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역관"
검색결과 총 34건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온양군수 등을 역임한 역관. 문인.
이상적 (李尙迪)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온양군수 등을 역임한 역관. 문인.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 및 역과시용으로 간행한 중국어 교재. 외국어학습서·중국어학습서.
노걸대 (老乞大)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 및 역과시용으로 간행한 중국어 교재. 외국어학습서·중국어학습서.
고려후기 우승지, 부지밀직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역관.
유청신 (柳淸臣)
고려후기 우승지, 부지밀직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역관.
대한제국기 부하철도회사, 대한철도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박기종 (朴琪淙)
대한제국기 부하철도회사, 대한철도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홍삼무역 (紅蔘貿易)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조선후기 『하원시초』를 저술한 시인.
정수동 (鄭壽銅)
조선후기 『하원시초』를 저술한 시인.
조선 중기 이후 선공감(繕工監)의 종9품 관직.
감역관 (監役官)
조선 중기 이후 선공감(繕工監)의 종9품 관직.
조신은 조선전기 사역원정, 통신사군관 등을 역임한 역관이다. 1454년에 태어나 1529년에 사망했다. 서출로 태어났지만 매형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문학적 재능을 길렀다. 김안국, 남효온, 정여창 등과 교류하였다. 일본어에 능통하여 통신사의 군관으로 선발되었고, 사신을 수행하여 중국에 파견되었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으로 외교 문서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김안국과 더불어 『이륜행실도』를 편찬하였으며 『적암시고』, 『백년록』, 『소문쇄록』 등을 저술하였다. 1543년에 문장에 능한 사람을 우대한다는 뜻에서 공조판서를 추증하였고, 효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조신 (曺伸)
조신은 조선전기 사역원정, 통신사군관 등을 역임한 역관이다. 1454년에 태어나 1529년에 사망했다. 서출로 태어났지만 매형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문학적 재능을 길렀다. 김안국, 남효온, 정여창 등과 교류하였다. 일본어에 능통하여 통신사의 군관으로 선발되었고, 사신을 수행하여 중국에 파견되었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으로 외교 문서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김안국과 더불어 『이륜행실도』를 편찬하였으며 『적암시고』, 『백년록』, 『소문쇄록』 등을 저술하였다. 1543년에 문장에 능한 사람을 우대한다는 뜻에서 공조판서를 추증하였고, 효강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왜학훈도 (倭學訓導)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김경문 (金慶門)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박대근은 조선 후기 선조 대 후반~인조 대 초반에 활약한 왜학 역관이다. 1591년(선조 24) 역과에 입격하였다. 이미 1590년부터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위관의 차비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604년, 1606년 두 차례의 강화협상기에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왔다. 1607년, 1617년, 1624년 세 차례 회답사의 당상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박대근 (朴大根)
박대근은 조선 후기 선조 대 후반~인조 대 초반에 활약한 왜학 역관이다. 1591년(선조 24) 역과에 입격하였다. 이미 1590년부터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위관의 차비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604년, 1606년 두 차례의 강화협상기에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왔다. 1607년, 1617년, 1624년 세 차례 회답사의 당상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통사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소속되어 통역을 담당하던 인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역관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통사 모두가 역과에 입격하여 역관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 통사가 붙어서 용어를 이룬 것은 소통사, 향통사, 어전통사, 당상통사, 상통사, 차상통사, 압물통사, 장무통사, 선래통사 등이 있다.
통사 (通事)
통사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소속되어 통역을 담당하던 인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역관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통사 모두가 역과에 입격하여 역관으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 통사가 붙어서 용어를 이룬 것은 소통사, 향통사, 어전통사, 당상통사, 상통사, 차상통사, 압물통사, 장무통사, 선래통사 등이 있다.
고려시대 명법업(明法業)·명산업(明算業)·명서업(明書業)·의업(醫業)·주금업(呪噤業)·복업(卜業)·지리업(地理業) 등의 잡업(雜業)에 종사하던 사람.
잡업인 (雜業人)
고려시대 명법업(明法業)·명산업(明算業)·명서업(明書業)·의업(醫業)·주금업(呪噤業)·복업(卜業)·지리업(地理業) 등의 잡업(雜業)에 종사하던 사람.
고려후기 전라도지휘사, 부지밀직사사,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오인영 (吳仁永)
고려후기 전라도지휘사, 부지밀직사사,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당후관은 고려시대에 중추원의 정7품 관직이다. 정식 명칭은 중추원당후관이다. 중추원은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추밀이 재상이 되고, 정3품 지주사와 여러 승선이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는데, 당후관은 참외직으로 부서의 실무 행정과 숙직을 맡았다. 중추원이 후대에 추밀원과 밀직사 등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당후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점은 고려 관제상 특이하다. 당후관은 일정 기간 경제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참직을 보장받는 역관(役官) 가운데 하나였다.
당후관 (堂後官)
당후관은 고려시대에 중추원의 정7품 관직이다. 정식 명칭은 중추원당후관이다. 중추원은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추밀이 재상이 되고, 정3품 지주사와 여러 승선이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는데, 당후관은 참외직으로 부서의 실무 행정과 숙직을 맡았다. 중추원이 후대에 추밀원과 밀직사 등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당후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점은 고려 관제상 특이하다. 당후관은 일정 기간 경제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참직을 보장받는 역관(役官) 가운데 하나였다.
장예충(張禮忠)은 조선시대에 선조 대 후반부터 인조 대 후반까지 활동한 한학 역관이다. 역관으로 근무하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역과에 입격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명나라의 파병 요구를 완화하는 데에 명날 사정을 잘 아는 역관으로 중용되었다. 인조 연간에는 규정에 구애되지 않고 중요한 임무가 주어져서 1637년(인조 15), 정축화약 이후 접반사의 차비역관으로 왕의 어전통사로 또는 청나라 사행의 역관이나 특정한 건을 해명하기 위해 재자행으로 파견되었다. 공로가 많아서 1633년(인조 11)에 숭록 품계에 이르렀다.
장예충 (張禮忠)
장예충(張禮忠)은 조선시대에 선조 대 후반부터 인조 대 후반까지 활동한 한학 역관이다. 역관으로 근무하다가 1609년(광해군 1)에 역과에 입격하였다. 1618년(광해군 10)에 명나라의 파병 요구를 완화하는 데에 명날 사정을 잘 아는 역관으로 중용되었다. 인조 연간에는 규정에 구애되지 않고 중요한 임무가 주어져서 1637년(인조 15), 정축화약 이후 접반사의 차비역관으로 왕의 어전통사로 또는 청나라 사행의 역관이나 특정한 건을 해명하기 위해 재자행으로 파견되었다. 공로가 많아서 1633년(인조 11)에 숭록 품계에 이르렀다.
조선 후기 북경(北京)에 가는 사행(使行)의 허용한도 외의 무역.
공팔포 (空八包)
조선 후기 북경(北京)에 가는 사행(使行)의 허용한도 외의 무역.
조선후기 예조의 전객사에서 조선시대 역관의 제도와 인사 등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등록.
역관상언등록 (譯官上言謄錄)
조선후기 예조의 전객사에서 조선시대 역관의 제도와 인사 등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등록.
조선시대 중국·일본과의 사행(使行) 왕래시에 수행한 각종 예물 호송관.
압물관 (押物官)
조선시대 중국·일본과의 사행(使行) 왕래시에 수행한 각종 예물 호송관.
이자영은 조선 전기 태조 대에서 태종 대까지 대외사절의 통사로 명나라와 섬라곡국(暹羅斛國, 지금의 태국) 등을 왕래했던 역관이다. 사행단의 통사로 여러 차례 명에 다녀왔고, 태종 대에는 중국 명나라와의 마무역(馬貿易) 건으로 말을 인솔하여 요동에 다녀오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자영 (李子瑛)
이자영은 조선 전기 태조 대에서 태종 대까지 대외사절의 통사로 명나라와 섬라곡국(暹羅斛國, 지금의 태국) 등을 왕래했던 역관이다. 사행단의 통사로 여러 차례 명에 다녀왔고, 태종 대에는 중국 명나라와의 마무역(馬貿易) 건으로 말을 인솔하여 요동에 다녀오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