기시대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대를 가리키며, 일부에서는 후구석기시대. 종말기 구석기시대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세석기[잔석기]를 중석기시대의 표지라고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세석기 문화가 후기 구석기시대의 양상임이 드러난 뒤 중석기시대라는 개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집터·석기·토기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 한데유적·화석산포지.
공주 석장리 유적 (公州 石莊里 遺蹟)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집터·석기·토기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 한데유적·화석산포지.
청동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순동 중심의 동기와 석기가 함께 사용되던 시대. 순동시대·동석시대.
금석병용기 (金石倂用期)
청동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에 순동 중심의 동기와 석기가 함께 사용되던 시대. 순동시대·동석시대.
둥근 모양으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고 한 면은 둥그스름하지만 다른 한 면은 편편한 청동기시대의 석기.
바퀴날도끼
둥근 모양으로 가운데에 구멍이 뚫리고 한 면은 둥그스름하지만 다른 한 면은 편편한 청동기시대의 석기.
돌망치는 선사시대에 석기를 만들거나 식료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데 사용한 석기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석기로, 대부분 손으로 잡고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와 형태의 자연 자갈을 그대로 이용한다.
돌망치
돌망치는 선사시대에 석기를 만들거나 식료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는 데 사용한 석기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된 석기로, 대부분 손으로 잡고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와 형태의 자연 자갈을 그대로 이용한다.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돌칼
돌칼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식료 가공 및 곡물 수확용으로 제작된 칼 모양의 석기이다. 신석기시대의 돌칼과 돌칼모양석기, 청동기시대의 반달돌칼과 ‘ㄱ’자모양돌칼 등이 대표적인데, 이 중 신석기시대의 돌칼모양석기는 뗀석기이며, 나머지는 모두 간석기에 해당한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高靈 場基里 巖刻畵)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무문토기·간돌살촉 관련 조개더미.
용당포 패총 (龍塘浦 貝塚)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빗살무늬토기·무문토기·간돌살촉 관련 조개더미.
고려후기 도지휘사, 서해도원수,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무신.
양백익 (梁伯益)
고려후기 도지휘사, 서해도원수,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무신.
순천 죽내리 유적은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 · 토기 관련 복합유적이다. 섬진강의 지류인 황전천의 완만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9개의 지층에서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4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에서 몸돌, 격지, 조각돌과 부스러기, 잔손질석기와 자갈돌석기 그리고 접합석기 등 4,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으며 공렬토기,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유구로는 돌덧널무덤 7기가 조사되었는데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천 죽내리 유적 (順天 竹內里 遺蹟)
순천 죽내리 유적은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덧널무덤 · 토기 관련 복합유적이다. 섬진강의 지류인 황전천의 완만한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9개의 지층에서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4개의 구석기시대 문화층에서 몸돌, 격지, 조각돌과 부스러기, 잔손질석기와 자갈돌석기 그리고 접합석기 등 4,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 2기가 확인되었으며 공렬토기, 반달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유구로는 돌덧널무덤 7기가 조사되었는데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산대산리유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다. 학술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고 위치도 확실하지 않지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의 발굴 조사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지역의 선사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다수 분포할 가능성이 높다.
서산 대산리 유적 (瑞山 大山里 遺蹟)
서산대산리유적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 있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이다. 학술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고 위치도 확실하지 않지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의 발굴 조사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지역의 선사 문화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일대에는 신석기시대~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다수 분포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고덕동유적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구석기시대 석기, 청동기시대 집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와 무덤 등이 조사된 복합취락유적이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선사로-고덕지구 간 도로 확장을 위한 포장 공사에 앞서 4개 지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 구역에 걸쳐 구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집터와 구멍무늬토기가 조사되었다. 더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와 집터, 구덩이 등의 생활 유구와 돌방무덤, 구덩무덤, 회곽무덤 등의 분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서울 고덕동 유적 (서울 高德洞 遺蹟)
서울고덕동유적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있는 구석기시대 석기, 청동기시대 집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와 무덤 등이 조사된 복합취락유적이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선사로-고덕지구 간 도로 확장을 위한 포장 공사에 앞서 4개 지점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 구역에 걸쳐 구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집터와 구멍무늬토기가 조사되었다. 더불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와 집터, 구덩이 등의 생활 유구와 돌방무덤, 구덩무덤, 회곽무덤 등의 분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서울 면목동 유적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몸돌석기와 격지석기가 출토된 선사유적이다. 5차에 걸친 조사에서 석기 327점이 출토되었다. 석기가 발견된 지층은 적갈색 점토층으로 분포지역은 100㎡ 정도에 불과하다. 완형으로 출토된 39점 가운데 28점이 몸돌석기이며 11점은 격지석기이다. 특히 전체 31%를 차지하고 있는 외면찍개와 양면찍개는 아시아적 찍개 문화로 생각되는 석장리 제6문화층과 같은 문화로 추정된다. 또한 북한의 웅기 굴포리 전기 문화나 일본의 소즈다이문화와 같은 계열의 문화로 후기 구석기 문화에 속한다.
서울 면목동 유적 (서울 面牧洞 遺蹟)
서울 면목동 유적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몸돌석기와 격지석기가 출토된 선사유적이다. 5차에 걸친 조사에서 석기 327점이 출토되었다. 석기가 발견된 지층은 적갈색 점토층으로 분포지역은 100㎡ 정도에 불과하다. 완형으로 출토된 39점 가운데 28점이 몸돌석기이며 11점은 격지석기이다. 특히 전체 31%를 차지하고 있는 외면찍개와 양면찍개는 아시아적 찍개 문화로 생각되는 석장리 제6문화층과 같은 문화로 추정된다. 또한 북한의 웅기 굴포리 전기 문화나 일본의 소즈다이문화와 같은 계열의 문화로 후기 구석기 문화에 속한다.
소야도패총은 신석기시대 후기와 말기에 걸쳐 중부 서해안 일대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소야도에는 지표 조사를 통해 7개의 조개더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7년 발굴 조사를 통해 일부 조개더미의 성격과 시기를 알 수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생활면과 야외 화덕자리만이 조사되어 이동성이 강한 단기 거주 유적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소야도 패총 (蘇爺島 貝塚)
소야도패총은 신석기시대 후기와 말기에 걸쳐 중부 서해안 일대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소야도에는 지표 조사를 통해 7개의 조개더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7년 발굴 조사를 통해 일부 조개더미의 성격과 시기를 알 수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생활면과 야외 화덕자리만이 조사되어 이동성이 강한 단기 거주 유적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후기 제25대 충혜왕의 후궁.
은천옹주 (銀川翁主)
고려후기 제25대 충혜왕의 후궁.
손수경은 고려 후기에 판삼사사, 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국왕의 측근으로 성장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숙왕 아래에서는 원의 입성 책동을 저지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충혜왕의 측근으로 조적의 난 등을 평정하여 다시 공신이 되었으며, 충정왕 당시 최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공민왕 대 석기 추대 반란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
손수경 (孫守卿)
손수경은 고려 후기에 판삼사사, 도첨의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국왕의 측근으로 성장한 고려 후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충숙왕 아래에서는 원의 입성 책동을 저지하여 공신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충혜왕의 측근으로 조적의 난 등을 평정하여 다시 공신이 되었으며, 충정왕 당시 최고위직에 올랐다. 이후 공민왕 대 석기 추대 반란에 연루되어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