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송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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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학자이자 명필로 이름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17세기 후반에 쓴 서첩.
송준길 행초 동춘당필적 (宋浚吉 行草 同春堂筆跡)
문신·학자이자 명필로 이름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17세기 후반에 쓴 서첩.
17세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명필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이 64세 때인 1669년에 쓴 필적.
송준길 행초 서증손병하 (宋浚吉 行草 書贈孫炳夏)
17세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명필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이 64세 때인 1669년에 쓴 필적.
조선 후기에, 사옹원봉사, 선공감직장, 장원서별제 등을 역임한 문신.
민광혁 (閔光爀)
조선 후기에, 사옹원봉사, 선공감직장, 장원서별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평창군수,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강봉수 (姜鳳壽)
조선 전기에, 평창군수, 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노론 (老論)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승정원도승지,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민진장 (閔鎭長)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승정원도승지,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홍문관부교리, 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민진후 (閔鎭厚)
조선 후기에, 사간원정언, 홍문관부교리, 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진사가 되었으나, 스승인 송시열의 탄핵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과거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당해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한 학자.
민태중 (閔泰重)
조선 후기에, 진사가 되었으나, 스승인 송시열의 탄핵을 변론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과거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당해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한 학자.
1651년(효종 2) 김자점의 역모로 일어난 옥사(獄事).
김자점의 옥 (金自點의 獄)
1651년(효종 2) 김자점의 역모로 일어난 옥사(獄事).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논산 돈암서원 (論山 遯巖書院)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후기 김장생(金長生)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조선 후기에, 목릉참봉, 왕자사부, 이인찰방 등을 역임한 학자.
곽시징 (郭始徵)
조선 후기에, 목릉참봉, 왕자사부, 이인찰방 등을 역임한 학자.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징 (金澄)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사간,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세모 (朴世模)
조선 후기에, 사간,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 후기에, 명왕조 부흥세력과 연합하여 북벌을 단행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설욕하자고 주장한 학자.
나석좌 (羅碩佐)
조선 후기에, 명왕조 부흥세력과 연합하여 북벌을 단행해 병자호란의 치욕을 설욕하자고 주장한 학자.
『무수옹유고』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권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3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4권 2책의 석인본으로, 7대 종손인 권영호가 편집과 교정을 하였다. 표제는 ‘무수옹집(無愁翁集)’, 권수제와 판심제는 ‘무수옹유고(無愁翁遺稿)’이다.
무수옹유고 (無愁翁遺稿)
『무수옹유고』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권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3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4권 2책의 석인본으로, 7대 종손인 권영호가 편집과 교정을 하였다. 표제는 ‘무수옹집(無愁翁集)’, 권수제와 판심제는 ‘무수옹유고(無愁翁遺稿)’이다.
조선후기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 수원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나홍좌 (羅弘佐)
조선후기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 수원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사학규제」는 1659년 2월 성균관 좨주 송준길이 효종의 명에 의하여 작성한 교육정상화 종합 방안이다. 주요 내용은 사부학당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이외에도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 지방의 동몽교육 장려, 생원진사시의 조흘강 규정 강화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이후 「사학규제」는 사부학당은 물론 한성과 지방의 동몽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사학규제 (四學規制)
「사학규제」는 1659년 2월 성균관 좨주 송준길이 효종의 명에 의하여 작성한 교육정상화 종합 방안이다. 주요 내용은 사부학당의 운영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지만, 이외에도 한성의 동몽교관 증원, 지방의 동몽교육 장려, 생원진사시의 조흘강 규정 강화 등에 관한 사항도 포함된다. 이후 「사학규제」는 사부학당은 물론 한성과 지방의 동몽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 후기에, 이천군수, 동지중추부사, 돈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순 (金洵)
조선 후기에, 이천군수, 동지중추부사, 돈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송촌집』 등을 저술한 학자.
안음 (安崟)
조선 후기에, 『송촌집』 등을 저술한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