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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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세자궁 (世子宮)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고려시대 동궁관(東宮官).
세자부 (世子傅)
고려시대 동궁관(東宮官).
1817년(순조 17) 3월 11일, 성균관에서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과정을 담은 기록화첩.
왕세자입학도첩 (王世子入學圖帖)
1817년(순조 17) 3월 11일, 성균관에서 거행된 효명세자의 입학례 과정을 담은 기록화첩.
조선 전기에, 함경도어사, 사간원헌납,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강섬 (姜暹)
조선 전기에, 함경도어사, 사간원헌납,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만안교 (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고려 후기에, 대부윤, 비서소윤,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응문 (金應文)
고려 후기에, 대부윤, 비서소윤,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효원은 병자호란 직후에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 간 시강원 서리이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심양에 끌려갔는데, 이때 강효원이 시강원 서리로 따라갔다. 청의 통역관인 정명수가 청의 앞잡이로 방자하게 행동하자 정뇌경과 함께 정명수를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었다.
강효원 (姜孝元)
강효원은 병자호란 직후에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에 간 시강원 서리이다.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심양에 끌려갔는데, 이때 강효원이 시강원 서리로 따라갔다. 청의 통역관인 정명수가 청의 앞잡이로 방자하게 행동하자 정뇌경과 함께 정명수를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었다.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벽파 (僻派)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조선시대 승정원의 병전(兵典) 담당관서.
병방 (兵房)
조선시대 승정원의 병전(兵典) 담당관서.
긴요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요점을 알기 쉽게 정리한 유서(類書).
명지록 (明智錄)
긴요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요점을 알기 쉽게 정리한 유서(類書).
보덕(輔德)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명이었다. 세종 대에 1명으로 인원이 축소되었다가 선조 대 이후 겸보덕(兼輔德)이 1명 증치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으로 시강원의 상번(上番)이었고, 실무를 총괄하였다. 서연을 담당하여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
보덕 (輔德)
보덕(輔德)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명이었다. 세종 대에 1명으로 인원이 축소되었다가 선조 대 이후 겸보덕(兼輔德)이 1명 증치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으로 시강원의 상번(上番)이었고, 실무를 총괄하였다. 서연을 담당하여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 인조∼현종 연간에 이정환(李廷煥)이 지은 시조.
비가 (悲歌)
조선 인조∼현종 연간에 이정환(李廷煥)이 지은 시조.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광해군 (光海君)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조선 중기 이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5품 관직.
겸문학 (兼文學)
조선 중기 이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5품 관직.
조선 중기 이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3품 당상관직.
겸보덕 (兼輔德)
조선 중기 이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3품 당상관직.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6품 관직.
겸사서 (兼司書)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6품 관직.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7품 관직.
겸설서 (兼說書)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7품 관직.
조선시대 원자(元子 : 왕의 적장자)나 원손(元孫 : 왕세자의 적장자)의 보호·양육을 위하여 설치된 특별관서.
보양청 (輔養廳)
조선시대 원자(元子 : 왕의 적장자)나 원손(元孫 : 왕세자의 적장자)의 보호·양육을 위하여 설치된 특별관서.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4품 관직.
겸필선 (兼弼善)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4품 관직.
고려시대 동궁(東宮) 관직.
빈객 (賓客)
고려시대 동궁(東宮)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