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수군"
검색결과 총 35건
충청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
삼남지방 (三南地方)
충청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함께 지칭하는 명칭.
기벌포전투는 676년(문무왕 16) 11월에 기벌포에서 신라의 수군이 당나라 수군을 크게 깨뜨린 전투이다. 기벌포는 서해 재해권이 걸린 요충지로 다양한 설이 있으나 그 위치를 금강 하구로 보고 있다. 이 전투는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 당나라의 군사동맹 이후 당나라가 신라를 배신하여 일어난 대당전쟁의 일환이었다.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한 당나라는 기벌포를 공격하였고 22번의 전투 끝에 신라는 당나라 수군 4천여 명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신라가 대당전쟁을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이자 서해상의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벌포전투 (伎伐浦戰鬪)
기벌포전투는 676년(문무왕 16) 11월에 기벌포에서 신라의 수군이 당나라 수군을 크게 깨뜨린 전투이다. 기벌포는 서해 재해권이 걸린 요충지로 다양한 설이 있으나 그 위치를 금강 하구로 보고 있다. 이 전투는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 당나라의 군사동맹 이후 당나라가 신라를 배신하여 일어난 대당전쟁의 일환이었다. 매소성 전투에서 패배한 당나라는 기벌포를 공격하였고 22번의 전투 끝에 신라는 당나라 수군 4천여 명을 죽이고 승리하였다. 신라가 대당전쟁을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이자 서해상의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만호부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 조직이다. 1281년(충렬왕 7)에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만호부의 만호는 일반적으로 원나라 황제가 직접 임명하였고, 그 직위를 세습하였으므로 고려 국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공민왕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국내의 무장들에게 만호·천호(千戶) 등의 군직을 수여하고, 국경 인근이나 주요 방어 거점에 만호부를 여럿 설치해서 운영하였다.
만호부 (萬戶府)
만호부는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 조직이다. 1281년(충렬왕 7)에 남해안 요충지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둔 것을 시작으로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만호부의 만호는 일반적으로 원나라 황제가 직접 임명하였고, 그 직위를 세습하였으므로 고려 국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였다. 공민왕대 이후로는 원나라의 영향력과 상관없이 국내의 무장들에게 만호·천호(千戶) 등의 군직을 수여하고, 국경 인근이나 주요 방어 거점에 만호부를 여럿 설치해서 운영하였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좌수영 (左水營)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조선 후기 천역(賤役)에 종사하던 조례(皂隷)·나장(羅將)·일수(日守)·조창군(漕倉軍)·수군(水軍)·봉군(烽軍)·역보(驛保) 등을 통칭하는 말.
칠천 (七賤)
조선 후기 천역(賤役)에 종사하던 조례(皂隷)·나장(羅將)·일수(日守)·조창군(漕倉軍)·수군(水軍)·봉군(烽軍)·역보(驛保) 등을 통칭하는 말.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우수영 (右水營)
조선시대 전라도와 경상도에 설치한 수군의 주진(主鎭).
조선시대 군사요지인 지방에 파견하였던 관직.
방어사 (防禦使)
조선시대 군사요지인 지방에 파견하였던 관직.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는 조선시대 서반 4품에 해당한 군사 지휘관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는 변진의 군사 책임자로 첨절제사보다 품계가 낮은 인물을 보내면서 동첨절세사라고 호칭하였으며, 세종 대에는 4품을 동첨절제사로 호칭하였고, 진관 체제에서는 종4품의 서반직 품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동첨절제사 (同僉節制使)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는 조선시대 서반 4품에 해당한 군사 지휘관의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는 변진의 군사 책임자로 첨절제사보다 품계가 낮은 인물을 보내면서 동첨절세사라고 호칭하였으며, 세종 대에는 4품을 동첨절제사로 호칭하였고, 진관 체제에서는 종4품의 서반직 품계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정착되어 조선 말까지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주재하던 병영(兵營).
수영 (水營)
조선시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주재하던 병영(兵營).
경상남도 통영 지역에 있었던 지명.
충무 (忠武)
경상남도 통영 지역에 있었던 지명.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기구.
진변만호부 (鎭邊萬戶府)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군사기구.
고립제는 군사가 다른 사람으로 군역을 대신하게 하고 이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 또는 국가에서 필요한 병력이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일을 시키고 이에 급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인력 동원 방식은 군역과 요역으로 구분되는데 16세기 후반부터 부역자들이 쌀과 포 등으로 역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서 급료를 주고 인력을 고용해서 동원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대동법과 균역법이 실시되면서 점차 고용 중심의 인력 동원 체제로 변모해 갔다.
고립제 (雇立制)
고립제는 군사가 다른 사람으로 군역을 대신하게 하고 이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 또는 국가에서 필요한 병력이나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 일을 시키고 이에 급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국가의 인력 동원 방식은 군역과 요역으로 구분되는데 16세기 후반부터 부역자들이 쌀과 포 등으로 역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서 급료를 주고 인력을 고용해서 동원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대동법과 균역법이 실시되면서 점차 고용 중심의 인력 동원 체제로 변모해 갔다.
개운포 성지는 조선 전기에 축조한, 경상 좌수영 소속 수군 진성으로,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에 있다. 이 성은 해발 60m 정도의 구릉 지대와 외황강과 접해 있는 저지대에 축조된 평산성으로, 성내 골짜기를 두고 있는 둘레 1,264m의 포곡식 석축성이다. 개운포 성지에 대한 수차례의 시·발굴 조사에서 추정 객사터와 북문지와 동문지에서 옹성문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성벽과 치성, 해자, 수구, 선소 등의 성곽 부속 시설도 확인되어, 조선시대 수군 진성 축조 수법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울산 개운포 경상좌수영성 (蔚山 開雲浦 慶尙左水營城)
개운포 성지는 조선 전기에 축조한, 경상 좌수영 소속 수군 진성으로, 울산광역시 남구 성암동에 있다. 이 성은 해발 60m 정도의 구릉 지대와 외황강과 접해 있는 저지대에 축조된 평산성으로, 성내 골짜기를 두고 있는 둘레 1,264m의 포곡식 석축성이다. 개운포 성지에 대한 수차례의 시·발굴 조사에서 추정 객사터와 북문지와 동문지에서 옹성문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성벽과 치성, 해자, 수구, 선소 등의 성곽 부속 시설도 확인되어, 조선시대 수군 진성 축조 수법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鎭城)이다. 바다와 강도(江都)를 함께 방어하고, 조운선을 호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714m이며,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남문지 주변에는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지지』에는 안흥진성이 1655년에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내에서 발견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의해 1583년에 초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1655년은 수축(修築)한 해로 보여진다.
태안 안흥진성 (泰安 安興鎭城)
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鎭城)이다. 바다와 강도(江都)를 함께 방어하고, 조운선을 호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714m이며,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남문지 주변에는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지지』에는 안흥진성이 1655년에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내에서 발견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의해 1583년에 초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1655년은 수축(修築)한 해로 보여진다.
도부서는 고려시대 지방의 수군을 지휘·감독하던 관청이다. 도부서는 일명 선병도부서라 불리며 동계·북계, 그리고 경상도·전라도·양광도 등의 연해지역을 관장하는 동남해에 설치되었다. 양계지역은 동여진의 해적 대비 등 일선 전투수군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동남해지역은 후방경비 수군으로 일본으로부터의 방물진공과 사신의 응대 등 국가 간의 공식적인 교섭을 보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고려 전기 해안의 방어를 위한 수군전담관서였던 도부서는 동여진과의 분쟁 종식, 무신정권기의 병제 개편 등으로 본질을 상실하다가 1390년에 혁파되었다.
도부서 (都部署)
도부서는 고려시대 지방의 수군을 지휘·감독하던 관청이다. 도부서는 일명 선병도부서라 불리며 동계·북계, 그리고 경상도·전라도·양광도 등의 연해지역을 관장하는 동남해에 설치되었다. 양계지역은 동여진의 해적 대비 등 일선 전투수군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반면 동남해지역은 후방경비 수군으로 일본으로부터의 방물진공과 사신의 응대 등 국가 간의 공식적인 교섭을 보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고려 전기 해안의 방어를 위한 수군전담관서였던 도부서는 동여진과의 분쟁 종식, 무신정권기의 병제 개편 등으로 본질을 상실하다가 1390년에 혁파되었다.
19세기 경상도 통영에 위치한 수군통제영에서 설치하였던 측우기 받침대.
통영 측우대 (統營 測雨臺)
19세기 경상도 통영에 위치한 수군통제영에서 설치하였던 측우기 받침대.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전승 관련 전적지. 전승지.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閑山島 李忠武公 遺蹟)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의 전승 관련 전적지. 전승지.
교동읍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조선 후기 읍성이자 수영성(水營城)이다. 1629년(인조 7)에 경기 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이설되면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성과 일반 읍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으로 조선 후기 강화와 교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 및 도성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교동읍성 (喬桐邑城)
교동읍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에 있는 조선 후기 읍성이자 수영성(水營城)이다. 1629년(인조 7)에 경기 수영이 남양에서 교동으로 이설되면서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영성과 일반 읍성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성으로 조선 후기 강화와 교동의 역사적 전개 양상 및 도성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고흥 발포 만호성(高興 鉢浦 萬戶城)은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조선 전기에 축성된 수군진성이다. 발포진은 1439년(세종 21)에 수군진으로 설치되었으며, 발포진성은 1490년 축성되어 1895년 발포진이 폐영될 때까지 운영되었다. 1580년(선조 13) 이순신(李舜臣)이 충청병사해미군관(忠淸兵使海美軍官)에서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18개월 동안 재임하였으며, 이곳에 거북선[龜船]이 있었다고 한다. 성곽의 둘레는 560m이며, 현재 체성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고흥 발포 만호성 (高興 鉢浦 萬戶城)
고흥 발포 만호성(高興 鉢浦 萬戶城)은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조선 전기에 축성된 수군진성이다. 발포진은 1439년(세종 21)에 수군진으로 설치되었으며, 발포진성은 1490년 축성되어 1895년 발포진이 폐영될 때까지 운영되었다. 1580년(선조 13) 이순신(李舜臣)이 충청병사해미군관(忠淸兵使海美軍官)에서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18개월 동안 재임하였으며, 이곳에 거북선[龜船]이 있었다고 한다. 성곽의 둘레는 560m이며, 현재 체성의 일부가 복원되어 있다.
이재항은 조선 후기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종실 집안이며, 당대 집권자인 이이명·김진규와 밀접한 관계이다. 관직으로는 주로 무관직과 외직을 역임하면서 순무영 개편, 통영곡 운영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충효를 실천하였고,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이재항 (李載恒)
이재항은 조선 후기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종실 집안이며, 당대 집권자인 이이명·김진규와 밀접한 관계이다. 관직으로는 주로 무관직과 외직을 역임하면서 순무영 개편, 통영곡 운영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충효를 실천하였고,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