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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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 (廣開土王陵碑)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진흥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재위: 540~576) 왕이다. 재위 기간에 불교를 진흥하는 한편, 화랑도를 창설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마련하였다. 진흥왕은 정복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이전보다 3배나 넓은 영토를 개척하였다.
진흥왕 (眞興王)
진흥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재위: 540~576) 왕이다. 재위 기간에 불교를 진흥하는 한편, 화랑도를 창설하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마련하였다. 진흥왕은 정복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이전보다 3배나 넓은 영토를 개척하였다.
단군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BCE.2333년부터 BCE.1122년까지이며 단군왕검·단웅천왕이라고도 한다.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이후 나라를 다스리다 1908세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의 스님 일연이 쓴 『삼국유사』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단군을 고조선의 시조로 이해하여 평양에 사당을 짓고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함께 모신 이후로 단군은 한민족의 명실상부한 시조가 되었다.
단군 (檀君)
단군은 초기국가시대 고조선의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BCE.2333년부터 BCE.1122년까지이며 단군왕검·단웅천왕이라고도 한다.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이후 나라를 다스리다 1908세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의 스님 일연이 쓴 『삼국유사』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단군을 고조선의 시조로 이해하여 평양에 사당을 짓고 고구려 시조 동명왕과 함께 모신 이후로 단군은 한민족의 명실상부한 시조가 되었다.
을지문덕은 삼국시대 살수에서 수나라 군대를 물리친 고구려의 관리이자 무신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612년(영양왕 23) 수 양제가 100만이 넘는 대규모 군단을 편성해 고구려에 침공했다. 육군은 요동성을, 30여만의 별동대는 평양성을 목표로 진격했다. 을지문덕은 별동대를 평양성까지 유인하면서 지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전의를 상실한 수나라 군대가 회군을 결정하고 살수를 건널 때 일대반격전을 벌여 30여만의 병력 중 불과 2700명만 살아서 도주하는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이 살수대첩은 수 양제에게 총퇴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을지문덕 (乙支文德)
을지문덕은 삼국시대 살수에서 수나라 군대를 물리친 고구려의 관리이자 무신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612년(영양왕 23) 수 양제가 100만이 넘는 대규모 군단을 편성해 고구려에 침공했다. 육군은 요동성을, 30여만의 별동대는 평양성을 목표로 진격했다. 을지문덕은 별동대를 평양성까지 유인하면서 지치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전의를 상실한 수나라 군대가 회군을 결정하고 살수를 건널 때 일대반격전을 벌여 30여만의 병력 중 불과 2700명만 살아서 도주하는 괴멸적 타격을 입혔다. 이 살수대첩은 수 양제에게 총퇴각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백제 시대의 철제 가지모양의 칼이다. 전체 길이는 74.9㎝이고, 칼의 양쪽 날 부분에 나뭇가지처럼 굴곡진 가지가 각각 3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뻗어 나와 있다. 칼날 앞뒤 면에 각각 34자, 27자의 명문이 금으로 상감되어 있고 명문 외곽에도 금선이 가늘게 상감기법으로 둘러져 있다. 명문을 통해 칠지도란 이름의 강철로 만든 칼이고 백제의 왕이 왜왕 지에게 하사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 외 제작 시기나 제작 주체와 관련한 명문의 해석을 둘러싸고는 이설들이 있지만, 백제 왕을 근초고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칠지도 (七支刀)
칠지도는 일본 나라현 덴리시의 이소노카미신궁에 소장된 백제 시대의 철제 가지모양의 칼이다. 전체 길이는 74.9㎝이고, 칼의 양쪽 날 부분에 나뭇가지처럼 굴곡진 가지가 각각 3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뻗어 나와 있다. 칼날 앞뒤 면에 각각 34자, 27자의 명문이 금으로 상감되어 있고 명문 외곽에도 금선이 가늘게 상감기법으로 둘러져 있다. 명문을 통해 칠지도란 이름의 강철로 만든 칼이고 백제의 왕이 왜왕 지에게 하사한 것임이 밝혀졌다. 그 외 제작 시기나 제작 주체와 관련한 명문의 해석을 둘러싸고는 이설들이 있지만, 백제 왕을 근초고왕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태조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46년으로 국조왕 또는 태조대왕이라고도 한다. 모본왕 살해 후 여러 관리들이 그의 아버지 재사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재사가 나이가 많다 하여 사양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후한의 압력을 차단하고 서방진출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소국의 지배세력들을 관료로 흡수하여 전제왕권적 지배체제의 토대를 갖추었다. 동생 수성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고 왕위까지 노리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별궁에서 은거하다가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태조왕 (太祖王)
태조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3~146년으로 국조왕 또는 태조대왕이라고도 한다. 모본왕 살해 후 여러 관리들이 그의 아버지 재사를 왕으로 추대했는데 재사가 나이가 많다 하여 사양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후한의 압력을 차단하고 서방진출을 시도하여 고구려의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주변 소국의 지배세력들을 관료로 흡수하여 전제왕권적 지배체제의 토대를 갖추었다. 동생 수성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고 왕위까지 노리자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별궁에서 은거하다가 165년 1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리왕 (琉璃王)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경순왕 (敬順王)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성덕대왕신종 (聖德大王神鐘)
통일신라시대의 범종.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신광면사무소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비.
포항 냉수리 신라비 (浦項 冷水里 新羅碑)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신광면사무소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비.
「천지왕본풀이」는 제주도 굿에서 해와 달을 정리하고 이승법과 저승법을 마련한 대별왕·소별왕 형제의 내력을 풀이할 때 구연하는 서사무가이다. 여러 개의 해와 달을 화살을 쏘아 떨어뜨려 하나씩만 남겨 일월을 정리한 이야기, 꽃을 바꿔치기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내기에서 이긴 자가 이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이승법이 저승과 달리 맑지 못하고 혼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세상의 질서가 어떻게 성립된 것인지를 보여 준다.
천지왕본풀이 (天地王本풀이)
「천지왕본풀이」는 제주도 굿에서 해와 달을 정리하고 이승법과 저승법을 마련한 대별왕·소별왕 형제의 내력을 풀이할 때 구연하는 서사무가이다. 여러 개의 해와 달을 화살을 쏘아 떨어뜨려 하나씩만 남겨 일월을 정리한 이야기, 꽃을 바꿔치기하는 부정한 방법으로 내기에서 이긴 자가 이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이승법이 저승과 달리 맑지 못하고 혼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세상의 질서가 어떻게 성립된 것인지를 보여 준다.
조물성전투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왕건이 즉위한 후 경북 내륙지역이 고려에 복속되자 후백제는 경상북도 죽령 부근의 조물성을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 전투는 2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1차는 924년 후백제가 먼저 공격하였으나 고려에 참패했다. 그 후 견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2차 전투에 나섰고, 고려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 화의는 백제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 경상 지역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조물성전투 (曹物城戰鬪)
조물성전투는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왕건이 즉위한 후 경북 내륙지역이 고려에 복속되자 후백제는 경상북도 죽령 부근의 조물성을 공격해 주도권을 잡고자 했다. 이 전투는 2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1차는 924년 후백제가 먼저 공격하였으나 고려에 참패했다. 그 후 견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2차 전투에 나섰고, 고려와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화의를 맺었다. 화의는 백제에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이 전투의 결과 경상 지역에서 후백제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고국원왕 (故國原王)
고국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6대(재위: 331~371) 왕이다. 국원왕, 국강상왕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15) 태자로 책봉된 후, 331년 2월 미천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영토 확장 과정에서 요동(遼東)과 부여(夫餘) 지역을 둘러싸고 전연(前燕)과 대립하였고, 남쪽으로는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과 경쟁하였다. 371년 10월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 · 상대등 등을 역임한 장수이다. 할아버지는 잉숙(仍宿),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545년 신라 왕조의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551년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 이북의 10군(郡)을 빼앗아 신라 영토로 만들었으며, 진지왕(眞智王) 즉위에 공헌하는 등 신라 중고기의 중요한 대신으로서 활약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거칠부 (居柒夫)
삼국시대 신라의 파진찬 · 상대등 등을 역임한 장수이다. 할아버지는 잉숙(仍宿), 아버지는 이찬(伊湌) 물력(勿力)이다. 545년 신라 왕조의 역사서인 『국사(國史)』를 편찬하였고, 551년 고구려를 쳐서 죽령(竹嶺) 이북의 10군(郡)을 빼앗아 신라 영토로 만들었으며, 진지왕(眞智王) 즉위에 공헌하는 등 신라 중고기의 중요한 대신으로서 활약했다.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즉 「마운령비(摩雲嶺碑)」와 「창녕비(昌寧碑)」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정치적 비중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영양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90~618년이며, 평원왕의 장자이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5권이 편찬되었고, 승려 혜자와 담징이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는 등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 한강유역 탈환을 둘러싸고 신라와 공방이 이어졌고 수나라와 접근하던 백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수나라와는 초기에 화전 양면 전술을 취하다가 고구려가 요서를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총 4차례에 걸친 수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130만 대군으로 이루어진 2차 공격을 을지문덕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영양왕 (嬰陽王)
영양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90~618년이며, 평원왕의 장자이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5권이 편찬되었고, 승려 혜자와 담징이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는 등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 한강유역 탈환을 둘러싸고 신라와 공방이 이어졌고 수나라와 접근하던 백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수나라와는 초기에 화전 양면 전술을 취하다가 고구려가 요서를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총 4차례에 걸친 수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130만 대군으로 이루어진 2차 공격을 을지문덕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시왕도는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을 그린 불화이다. 시왕은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진광왕·염라대왕 등 10명의 대왕이다. 망자는 사후 명부로 가는 도중에 차례로 10명의 왕 앞을 지나면서 재판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초에 명부 신앙이 소개되었다. 시왕도의 도상은 거의 일률적이다. 상단에는 책상 앞에 앉은 시왕이 망자를 심판하는 광경이다. 하단에는 망자가 지옥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해인사 시왕도(1742년), 옥천사 시왕도(1744년) 등이 있다.
시왕도 (十王圖)
시왕도는 지옥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을 그린 불화이다. 시왕은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진광왕·염라대왕 등 10명의 대왕이다. 망자는 사후 명부로 가는 도중에 차례로 10명의 왕 앞을 지나면서 재판을 받는다.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초에 명부 신앙이 소개되었다. 시왕도의 도상은 거의 일률적이다. 상단에는 책상 앞에 앉은 시왕이 망자를 심판하는 광경이다. 하단에는 망자가 지옥에서 무서운 형벌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해인사 시왕도(1742년), 옥천사 시왕도(1744년) 등이 있다.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
대가야 (大加耶)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
미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00~331년이다. 서천왕의 손자로 아버지가 봉상왕에 의해 반역혐의로 죽임을 당하자 피신해 소금장수를 하며 살다가 봉상왕 폐위 후 국상 창조리 등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재위 중에 중국 진나라가 와해되는 국제적 격동기를 맞아 대외팽창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낙랑군과 대방군을 병합했고 현도성을 공격하는 등 남방으로 급속한 팽창을 도모했다. 선비족 일파인 모용부와 요동지방을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재위 32년 만에 죽자 미천지원에 장사 지냈다.
미천왕 (美川王)
미천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1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00~331년이다. 서천왕의 손자로 아버지가 봉상왕에 의해 반역혐의로 죽임을 당하자 피신해 소금장수를 하며 살다가 봉상왕 폐위 후 국상 창조리 등에 의해 왕으로 옹립되었다. 재위 중에 중국 진나라가 와해되는 국제적 격동기를 맞아 대외팽창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낙랑군과 대방군을 병합했고 현도성을 공격하는 등 남방으로 급속한 팽창을 도모했다. 선비족 일파인 모용부와 요동지방을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기도 했다. 재위 32년 만에 죽자 미천지원에 장사 지냈다.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에 고려의 태조 등을 제향하던 사당.
숭의전 (崇義殿)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에 고려의 태조 등을 제향하던 사당.
평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9~590년이다. 양원왕의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한다. 부왕인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으나 왕권은 귀족들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았다. 또 남조의 진나라와 북조의 북제·북주가 대치하고 있던 중국 남북조와 다면 외교를 펼쳐 국제관계의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589년에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켜 대륙을 통일한 후 고구려에 국서를 보내 위협을 가하자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다가 사망했다.
평원왕 (平原王)
평원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59~590년이다. 양원왕의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다고 한다. 부왕인 양원왕의 즉위 이래 계속된 내분과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으나 왕권은 귀족들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았다. 또 남조의 진나라와 북조의 북제·북주가 대치하고 있던 중국 남북조와 다면 외교를 펼쳐 국제관계의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589년에 수나라가 남조의 진나라를 멸망시켜 대륙을 통일한 후 고구려에 국서를 보내 위협을 가하자 그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다가 사망했다.