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연행"
검색결과 총 15건
조선후기 문신 이의현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 1720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경자연행잡지 (庚子燕行雜識)
조선후기 문신 이의현이 청나라에 다녀온 후 1720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 기간 중 조선인 강제 동원 사실을 조사하는 일본시민단체이다. 1972년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학자·문화인· 법률가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연대하여 발족하였다.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남북한과 일본의 우호와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일본 전역 25개 지역에 지역 조사단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조선인 강제 동원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의 전쟁 피해 및 일본 교과서왜곡 문제나 반전평화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시민평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朝鮮人强制連行陳狀調査團)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은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 기간 중 조선인 강제 동원 사실을 조사하는 일본시민단체이다. 1972년 오키나와에서 일본의 학자·문화인· 법률가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연대하여 발족하였다. 조선인 강제 동원에 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남북한과 일본의 우호와 화해를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일본 전역 25개 지역에 지역 조사단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조선인 강제 동원에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전체의 전쟁 피해 및 일본 교과서왜곡 문제나 반전평화운동으로 확산되면서 일본시민평화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편자·연대 미상의 가사집.
가사선 (歌辭選)
편자·연대 미상의 가사집.
만상은 조선 후기 의주(義州)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이다. 17세기 대청 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만상은 연경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 또는 역관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합법적인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제도의 빈틈에 편승한 방법으로 후시(後市) 무역을 주도하여 이익을 얻었다.
만상 (灣商)
만상은 조선 후기 의주(義州)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이다. 17세기 대청 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만상은 연경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 또는 역관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합법적인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제도의 빈틈에 편승한 방법으로 후시(後市) 무역을 주도하여 이익을 얻었다.
조선후기 무신 권희학의 문중(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에 소장된 전적류이다.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권희학의 수적인 『연행일기(燕行日記)』 · 『서행일기(西行日記)』 · 『남정목록(南征目錄)』 · 『감고당집(感顧堂集)』 등이다. 고문서로는 여러 대에 걸친 내외 4조(四祖)와 소유노비를 상세히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 및 준호구(準戶口) 수십 장, 1751년 권희학의 처 김씨가 토지 · 노비를 구분하여 처리한 가산분재기(家産分財記) 등이 있다. 사패노비안의 경우는 당시 공신들에게 하사된 토지와 노비의 실체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감고당 문적 (感顧堂 文籍)
조선후기 무신 권희학의 문중(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풍호리)에 소장된 전적류이다.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권희학의 수적인 『연행일기(燕行日記)』 · 『서행일기(西行日記)』 · 『남정목록(南征目錄)』 · 『감고당집(感顧堂集)』 등이다. 고문서로는 여러 대에 걸친 내외 4조(四祖)와 소유노비를 상세히 기록한 호구단자(戶口單子) 및 준호구(準戶口) 수십 장, 1751년 권희학의 처 김씨가 토지 · 노비를 구분하여 처리한 가산분재기(家産分財記) 등이 있다. 사패노비안의 경우는 당시 공신들에게 하사된 토지와 노비의 실체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단련사후시는 조선 후기에 연행 사절단의 호위를 담당한 단련사를 통해 심양과 책문에서 열린 무역 시장이다. 단련사는 사신의 호송과 귀환을 영솔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 국역에 대한 대가로 무역 허가권을 부여받았다. 이를 통해 단련사는 심양의 성경부에 세폐와 방물을 바치고 돌아오는 말을 활용하여 물화를 싣고 들어와 의주를 비롯한 평안도, 황해도 등지에서 무역하였다.
단련사후시 (團練使後市)
단련사후시는 조선 후기에 연행 사절단의 호위를 담당한 단련사를 통해 심양과 책문에서 열린 무역 시장이다. 단련사는 사신의 호송과 귀환을 영솔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 국역에 대한 대가로 무역 허가권을 부여받았다. 이를 통해 단련사는 심양의 성경부에 세폐와 방물을 바치고 돌아오는 말을 활용하여 물화를 싣고 들어와 의주를 비롯한 평안도, 황해도 등지에서 무역하였다.
김명희는 조선 후기에 홍문관 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이다. 김노경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의 아우이다.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1822년(순조 22) 10월 연경을 방문했을 때 청대 금석학자와 활발하게 교유하였고, 그들과 김정희가 친분을 쌓는 데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관련 자료에는 고려대학교 소장 『청조명가서독』과 필사본 시집인 『산천시』가 있다. 서예가로도 명망이 있었다. 구양순체를 따랐으며, 소해는 형 김정희의 글씨와 매우 흡사하다.
김명희 (金命喜)
김명희는 조선 후기에 홍문관 직제학, 강동현령을 역임한 서예가이다. 김노경의 아들이며 추사 김정희의 아우이다. 아버지 김노경과 함께 1822년(순조 22) 10월 연경을 방문했을 때 청대 금석학자와 활발하게 교유하였고, 그들과 김정희가 친분을 쌓는 데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 학문이 깊고 시문과 서예에 능했으며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관련 자료에는 고려대학교 소장 『청조명가서독』과 필사본 시집인 『산천시』가 있다. 서예가로도 명망이 있었다. 구양순체를 따랐으며, 소해는 형 김정희의 글씨와 매우 흡사하다.
조선후기 여류시인 영수합 서씨의 시 「기장아부연행중」·「차귀거래사」 등을 수록하여 1824년에 간행한 시집.
영수합고 (令壽閤稿)
조선후기 여류시인 영수합 서씨의 시 「기장아부연행중」·「차귀거래사」 등을 수록하여 1824년에 간행한 시집.
1694년(숙종 20)박권(朴權)이 지은 기행가사.
서정별곡 (西征別曲)
1694년(숙종 20)박권(朴權)이 지은 기행가사.
조선 후기의 문신, 최우형의 시·서(書)·제문·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죽하집 (竹下集)
조선 후기의 문신, 최우형의 시·서(書)·제문·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조선 후기에, 판서, 대사성,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최우형 (崔遇亨)
조선 후기에, 판서, 대사성,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1976년 6월 조선인의 강제연행 사실과 운동사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도쿄에서 조직한 단체.
재일조선인운동사연구회 (在日朝鮮人運動史硏究會)
1976년 6월 조선인의 강제연행 사실과 운동사에 관한 연구를 위하여 도쿄에서 조직한 단체.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가 한문으로 저술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삼산논학기 (三山論學記)
중국에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가 한문으로 저술한 교리서. 천주교교리서.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허원 (許遠)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이항억은 1862년 청나라에 연행사로 파견되어 최초로 사진을 접한 조선인이다. 1862년 이의익을 정사로 하는 삼절연공행이 청나라에 파견되었을 당시 수행원으로 동행하였다. 베이징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사진을 접하고, 그 경험을 『연행일기』에 기록하였다.
이항억 (李恒億)
이항억은 1862년 청나라에 연행사로 파견되어 최초로 사진을 접한 조선인이다. 1862년 이의익을 정사로 하는 삼절연공행이 청나라에 파견되었을 당시 수행원으로 동행하였다. 베이징 러시아 공사관에서 처음 사진을 접하고, 그 경험을 『연행일기』에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