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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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00~331년이다. 서천왕의 손자로 아버지가 봉상왕에 의해 반역혐의로 죽임을 당하자 피신해 소금장수를 하며 살다가 봉상왕 폐위 후 국상 창조리 등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재위 중에 중국 진나라가 와해되는 국제적 격동기를 맞아 대외팽창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낙랑군과 대방군을 병합했고 현도성을 공격하는 등 남방으로 급속한 팽창을 도모했다. 선비족 일파인 모용부와 요동지방을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재위 32년 만에 죽자 미천지원에 장사 지냈다.
미천왕 (美川王)
미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00~331년이다. 서천왕의 손자로 아버지가 봉상왕에 의해 반역혐의로 죽임을 당하자 피신해 소금장수를 하며 살다가 봉상왕 폐위 후 국상 창조리 등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재위 중에 중국 진나라가 와해되는 국제적 격동기를 맞아 대외팽창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낙랑군과 대방군을 병합했고 현도성을 공격하는 등 남방으로 급속한 팽창을 도모했다. 선비족 일파인 모용부와 요동지방을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재위 32년 만에 죽자 미천지원에 장사 지냈다.
고구려의 제4대(재위: 44년~48년) 왕.
민중왕 (閔中王)
고구려의 제4대(재위: 44년~48년) 왕.
대가야의 제3대(재위: ?~562년) 왕.
도설지왕 (道設智王)
대가야의 제3대(재위: ?~562년) 왕.
백제의 제10대(재위: 298년~304년) 왕.
분서왕 (汾西王)
백제의 제10대(재위: 298년~304년) 왕.
금관가야의 제4대(재위: 291년~346년) 왕.
거질미왕 (居叱彌王)
금관가야의 제4대(재위: 291년~346년) 왕.
금관가야의 제9대(재위: 492년~521년) 왕.
겸지왕 (鉗知王)
금관가야의 제9대(재위: 492년~521년) 왕.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경덕왕 (景德王)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경순왕 (敬順王)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백제의 제19대(재위: 420년~427년) 왕.
구이신왕 (久爾辛王)
백제의 제19대(재위: 420년~427년) 왕.
대무신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이다. 대해주류왕, 대주류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무휼이다. 아버지는 유리왕,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딸이다.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을 죽였으며,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개마국과 구다국, 낙랑국 등을 병합하였다. 또한, 우보와 좌보를 처음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다.
대무신왕 (大武神王)
대무신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3대(재위: 18~44) 왕이다. 대해주류왕, 대주류왕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무휼이다. 아버지는 유리왕, 어머니는 다물국왕 송양의 딸이다. 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을 죽였으며, 주변 세력에 대한 정복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개마국과 구다국, 낙랑국 등을 병합하였다. 또한, 우보와 좌보를 처음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힘썼다.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고국원왕 (故國原王)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애장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재위: 800~809) 왕이다.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작은아버지 김언승의 섭정을 받았지만, 재위 6년에 친정을 행하여 중앙과 지방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불사(佛事)를 금지시키며 귀족 세력을 제어하면서 왕권을 강화하였지만, 재위 10년에 김언승에게 시해되었다.
애장왕 (哀莊王)
애장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40대(재위: 800~809) 왕이다. 12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작은아버지 김언승의 섭정을 받았지만, 재위 6년에 친정을 행하여 중앙과 지방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불사(佛事)를 금지시키며 귀족 세력을 제어하면서 왕권을 강화하였지만, 재위 10년에 김언승에게 시해되었다.
영류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18∼642년이며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초에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새로 건국된 당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당에서 도교를 수입하여 진흥시킴으로써 불교에 기반을 둔 귀족세력을 약화시켰다. 신라와는 고토 회복을 위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당나라가 국내 혼란을 수습하고 동돌궐을 격파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자 천리장성을 수축해 당의 공격에 대비했다. 대당 강경론자이던 연개소문을 제거하려다가 역공을 당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영류왕 (榮留王)
영류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18∼642년이며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초에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새로 건국된 당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당에서 도교를 수입하여 진흥시킴으로써 불교에 기반을 둔 귀족세력을 약화시켰다. 신라와는 고토 회복을 위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당나라가 국내 혼란을 수습하고 동돌궐을 격파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자 천리장성을 수축해 당의 공격에 대비했다. 대당 강경론자이던 연개소문을 제거하려다가 역공을 당해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
영양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90~618년이며, 평원왕의 장자이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5권이 편찬되었고, 승려 혜자와 담징이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는 등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 한강유역 탈환을 둘러싸고 신라와 공방이 이어졌고 수나라와 접근하던 백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수나라와는 초기에 화전 양면 전술을 취하다가 고구려가 요서를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총 4차례에 걸친 수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130만 대군으로 이루어진 2차 공격을 을지문덕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영양왕 (嬰陽王)
영양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90~618년이며, 평원왕의 장자이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5권이 편찬되었고, 승려 혜자와 담징이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는 등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 한강유역 탈환을 둘러싸고 신라와 공방이 이어졌고 수나라와 접근하던 백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수나라와는 초기에 화전 양면 전술을 취하다가 고구려가 요서를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총 4차례에 걸친 수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130만 대군으로 이루어진 2차 공격을 을지문덕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양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45~559년이다. 안원왕의 맏아들로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고 싸우던 두 왕비와 그들을 후원한 귀족세력간의 충돌 속에서 즉위했다. 그 결과 왕의 전제적 권한은 크게 도전받았고 재위 기간 동안 귀족세력간의 분쟁이 계속되었다. 중국의 북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국력을 소모했고 그 와중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대외적 위기상황이 계속되자 귀족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귀족연립정권을 형성해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양원왕 (陽原王)
양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45~559년이다. 안원왕의 맏아들로 태자에 책봉되었으나 자기 소생을 왕으로 세우려고 싸우던 두 왕비와 그들을 후원한 귀족세력간의 충돌 속에서 즉위했다. 그 결과 왕의 전제적 권한은 크게 도전받았고 재위 기간 동안 귀족세력간의 분쟁이 계속되었다. 중국의 북제와 외교관계를 유지했으나 돌궐과의 대치로 국력을 소모했고 그 와중에 신라와 백제 연합군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대외적 위기상황이 계속되자 귀족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귀족연립정권을 형성해 국정의 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리왕 (琉璃王)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3대(재위: 270~292) 왕이다. 일명 ‘서양왕(西壤王)’이라고도 하였으며, 이름은 고약로(高藥盧) 혹은 고약우(高若友)이다.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며, 255년(중천왕 8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왕으로 즉위한 이후 271년 서부대사자(西部大使者) 우수(于漱)의 딸을 왕후로 삼았고, 276년과 288년에는 신성(新城)에 행차하였다.
서천왕 (西川王)
서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3대(재위: 270~292) 왕이다. 일명 ‘서양왕(西壤王)’이라고도 하였으며, 이름은 고약로(高藥盧) 혹은 고약우(高若友)이다. 중천왕의 둘째 아들이며, 255년(중천왕 8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왕으로 즉위한 이후 271년 서부대사자(西部大使者) 우수(于漱)의 딸을 왕후로 삼았고, 276년과 288년에는 신성(新城)에 행차하였다.
통일신라의 제39대(재위: 798년~800년) 왕.
소성왕 (昭聖王)
통일신라의 제39대(재위: 798년~800년) 왕.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시왕 (十▽王)
사후세계에서 인간들의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명의 심판관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백제의 제9대(재위: 286년~298년) 왕.
책계왕 (責稽王)
백제의 제9대(재위: 286년~298년)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