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역관"
검색결과 총 34건
조선 중기 이후 선공감(繕工監)의 종9품 관직.
감역관 (監役官)
조선 중기 이후 선공감(繕工監)의 종9품 관직.
조선후기 예조의 전객사에서 조선시대 역관의 제도와 인사 등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등록.
역관상언등록 (譯官上言謄錄)
조선후기 예조의 전객사에서 조선시대 역관의 제도와 인사 등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등록.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 및 역과시용으로 간행한 중국어 교재. 외국어학습서·중국어학습서.
노걸대 (老乞大)
조선시대 사역원에서 역관들의 외국어 학습 및 역과시용으로 간행한 중국어 교재. 외국어학습서·중국어학습서.
조선 후기 북경(北京)에 가는 사행(使行)의 허용한도 외의 무역.
공팔포 (空八包)
조선 후기 북경(北京)에 가는 사행(使行)의 허용한도 외의 무역.
대한제국기 부하철도회사, 대한철도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박기종 (朴琪淙)
대한제국기 부하철도회사, 대한철도회사 등을 설립한 기업인.
박대근은 조선 후기 선조 대 후반~인조 대 초반에 활약한 왜학 역관이다. 1591년(선조 24) 역과에 입격하였다. 이미 1590년부터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위관의 차비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604년, 1606년 두 차례의 강화협상기에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왔다. 1607년, 1617년, 1624년 세 차례 회답사의 당상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박대근 (朴大根)
박대근은 조선 후기 선조 대 후반~인조 대 초반에 활약한 왜학 역관이다. 1591년(선조 24) 역과에 입격하였다. 이미 1590년부터 통신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한 것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시기에 중국 명나라 사신을 응대하는 접위관의 차비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604년, 1606년 두 차례의 강화협상기에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왔다. 1607년, 1617년, 1624년 세 차례 회답사의 당상 역관으로 활약하였다.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김경문 (金慶門)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몽견제갈량』은 1908년 계몽지식인 유원표가 저술한 국한문체 정치소설이다. 몽유록계 소설이기도 하지만,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서문을 썼으며 시대 상황에 대한 정치적 개혁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유원표의 호이기도 한 밀아자와 제갈량, 단 두 사람이다. 문답으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서 두 주인공은 한중일 동양의 문제, 특히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를 놓고 격돌한다.
몽견제갈량 (夢見諸葛亮)
『몽견제갈량』은 1908년 계몽지식인 유원표가 저술한 국한문체 정치소설이다. 몽유록계 소설이기도 하지만,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서문을 썼으며 시대 상황에 대한 정치적 개혁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유원표의 호이기도 한 밀아자와 제갈량, 단 두 사람이다. 문답으로 이루어진 소설 속에서 두 주인공은 한중일 동양의 문제, 특히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변혁해야 할지를 놓고 격돌한다.
당후관은 고려시대에 중추원의 정7품 관직이다. 정식 명칭은 중추원당후관이다. 중추원은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추밀이 재상이 되고, 정3품 지주사와 여러 승선이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는데, 당후관은 참외직으로 부서의 실무 행정과 숙직을 맡았다. 중추원이 후대에 추밀원과 밀직사 등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당후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점은 고려 관제상 특이하다. 당후관은 일정 기간 경제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참직을 보장받는 역관(役官) 가운데 하나였다.
당후관 (堂後官)
당후관은 고려시대에 중추원의 정7품 관직이다. 정식 명칭은 중추원당후관이다. 중추원은 종2품에서 정3품에 이르는 추밀이 재상이 되고, 정3품 지주사와 여러 승선이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는데, 당후관은 참외직으로 부서의 실무 행정과 숙직을 맡았다. 중추원이 후대에 추밀원과 밀직사 등 여러 차례 바뀌었음에도 당후관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된 점은 고려 관제상 특이하다. 당후관은 일정 기간 경제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참직을 보장받는 역관(役官) 가운데 하나였다.
김범우는 조선후기 을사추조적발사건과 관련된 천주교인이다. 1773년(영조 49)의 증광시 역과에 2등급으로 합격한 중국어 역관으로 한학우어별주부(漢學偶語別主簿)를 지냈다. 1784년에 이벽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가족과 중인, 양반들에게 천주교를 열심히 전교하였다. 1785년에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밀양으로 도배된 이후 형조에서 고문 받은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김범우 (金範禹)
김범우는 조선후기 을사추조적발사건과 관련된 천주교인이다. 1773년(영조 49)의 증광시 역과에 2등급으로 합격한 중국어 역관으로 한학우어별주부(漢學偶語別主簿)를 지냈다. 1784년에 이벽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가족과 중인, 양반들에게 천주교를 열심히 전교하였다. 1785년에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밀양으로 도배된 이후 형조에서 고문 받은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김석준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활동한 역관이자 시인·서예가이다. 그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희보(姬葆)‧소후(召矦), 호는 소당(小棠)‧연백당(硏白堂)‧효리재(孝里齋) 등이다. 대대로 역관 집안의 후손으로 김정희(金正喜)와 이상적(李尙迪)을 스승으로 섬겼다. 북경을 다녀오면서 서적과 서화를 매개로 청나라의 지식인들과 교유에 적극적이었다. 저술로 「화국죽지사(和國竹枝詞)」·『홍약루회인시록(紅藥樓懷人詩錄)』·『홍약루속회인시록(紅藥樓續懷人詩錄)』·『연백당초집(硏白堂初集)』·『효리재일집(孝理齋逸集)』 등이 있다.
김석준 (金奭準)
김석준은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 사이에 활동한 역관이자 시인·서예가이다. 그의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희보(姬葆)‧소후(召矦), 호는 소당(小棠)‧연백당(硏白堂)‧효리재(孝里齋) 등이다. 대대로 역관 집안의 후손으로 김정희(金正喜)와 이상적(李尙迪)을 스승으로 섬겼다. 북경을 다녀오면서 서적과 서화를 매개로 청나라의 지식인들과 교유에 적극적이었다. 저술로 「화국죽지사(和國竹枝詞)」·『홍약루회인시록(紅藥樓懷人詩錄)』·『홍약루속회인시록(紅藥樓續懷人詩錄)』·『연백당초집(硏白堂初集)』·『효리재일집(孝理齋逸集)』 등이 있다.
조선시대 중국·일본과의 사행(使行) 왕래시에 수행한 각종 예물 호송관.
압물관 (押物官)
조선시대 중국·일본과의 사행(使行) 왕래시에 수행한 각종 예물 호송관.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왜학훈도 (倭學訓導)
왜학훈도는 조선시대에 사역원에 속한 일본어 역관으로, 일본어 통역과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한 관리이다. 1393년(태조 2)에 정9품 관직으로 사역원에 2명을 두고, 왜학생도의 일본어 교육을 담당하게 한 것이 시초이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 외에 외임(外任)으로 종9품직의 왜학훈도를 부산포와 제포에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사역원 소속으로 동래부에 파견되어 동래부와 왜관 간의 의사를 중개하고 통역을 담당하였다.
육교시사(六橋詩社)는 1876년부터 188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한양의 육교(六橋)를 중심으로 중인 신분이었던 역관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시사이다. 특정 한 곳에서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동인들의 거처를 돌아가면서 모임이 이루어졌다. 사행(使行)의 송별과 환영, 특별한 절기, 회갑 · 돌 등 경조사 등이 있을 때마다 모임을 가지고 시를 지었으며, 국내외 정세를 고민하며 담론을 나누었다. 관련 자료로 강위가 육교시사의 동인들과 함께하며 지은 시들을 모은 시집인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이 전한다.
육교시사 (六橋詩社)
육교시사(六橋詩社)는 1876년부터 188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간 한양의 육교(六橋)를 중심으로 중인 신분이었던 역관 동인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 시사이다. 특정 한 곳에서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고 동인들의 거처를 돌아가면서 모임이 이루어졌다. 사행(使行)의 송별과 환영, 특별한 절기, 회갑 · 돌 등 경조사 등이 있을 때마다 모임을 가지고 시를 지었으며, 국내외 정세를 고민하며 담론을 나누었다. 관련 자료로 강위가 육교시사의 동인들과 함께하며 지은 시들을 모은 시집인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이 전한다.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온양군수 등을 역임한 역관. 문인.
이상적 (李尙迪)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온양군수 등을 역임한 역관. 문인.
고려후기 전라도지휘사, 부지밀직사사,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오인영 (吳仁永)
고려후기 전라도지휘사, 부지밀직사사,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후기 우승지, 부지밀직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역관.
유청신 (柳淸臣)
고려후기 우승지, 부지밀직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역관.
조선시대 역관(譯官) 가계를 기록한 중인(中人)의 족보. 역과보.
역과보 (譯科譜)
조선시대 역관(譯官) 가계를 기록한 중인(中人)의 족보. 역과보.
이자영은 조선 전기 태조 대에서 태종 대까지 대외사절의 통사로 명나라와 섬라곡국(暹羅斛國, 지금의 태국) 등을 왕래했던 역관이다. 사행단의 통사로 여러 차례 명에 다녀왔고, 태종 대에는 중국 명나라와의 마무역(馬貿易) 건으로 말을 인솔하여 요동에 다녀오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자영 (李子瑛)
이자영은 조선 전기 태조 대에서 태종 대까지 대외사절의 통사로 명나라와 섬라곡국(暹羅斛國, 지금의 태국) 등을 왕래했던 역관이다. 사행단의 통사로 여러 차례 명에 다녀왔고, 태종 대에는 중국 명나라와의 마무역(馬貿易) 건으로 말을 인솔하여 요동에 다녀오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장백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홍순언 고사」를 수용한 작품으로, 송도에 사는 역관 이장백이 중국 북경에 들어가 아버지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계 낭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이후 황후가 된 그녀의 도움으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장백전 (李長白傳)
「이장백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이다. 「홍순언 고사」를 수용한 작품으로, 송도에 사는 역관 이장백이 중국 북경에 들어가 아버지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계 낭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이후 황후가 된 그녀의 도움으로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